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지는 외국 기업의 위안화 조달

중국 진출 외국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다원화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중국 법인들이 해외 본사의 투자나 중국 내 은행 대출에 의존해 온 데서 탈피, 중국 내에서 기업공개(IPO)를 하거나 위안화 표시 채권(일명 판다본드)을 발행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와 낙후된 금융시장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IPO 및 회사채 시장을 외국 기업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다. 중국 진출 외국 기업이 자금 조달 부문에서도 현지화하는 길이 확대되는 셈이다.원자재 소싱에서부터 연구·개발 생산 판매에 이르는 모든 생산 흐름을 중국에서 해결한데 이어 이젠 자금 조달까지 현지화하는 새로운 경영 모델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중국 금융시장의 변화가 현지 진출 외국 기업들에 경영 전략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영국 금융 중심지 런던시티는 뉴욕의 월가와 함께 세계 양대 금융 허브로 꼽힌다. 이곳의 수장인 알더만 아인 루더 런던시티 시장이 영국 금융회사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지난 5월 29일부터 12일 일정으로 베이징 상하이 충칭 홍콩 등을 돌고 있다. 영국의 모든 금융회사들을 대표하는 대사 역할도 맡고 있는 루더 시장은 지난 6월 3일 상하이에서 “영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위안화 채권(일명 판다본드)을 발행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중국에서 35억 위안(6300억 위안) 규모의 판다본드 발행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최고경영자(CEO)는 “외국 기업의 판다본드 발행은 위안화의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상하이를 글로벌 금융 허브로 키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이 같은 움직임은 HSBC와 홍콩의 동아은행이 홍콩에서 해외 기업으론 처음으로 최근 판다본드 발행을 승인받은 데 이은 것으로 스탠다드차타드의 판다본드가 발행되면 대륙에서도 처음으로 외국 기업이 판다본드를 발행하게 되는 것이다. 판다본드가 중국에서 외국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로 부상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5년 10월 세계은행 자회사인 국제금융공사(IFC)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해외 기관 중에서 처음으로 중국에서 판다본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11억3000만 위안(약 2147억 원)과 10억 위안(약 1900억 원)의 자금을 각각 조달하도록 한 바 있다.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중국담당 연구위원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입장에선 중국의 판다본드가 새로운 자금 조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국 기업의 경우 환전 비용 없이 위안화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특히 위안화 자금 조달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외자 은행(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외자 은행의 위안화 자금 조달은 주로 은행 간 콜시장을 통해 조달하는데 중국의 폐쇄적인 시장 여건으로 인해 조달 금리가 대부분 예금금리보다 높아(약 50~100bp) 자금 조달과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중국 내 IPO도 다국적기업들의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콩 최대 갑부인 리카싱 허치슨왐포아 회장은 최근 “(회사를) 상하이 증시에 상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허치슨왐포아 주총이 열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다.리 회장은 “적지 않은 홍콩 기업들도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어 현지 상장이 자금 조달에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최근 상하이를 2020년까지 국제금융 허브로 육성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외국 기업의 IPO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이후 호주 3위 철광석 업체인 포트스쿠메탈이 상하이 증시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등 해외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앤드루 포리스트 포트스쿠메탈 CEO는 “외국의 광산 업체로는 처음으로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조만간 자문사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리스트 CEO는 “중국에 전면적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은 파트너가 있다”며 상장 심사 통과에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포트스쿠메탈은 최근 중국 후난화링과 전면적 협력 관계 계약을 체결했다. 후난화링은 최근 포트스쿠메탈에 7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중국과 호주 정부 양측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2대 주주로 떠올랐다. 여기에 중국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도 30억 달러를 포트스쿠메탈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홍콩 언론들은 HSBC와 동아은행 등 홍콩 비즈니스가 많은 외국계 은행들이 상하이 증시 상장 1호 외국 기업이 될 것으로 꼽고 있다. 영국은 지난 5월 런던을 방문한 왕치산 중국 부총리와 양국 기업의 상호 증시 상장에 합의하기도 했다.외국 기업의 중국 내 IPO 허용은 지난 2007년 12월 개최된 제3차 미·중 전략경제회의에서 외자 은행의 A주 상장을 허용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내국인 전용 A주에 투자할 수 있는 외국인 적격기관 투자자(QFII) 인가를 늘리는 등 개방 폭을 확대해 왔다. QFII는 지난 2006년 말 17개에서 지난 5월 말 기준 52개로 증가한 상태다.이치훈 연구위원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개방 일정, 미·중 경제전략회의 합의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향후 2~3년 내에 외자 은행(기업)의 판다본드 발행뿐만 아니라 IPO를 통해서도 풍부한 차이나 머니의 활용 기회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지난 4월까지 7개월 연속 감소하자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의 투자 환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6월 1일 웹사이트를 통해 FDI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검토, 불필요한 수수료를 없애고 규제를 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무부는 특히 해외 기업 지원 펀드를 조성하고 재정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도 세웠다.상무부는 첨단산업과 에너지 절약 산업에 대해선 특혜를 부여하기로 하고 중국에 지역본부를 세우거나 연구·개발센터 혹은 물류 기지를 만드는 외국 기업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또 중국 정부가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서부 내륙으로 이전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다양한 특혜를 준다는 방침이다.상무부는 지난 4월 중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직접 투자가 58억9000만 달러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22.5%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달(마이너스 9.5%)에 비해 외자 유치 감소폭이 크게 확대되면서 7개월 연속 위축된 것이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외자 유치 규모는 287억 달러로 21%가 감소했으며 이 기간 중국에 설립된 외자 기업은 6241개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34.2% 줄었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 FDI가 30~4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외자 유치가 해외 투자 규모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외자 기업의 진출이 줄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술이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중국 당국의 인식이다. 하지만 첨단산업 등 산업구조 고도화를 할 수 있는 부문으로 우대 조치를 집중해 과거와 같은 무분별한 외자 기업의 진출은 막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