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겨울이 지나고 그 다음 해였던 그 봄.꽃은 피었지만 몹시 씁쓸했던 어느 봄날, 임원회의에서 난 두 가지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다. 하나는 출판 종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과 불경기 때 가장 어렵다는 팬시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나를 MD(미쳤거나 돌았거나)처럼 쳐다봤다. 심지어 어느 임원은 잘나가다 망한 팬시 회사 임원까지 동원해 날 설득하려고 했다.그러나 사업을 만류하러 왔던 그 친구는 내가 1년 전부터 팬시 사업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왔다는 사실과 시장 매출이 반으로 줄었지만 문 닫은 회사가 70%가 넘었으니 시장이 더 넓어지지 않았느냐는 내 말에 오히려 설득돼 같이 일하게 됐다. 그리고 1년 후 우리는 운 좋게도 팬시상품의 빅히트로 지금의 사옥을 지을 수 있었다.그 후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했다. 난 또 두 가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하나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만화 잡지를 창간한 것과 그 시절에 인터넷을 하기엔 아직 이른 9세 미만을 위한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유아 책과 저학년이 볼 수 있는 아동 책은 지금도 회사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지만 거창했던 세계 최초의 온라인 만화 잡지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작은 교훈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콘텐츠 사업은 반 박자만 빨라야지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는 것을.대다수의 기업들은 연말이면 차기연도 사업 계획을 세우기에 분주할 것이다. 나 또한 편집장 시절 사업 계획과 망년회로 12월 한 달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냈던 기억이 있다. 난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한 번도 차기연도 계획을 세워보지도, 세우라고 한 적도 없다. 어차피 세워봤자 절반도 맞지 않을 테니까.예를 들면 많은 성인들이 아는 만화 ‘신의 물방울’도 권당 3000부로 기획된 책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200만 부가 나갔다. 예상치보다 50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이렇게 많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챔프’란 잡지를 창간할 때 인기 작가들을 모두 전속 계약해 다른 잡지에 기고할 수 없게 했던 라이벌 회사 때문에 난 눈물을 머금고 신인들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열혈강호(전극진 양재현)’, ‘라그나로크(이명진)’,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명진)’, ‘검정고무신(이우영)’ 등 슈퍼 신인의 등장으로 1년 후 최고의 잡지로 만들 수 있었다.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순정만화 잡지를 창간했다. 하지만 1년 후에 슬프게도 이 잡지는 폐간이라는 쓸쓸한 종말을 맞이했다. 이렇듯 콘텐츠 사업은 참 쉬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려운 도깨비 같은 비즈니스다. 때론 출판이 야구 경기와 비교될 때도 많다. 열 권 출판해 두 권(2할)이 인기 있으면 보통이고 세 권(3할)이면 아주 좋은 성적이다. 난 안타를 많이 치는 이치로보다 홈런을 치는 이승엽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안타를 많이 치면 근근이 먹고 살지만 홈런(대히트) 한 방이면 3년은 아무 탈 없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어떨 땐, 잘나가는 설렁탕집 사장님이 부러울 때가 있다. 맛있는 음식 하나만 잘 개발하면 대를 이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콘텐츠 사업은 변화 없이 3년만 똑같이 일하면 무조건 망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 자식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기도 하다.콘텐츠 기업은 무조건 망하게 되어 있다. 빨리 망하느냐 늦게 망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몸부림치며 일하고 있다. 내 대에서 망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약력: 1957년생. 82년 보물섬(육영재단) 창간. 88년 아이큐 점프 창간 및 편집장 역임. 95년 주간 소년만화 전문지 찬스(학산문화사) 창간. 96년 명지대 사회교육원 만화예술학과 지도교수 역임. 2009년 주식회사 학산문화사 대표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