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685호 (2009년 01월 19일)

민영화·규제완화가 경제 ‘의지’ 살렸다

기사입력 2009.01.15 오전 11:26

일본은 배울 게 많은 나라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그렇다. 잘한 일에서도, 잘못한 일에서도 나름대로 참고할 게 많다.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경제 불황’을 맞아서도 일본은 우리에게 참고서와 같다. 가장 최근에, 가장 긴 불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했던 게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10년 불황’을 되짚어 보면 ‘그래선 안 되겠다’ 싶은 타산지석과 ‘이건 따라 할 만하다’는 벤치마킹 포인트가 골고루 있다.

먼저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부터 두 가지 들어본다. 첫째, 뒷북 대책은 위기를 더 키운다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 거품 붕괴가 시작된 뒤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금융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건 1997년 당시 4대 증권사 중 하나였던 야마이치증권이 파산하고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 등이 줄줄이 쓰러진 다음이다.

1997년 11월 일본의 산요증권은 상장 증권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파산 보호에 해당하는 회사갱생법의 적용을 신청하면서 도산했다. 이어 불과 20일 후에는 100년 전통의 4대 증권사인 야마이치증권이 자진 폐업을 결정했다. 또 산요증권 도산 보름 뒤에는 주요 시중은행인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이 파산했다. 이듬해에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잇달아 파산 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는 등 일본 금융 시스템은 붕괴 위기를 맞는다.

일본 정부는 그제야 부랴부랴 30조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부실채권 정리에 나섰다. 좀 더 일찍 대응했다면 10년 불황을 3~4년 정도 단축했을 것이란 게 일본의 후회다. 고바야시 요타로 후지제록스 회장은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었던 배경에 대해 “정부가 부실채권의 실태를 인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 더 큰 부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 불황을 되짚어 보면) 부실채권을 빠른 단계에서 처리했어야 했다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내세워

대표적인 게 ‘상품권 살포’같은 것이다. 1999년 ‘지역진흥권’이란 상품권 7000억 엔어치를 전 국민에게 나눠줬지만 저축광인 일본인들에겐 소비 진작 효과가 없었다는 게 분석 결과다. 당시 살포된 상품권 중 68%는 쌀이나 생필품 등의 구입에 사용됐다. 기본 생활에 들어가는 지출 말고 다른 소비를 늘리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이코노미스트는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거나 고속도로 통행료를 깎아주는 대책 등은 고용 창출 효과가 거의 없다. 돈을 쓰려면 환경 기술 등 미래 대비 투자를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현금 지급이 소비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에 기여하는 건 0.1~0.2%포인트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잘못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벤치마킹할 점도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경기 회복엔 규제 완화가 의외로 약효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가 회생의 전기를 마련한 건 2002년 고이즈미 정권 출범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우며 규제 철폐에 ‘올인’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이후 대기업·노동·창업 등 분야에서만 총 1500여 건의 규제를 풀었다. 2002년 ‘공장 제한법’을 폐지한 데 이어 2006년엔 ‘공장재배치촉진법’을 없앴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 총액 규제의 모델로 삼았던 ‘대규모 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도 2002년 철폐했다. 노동 유연성 확보를 위해 파견 사원의 파견 기간을 최대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조치도 취했다. 최저 자본금 규제 특례를 도입해 창업을 독려했고, 자본금 1엔으로도 주식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공공기관의 민영화도 적극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정공사 민영화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공사 공무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작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결국 공무원 신분이던 우정공사 27만 명의 직원이 민간인으로 전환됐다. 그 밖에 정부 산하 특수법인 163개 중 16개를 없애고 36개는 민영화, 39개는 독립법인화하는 등 대대적인 정리를 통해 1조5000억 엔(약 20조 원) 규모의 재정을 절약했다.

규제 완화는 공짜 경기 부양책

비효율적 공공기관의 민영화는 민간의 ‘경제할 의지’를 키웠고 수도권 규제 완화 등 실질적 규제 완화 조치는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을 유(U)턴 시켰다. 소니가 2002년 중국에서 만들던 수출용 8mm 비디오카메라 공장을 일본 나고야 인근으로 옮긴 것을 시작으로 주요 기업들이 속속 국내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한 만큼 굳이 생산 관리가 어렵고 기술 유출이 우려되는 동남아나 중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일본의 공장 착공 면적은 2002년 850만㎡였던 게 △2003년 930만㎡ △2004년 1250만㎡ △2005년 1410만㎡ △2006년 1570만㎡ 등으로 계속 늘었다. 2008년까지도 일본 기업들의 설비 투자는 지속됐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지난해 초 공작기계 수주 전망을 밝게 보고 자동차용 톱니바퀴 제조 기계 생산 설비 확충에 50억 엔을 투입한 것을 비롯해 혼다자동차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300억 엔을 투입해 차세대형 엔진을 생산하기로 했다. 혼다가 일본에 새 공장을 짓기는 30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15년간 단행한 규제 완화로 얻은 경제적 효과는 18조3000억 엔(약 146조 원)에 달한다는 게 내각부의 분석이다. 국민 1인당으로는 14만4000엔에 달하는 규모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규제만 풀어서 얻은 소득이다. 규제 완화야말로 공짜 경기 부양책이었던 셈이다.

둘째, 미래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은 기업들이 경기 회복을 견인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거품 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연구·개발(R&D) 투자를 1~5% 정도 줄인 것 외엔 줄곧 R&D 투자를 늘려 왔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2007년에는 불어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으로 나눠주는 대신 R&D에 쏟아 부었다.

그해 주요 254개사는 R&D에 전년보다 7.4% 많은 11조3304억 엔을 투자했다. 니와 아오 도쿄대 교수(기술경영학)는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들 사이에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기술 개발’이 필수라는 인식이 다시 퍼져 R&D 투자 경쟁이 일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들의 꾸준한 투자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도 했다. 기술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손 기술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 2008년 1월 일본 전체 산업의 노동생산성은 일본 경기가 두 번째 장기 호황을 보였던 1980년대 말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업의 생산성 제고 노력과 근로자들의 단위 노동 비용이 줄면서 나타난 결과다.

노동생산성 증가는 산업생산지수를 끌어올렸고 기업의 순이익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 연평균 3.5%에 달하는 산업생산성을 자랑하며 미국 경제를 압도했던 일본 경제가 다시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된 것도 불황기에 하이브리드카에 꾸준히 투자했던 게 밑거름이 됐다. 도요타 샤프 교세라 등이 지금과 같은 불황에도 태양광전지 등 미래 투자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과거의 학습효과이기도 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거품 붕괴와 불황-호황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앞이 캄캄해 보이지만, 역사를 되새겨 보면 갈 길이 분명히 보인다.

민영화·규제완화가 경제 ‘의지’ 살렸다


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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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1-15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