컴퍼니 제 685호 (2009년 01월 19일)

아버지는 ‘나의 힘’

아버지는 ‘나의 힘’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제 한파는 2009년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지금 더욱 싸늘하게만 느껴진다. 이러한 경기 불황의 한파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사업의 존폐를 생각해야 하는 막다른 기로로 많은 사람들을 거칠게 내몰고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어려운 시점에 직면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아버지’에 대한 칼럼을 쓸 것을 제안 받았다.

몇 시간을 집중해 원고를 쓸 만큼 여유롭지 못해 조금씩 시간을 쪼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들은 예상외로 내 메모장 가득히 채웠다. 아버지와 여행 갔던 기억들, 아버지의 낡은 지갑, 당신의 생활신조, 우리 형제들에게 늘 하셨던 말씀 등등 의외로 많은 부분이 지금의 어려운 시기에서 현실에만 안주해 있는 나에게 묵직한 무언가를 전해 주려는 것 같았다. 수십 년간 행동으로,그리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싶었던 당신의 모습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부자다. 하지만 검소하다. 지나치게 검소할 때가 많다. 지금도 구멍이 난 20년 된 가죽 지갑을 들고 다니시고 15년 전에 내가 제대할 때 기념으로 받은 1군 사령부 마크가 찍힌 가죽 허리띠를 차고 계신다.

또한 매우 부지런하시다. 30년째 매주 3회 등산을 가신다. 내가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왜 등산만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돈 안 들고 이만큼 운동 되는 거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몇 년 전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를 등정하셨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낙타로 사막을 건너면서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오셨다. 이순를 넘은 나이에도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셨다.

술은 기분이 좋으면 소주를 4병 정도 드신다. 물론 담배도 태우신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가끔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혹 양주 마셨냐고 물어 보신다. 큰 형님은 상장회사 임원이고 둘째 형님은 강남의 잘나가는 치과의사다. 그래도 아버지는 양주는 사치라고 하신다. 잘되는 식당에 들어서면 손님들 숫자와 테이블 수와 좌석 수를 센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가게의 하루 매출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아직도 물어보신다. 늘 우리에게 세상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매년 설이면 편지를 써 주신다. 아버지께서 쓰신 첫 편지의 덕담은 ‘남과 같아서는 남보다 뛰어날 수 없다’였다. 그러시면서 항상 가훈으로 가지고 있으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들에서 말하고 있는 성공한 사람의 많은 습관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많은 사업에서도 성공하셨다.

이러한 많은 아버지의 가장 존경하는 부분은 바로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신다는 점이다. 아버지께서 3년 전에 대장암에 걸리셨다. 누구보다도 건강을 자신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더욱 가족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더욱이 대장암의 완치율이 높지 않았고 8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셔야 했기에 예전의 건강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수술을 받으러 가시기 직전까지 일 안하고 왜 병원에 왔느냐며 병실을 지키던 우리를 오히려 내보시던 아버지였다. 당신께서는 이 정도 병은 이겨낼 수 있다고 확고히 생각하셨고 일말의 절망감이나 두려움은 보이시지 않았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고 암 부위는 모두 절단됐다. 그리고 6개월간 암 전이 경과를 지켜봐야 된다던 주치의의 말을 듣고 퇴원하셨다. 그 후 아버지는 당신이 완쾌될 것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으셨다. 지인들께 본인의 수술 부위를 보여 주시며 훈장을 받으신 듯 웃으면서 수술이 성공적이었고 곧 완쾌될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그리고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셨다. 3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으셨고 여전히 소주와 담배를 즐기신다.

아버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얼마 안 되는 시간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조그마한 현실의 어려움에 고민했던 나는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내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아버지의 긍정적인 사고를 보여 주려고 한다.

박동인·라이프익스텐션코리아 대표

경희대를 졸업하고 뉴욕대(NYU)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미국의 라이프 익스텐션 재단과 함께 라이프익스텐션코리아를 설립했다. 한국 최초의 발포 멀티 비타민인 비타베리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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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