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립대(NUS) 경영대의 성공사례

섭씨 31도를 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공항에 나타난 그는 검은 색의 터번으로 머리카락을 감추고 있었다. 싱(Singh:모든 시크 교도들은 싱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들어간다)이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시크교(Sikhism) 교도인 그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쿨원트 싱(Kulwant Singh) 부학장(deputy dean)이 속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경영대학(Business School)은 홍콩과학기술대학(HKUST:Hong-Ko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경영대학과 함께 아시아 경영대학 순위 1~2위에 꼽힌다. NUS는 1980년대까지 폐쇄적인 관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 끝에 2000년부터 미국 중서부 경영대학 모델을 도입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관료주의가 강한 싱가포르에서 NUS의 성공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경영대학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경영대학의 발전과 경쟁력을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는 처음이어서 관심이 컸다”며 흔쾌히 초청에 응했던 싱 부학장은 한국의 경영대학이 150개가 넘는다는 얘기에 “한국 기업의 저력과 경영대학의 규모로 봐서 향후 한국이 아시아 경영대학의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싱 부학장은 발제에 앞서 “지금 얘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성공의 과정이 이러했다는 것이지, 처음에 짠 전략이 모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1965년 학부대학으로 설립된 NUS 경영대학은 1981년 경영전문대학원(MBA), 1982년 최고 과정(Executive Education), 1986년 박사과정(PhD)이 추가로 설립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 NUS는 주로 리서치와 강의 위주의 전형적인 영국식 학교였다.연구 발표, 논문 발표는 별로 없었다. 교수들은 2년마다 논문 1편만 발표하면 될 뿐이었다. 임금은 고정급이었고 성과급은 없었다. 인센티브가 없었기 때문에 능력 있는 교수들은 외부 용역을 했었다. “1980년대는 그 어떤 대학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교수의 자질은 좋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았다. 좋은 인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싱 부학장의 설명이다.2000년부터 큰 변화가 있었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인한 영국식 제도와 문화를 미국식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이 시기부터 미국 중서부의 연구 위주 대학과 비슷한 모델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을 모범 사례로 지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관료적인 규제로 난항을 겪기도 했다. 최근 11년 동안 학장이 8명이나 바뀌는 등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다. 1997~98년에는 교수의 80%가 1~2년의 재직 기간만을 채우고 이직하기도 했다.그는 MBA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구조조정 이전까지는 학부 경영학에 힘써 왔지만 진정한 비즈니스 스쿨은 MBA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추가로 최고위 MBA(Executive MBA)도 설립했다. 대신 MSC(수학 기초과학 전산학) 등은 통폐합해 핵심 역량에만 집중했다. 추가로 박사과정도 필수적이다.”컨퍼런스 내내 대학 행정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 것을 의식해서인지 싱 부학장도 이에 대해 조언했다. “경영대학 전문화를 위해서는 행정 업무 전문가를 데려와야 한다. 전문적이면서 권한이 위임돼야 가능하다.” 단순히 행정 전문가라기보다 경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국내 학장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국제화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학부의 40%, MBA의 60%가 교환학생을 경험하고 있는데, 2년 내로 학부는 60%, MBA는 100%까지 올릴 계획이다. “전체 학기가 아니라 여름 학기만이라도 해외 교환학생을 추진해 비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라는 설명이다.연구에도 우선순위를 둬서 교수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연구 저널 상위 4~5위 매체에 적어도 매년 4~5개의 논문을 발표하도록 했다. “교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전환이었지만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자칫 연구에 치중하면 교육이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균형을 맞추도록 주문하고 있다. 인센티브를 살펴보면 교수 채용, 진급, 임기, 연간 평가, 보상 등 모든 절차가 모두 마련돼 있다. 글로벌 표준을 도입해 투명성을 제고했다. 이런 국제화된 표준과 규범은 국제화 노력의 필수로 여겨진다. 기대치는 글로벌인데, 인센티브가 로컬이라면 글로벌 성과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국내 학장들의 발표에서 학장 임기가 2년이라는 것에 놀란 듯 싱 부학장은 “우리도 리더십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기본적으로는 학장 임기는 3년이고 연임이 가능해 최대 9년까지 할 수 있지만 지난 11년 동안 8명이 바뀌는 과정을 겪었다. 안정적 리더십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구조조정 당시에는 교수들의 이직률이 15%로 매우 높았지만, 지금은 이직률이 5~6%로 낮아졌다. 교수들은 연간 3개 과정만 강의하면 된다. 부임 3년이 지나면 안식년을 쓸 수 있는데, 안식년에는 급여 100%를 다 주고 추가로 연구비까지 지원된다. 그러나 연구 실적이 좋지 않으면 강의 과목이 늘어난다. 교수들은 24개에 달하는 티어1(Tier1)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한다.기타 해외 대학과의 파트너십, 글로벌 인증제도, 글로벌 대학과의 교류 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이런 부단한 노력으로 이룬 결과에 대해 NUS 측은 만족스러운 입장이다. 싱 부학장은 “랭킹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교수 학생 동문들은 관심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순위에 20위 내에 3번 들었고, 또 늘 35위 이내에 든다”고 말했다.싱 부학장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리더십의 안정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장은 임기가 너무 짧은데 더 길어야 한다. 꼭 이 점을 성취하기 바란다. 둘째, 대학 차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대학본부의 메시지와 행동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교수진이 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제도가 사람·프로그램보다 먼저다. 아무리 와튼 스쿨 출신의 교수를 데려와도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연구와 강의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넷째, 교수진은 가장 큰 골칫거리이자 해결책이다. 교수진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의 ‘교수들은 계열사와 같다’고 했는데 동감한다. 계열사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다섯째, 아시아적 기준은 없다. 아시아라고 불이익을 받을 수는 없다. 여섯째, 연구와 강의 기준을 일치시켜야 한다.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이론과 실제, 글로벌과 로컬 기준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일곱째, 미국 연구를 무조건 갖다 붙여서도 안 된다. 모든 과정에서 사례의 50% 이상은 아시아 사례를 연구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여덟째, 관료주의를 이겨내야 한다. 학교가 큰 그림을 그렸는데, 작은 것에 얽매이면 실패할 것이다. 한국 교육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투쟁해야만 얻을 수 있다.”6월 25일 출국한 싱 부학장은 “실시간으로 통역이 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며 동시통역에 대해 신기해했다. 해외 컨퍼런스에서는 화자가 말한 뒤에 통역사가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는 또 저녁 식사 때 한국경제신문에 당일 행사가 소개된 1판 기사를 보고 한국의 ‘스피드’에 또 한 번 놀라워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