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발상지’ 영국 제조업의 쇠락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글로벌 신용 위기 여파로 잘나가던 금융 산업마저 침체에 빠져 대안 찾기에 나선 영국 정부의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디자인, 광고 같은 크리에이티브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유일한 희망으로 꼽힌다. 모두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필수적인 분야다. 영국이 필사적으로 기업가 정신 살리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1부. 경제성장 원동력 ‘기업가 정신’ 1회. ‘기업가 정신’의 재발견 2회. 진화하는 기업가 정신 3회. 슘페터 다시 읽기 4회. 전설로 남은 한국의 기업가들 5회. 기업가 정신은 살아있다-스웨덴편 6회. 기업가 정신은 살아있다-영국편 7회. 기업가 정신은 살아있다-미국편 8회. 기업가 정신은 살아있다-일본편지난해 11월 17일 5만5000여 명의 영국 각급 학교 학생들은 오전 9시가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들은 비즈니스 플랜 경진 대회인 ‘메이크 유어 마크 챌린지(Make your Mark Challenge)’ 참가자들. 9시 정각 공개된 이날 과제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조직위원회의 도움 받아 청소년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한 것이다. 영국 전역에서 14~16세, 16~19세 두 부문으로 나눠 참가한 학생들은 하루 동안 각자 팀을 만들어 올림픽 때 성공할만한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실제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 조달 계획까지 짜내느라 열을 올렸다.이날 행사를 주최한 것은 기업가 정신 운동 단체인 ‘메이크 유어 마크’다. 정식 단체명은 ‘엔터프라이즈 인사이트(Enterprise Insight)’지만 대외적으로는 캠페인 명칭인 ‘메이크 유어 마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2004년 영국상공회의소, 중소기업연합(FSB), 영국산업연맹(CBI), 기업가협회(IoD) 등 4대 경제 단체가 공동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출발했다. 이 단체 크리스 스파빈 국제캠페인 담당은 “청소년들에게 기업가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해 만들어졌다”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4대 경제 단체가 함께 손을 잡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말했다.메이크 유어 마크는 민간단체들이 주도해 설립됐지만 100%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설립 첫 해에는 지원금이 수십만 파운드에 불과했지만 매년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500만 파운드(약 100억 원)를 지원 받았다.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10년 동안 재무장관을 지낸 고든 브라운 현 총리는 초기 설립부터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후원자다. 작년 말 메이크 유어 마크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조직 규모를 키우기 위해 자선단체 지위를 얻었다. 일반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조치다.‘메이크 유어 마크 챌린지’는 이 단체가 수년째 개최해 온 이벤트지만 지난해 행사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메이크 유어 마크는 지난해 11월 17~23일 미국의 대표적 기업가 정신 운동 단체인 카우프만재단과 함께 ‘제1회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Global Entrepreneurship Week)’을 열었고 그 첫날 행사로 이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당시 “기업가 정신 주간은 그동안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으며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을 통해 전 세계의 기업가 캠페인으로 연결될 것”이라며 “전 세계 젊은이들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개방함으로써 우리는 성공적인 제품과 내일의 기업을 창조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영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77개 나라에서 동시에 개최된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 행사에선 2만5000여 건의 각종 이벤트가 열렸으며 300만 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뿐만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아놀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 등 유명인들도 직간접으로 대거 참석해 행사를 빛냈다.고든 브라운 총리의 지적대로 ‘기업가 정신 주간’은 영국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다. 2004년 설립된 메이크 유어 마크는 가장 효과적인 캠페인 플랫폼을 고민하다 ‘주간’ 형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연관된 행사들을 특정 기간에 집중함으로써 언론의 더 큰 주목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기업가 정신 주간 행사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점차 영역을 확대하게 된 것이다. 기업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주간이란 형태가 효과적이지만 한계도 안고 있다. 기업가에 흥미를 느낀 청소년들에게 실제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게 하려면 한발 더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메이크 유어 마크는 현재 수많은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내내 진행하고 있다. 또한 메이크 유어 마크가 시작한 기업가 정신 주간은 미국 등 여러 나라로 빠르게 확산됐으며 세계 기업가 정신 주간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이 단체의 캠페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메이크 유어 마크 위드 어 테너(Make your Mark with a Tenner)’다. 테너는 10파운드(약 2만 원)를 가리킨다. 2만 명의 학생들에게 10 파운드씩 나눠주고 한 달 동안 운영해 이익을 내도록 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10파운드는 물론 대출이다. 하지만 한 달 후 이자 없이 원금 10파운드만 갚으면 된다. 1등상은 사회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더 많은 이윤을 낸 팀에게 주어진다. 지난해 처음 시작해 큰 인기를 끌자 올해는 전체 자금 규모를 20만 파운드로 두 배 늘렸다. 이 돈을 낸 것은 영국의 유명 기업가인 피터 존스 폰즈인터내셔널그룹 회장과 마이클 버치 비보(Bebo) 창업자다. 통신과 미디어로 큰돈을 번 피터 존스 회장은 BBC의 벤처캐피털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드랜곤스 덴(Dregon’s Den)’에 출연해 대중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물이다. 마이클 버치 창업자는 2005년 온라인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인 ‘비보’를 만들어 키웠으며 지난해 8억5000만 달러에 AOL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렸다.학생들에게 10파운드를 대출해 주고 비즈니스 체험을 하게 하는 이 이벤트는 영국 언론에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디어에 나타난 영국 청소년은 대부분 나태하고 게으르며 반사회적인 반항아의 이미지다. 10파운드를 받아들고 사업 계획을 짜는 학생들은 이런 선입견을 깨고 ‘문제투성이’ 영국 청소년들도 사회에 도움 될 수 있고 믿을 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해준다.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는 이러한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크리스 스파빈 국제캠페인 담당은 “최근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기업가 정신은 이러한 위기 극복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혁신적 기업가들은 더 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역사는 위기 속에서 성공한 기업이 나온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한 경기 침체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조만간 회복기가 찾아오며 한발 앞서 준비한 자만이 이때 힘차게 치고 나갈 수 있다. 바로 영국이 위기 속에서도 기업가 정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런던·버밍엄(영국)=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