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경영대·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 - 시장 생태계에서 윤리를 묻다 ②

①소비자 윤리(기업 윤리에서 시장 윤리로)③ 경영 프로세스 윤리④ 지식 경영과 윤리경영⑤경영 윤리와 사회윤리⑥윤리 경영을 위한 IT의 역할⑦기업 내부 통제 시스템을 활용한 윤리 경영 강화⑧글로벌 윤리 경영지난여름 제일모직의 아동복 브랜드 빈폴키즈는 여름 상품으로 휴양지에서 귀여운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림이 담긴 치마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제품은 국내에도 판매 중인 프랑스 아동복 브랜드 드팜의 제품과 디자인이 똑같다는 보고가 매장의 직원으로부터 접수됐다. 빈폴키즈 측은 사실 확인 후 급하게 전량을 회수했다.문제가 된 이 디자인은 빈폴키즈 측이 공급 업체로부터 제안 받은 제품 중 채택된 것이었다. 문제의 제품은 이제 막 전시용으로 매장에 공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회수가 쉽게 이뤄졌지만 수십 년간 쌓아 온 빈폴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이 사건 이후 빈폴키즈 측은 문제가 됐던 공급 업체와 거래를 중단하고 다른 공급 업체들에도 디자인 도용 및 복제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빈폴사의 양희준 과장은 “공급 업체인 중소기업들은 열악한 상황 때문에 디자인을 급하게 모방하는 경우가 패션 업계에는 종종 있다”며 “수백 개의 디자인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일일이 점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의 자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빈폴사는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장기적 계획을 세워 내부 연구·개발팀을 확대하고 독자적 디자인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양 과장은 “현재 자체 디자인 비율은 80%, 외부 업체 비율은 20%이지만 향후 100% 자체 관리하며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창의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직 관리 분야에서 윤리성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신중한 사고 작용에 의해 윤리 행동을 결정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 동향은 인간의 인지 작용은 편향돼 있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자동적인 사고 작용에 의해 윤리 행동을 결정한다는 의견이다. 대부분의 인간의 인지 작용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것처럼 윤리적 생각·행동도 무의식적·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하버드대의 맥스 베이저만 교수와 마자린 바나지 교수, 뉴욕대의 돌리 처 교수 연구팀은 ‘제한된 윤리성’에 대한 연구를 실행했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자신이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데, 자신이 비윤리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런 ‘제한된 윤리성’은 인간의 사고 작용의 불완전함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의 사고 작용은 인지심리학을 주축으로 해서 왜, 어떻게, 누가, 어떤 현상에서 일어나는지 매우 방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기 때문에 비윤리적 행동도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예측 가능하게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시간 제약은 불완전한 인간의 사고 작용을 더 불완전하게 만든다. 즉, 경영자들이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낄 때 비윤리적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매우 높다.시간 제약이 있으면 시간 제약이 없는 상황보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워진다.와튼 경영대학원 모리스 슈와이처 교수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단어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참가자의 3분의 1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이 없는 단순 목표를 제시했고 3분의 1에게는 일정 수의 낱말을 만들면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는 보상 목표가 주어졌다. 나머지 3분의 1에게는 구체적인 목표 없이 “최선을 다하십시오”라는 지시를 주었다.모든 참가자들은 1분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낱말을 만들어야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몇 개의 낱말을 만들었는지 스스로 보고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이 스스로 보고한 낱말 개수가 실제로 만든 낱말의 개수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연구팀이 실제로 개수를 확인할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결과는 단순 목표나 보상 목표 설정을 받은 실험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라”는 설정을 받은 실험 참가자들보다 자신의 성과를 더 많이 허위로 보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목표에 가까웠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저조한 성과를 올린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자신이 목표를 달성했다’고 거짓말을 했다.슈와이처 교수 연구팀은 경영자들은 어떤 목표가 설정치에 거의 가깝게 이뤄지고 있을 때, 또는 어떤 목표를 촉박한 시간 내에서 이뤄야 할 때, 특히 비윤리적 행동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이런 점을 감안할 때 위에서 본 빈폴키즈 사례의 경우 공급 업체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긴 시간과 비용이 드는 창의적 과정을 생략한 채 간단히 유명 제품을 모방하는 비윤리적 선택을 감행한 것으로 분석된다.4년 전 중국 최대 자동차 업체 치루이(奇瑞)자동차가 국내 GM대우의 마티즈와 똑같은 QQ라는 이름의 이른바 ‘짝퉁’ 차량을 제조해 화제가 됐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또 다른 짝퉁 마티즈 전기차가 나와 지방정부의 정식 허가까지 받은 채 생산·판매되고 있다. 차량 외관이 마티즈와 거의 같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장치도 중앙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지 못한 채 중국 전역에서 운행되고 있다.승인을 내준 지방정부는 “외관은 마티즈와 같지만 휘발유가 아닌 전기로 가는 차이므로 짝퉁이 아니다”며 짝퉁차라도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억지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새로운 모델의 자동차 개발에 일반적으로 3~4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자동차 관련 개발 기술이 쌓여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자동차 개발은 △제품 기획 단계△선행 개발 △디자인 단계 △설계 단계 △시작 단계 △시험 단계 △생산 준비 단계 △시험 생산 단계 △양산 단계 등 복잡하고 수많은 과정을 통해 시장에 나온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손쉽게 모방하는 것은 개발자의 긴 시간에 걸친 노력과 땀을 훔치는 비윤리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부 사항까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외관만을 단지 베끼며 고객들에게는 위험한 제품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시보레는 1960년대 코르베어란 스포츠카를 출시했다. 코르베어는 포르쉐 등 유럽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지만 가격은 저렴했다. 엔지니어들은 비용이 절감되고 조립이 쉬우며 디자인에서 훨씬 단순한 ‘스윙 엑슬 후방 독립 현가장치’를 선택해 생산비용을 낮췄다.그러나 이 디자인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고속으로 커브를 도는 경우 바퀴가 밑으로 밀려들어가 자칫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었다. GM 엔지니어 중 일부는 이 차가 설계상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시보레의 기술부장은 이른 시일 내에 현대적인 후방 엔진 자동차를 생산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엔지니어의 경고를 무시한 채 개발을 밀어붙였다.결국 코르베어는 출시된 후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나 비난 여론과 함께 GM 법무부서에 밀려드는 소송으로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GM 계열 캐딜락 사업부문의 부장 아들도 코르베어 사고로 사망했다. 부사장의 아들 역시 심각하게 다치기도 했다.이 사건을 통해 업계에 전통적으로 존재해 왔던 생각, 즉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윤리를 무시하는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들에게 안전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고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였다.GM은 1950년대 자사의 차량보다 더 작고 가벼운 유럽 차와 경쟁할 수 있고 가격도 충분히 저렴해 널리 보급될 수 있는 차를 만들고 싶어 했다. 새로운 차종에 대한 기획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코르베어가 출시됐다. 4년이라는 시간은 당시 1950년에 있어 자동차처럼 복잡한 제품을 개발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GM은 이윤을 위해 ‘어느 정도 결함이 있더라도’ 시장에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압박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비윤리적 행동은 자기 규제(self-regulation) 실패 때문에 일어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자기 규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비윤리적 행동이 일어난다. 시간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는 인간의 자기 규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뉴욕대 야코브 트로브 교수와 텔아비브대 니라 리버맨 교수 연구팀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1년 후 이상의 먼 미래를 상상할 때는 총체적인 사고를 하지만 내일과 같은 가까운 미래를 상상할 때는 좁고 개별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그들의 최근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의 2분의 1에게는 먼 미래와 관련 있는 총체적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나머지 2분의 1에게는 가까운 미래와 관련 있는 좁고 개별적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 후에 자기 규제 능력을 측정했다.좁고 개별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된 사람들은 총체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된 사람들보다 자기 규제에 실패했고 유혹에 대해 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시간 제약하에서 일어나는 좁고 개별적 사고 작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을 때 일어나는 총체적인 사고 작용은 당장에 얻는 결과보다 나중에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현재의 유혹을 부정적으로 보는 자기 규제 능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급변하는 세계시장 정세와 점점 더 치열해져 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경쟁 및 빨리빨리 한국 문화는 우리가 인식하는 범위를 벗어나 비윤리적 행동을 무의식적·자동적으로 일어나게 할 가능성을 매우 높다.시장경제 경쟁하에서는 거의 모든 산업이 시간 싸움을 하고 있고 스피드가 기업 성공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경영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사결정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하지만 그 어느 조직이나 변화와 혁신을 통한 윤리 경영에는 많은 고통과 인내가 따르고 변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동부화재는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윤리전담부서에 재무 보고 내부 통제 평가 시스템을 맡기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회계 정보를 관할하고 있던 부서의 심한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투명 경영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의지로 윤리전담부서에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전문 인력을 집중 배치해 독자적으로 재무 보고 내부 통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 결과 동부화재는 지난 2005년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2004년 대비 주가가 146.4% 상승해 기업 가치가 대폭 증대됐다. 주주 가치도 업계 1위로 올라섰다.분·초 단위의 스피드 경쟁에서 긴 시간 인내의 과정을 강요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빠르게 일을 진행하면서도 귀감이 될 만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업계를 주도하는 자라(Zara)는 압도적인 제조 능력과 물류를 갖추고 있으며 빠른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 등으로 유명한 기업이다.자라는 조직 구조를 스피드에 잘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빠르게 물건을 공급하는 공급 시스템 외에도 모든 디자인이 교차 기능(cross-functional) 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바로 옆 데스크에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디자이너와 기획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 등 디자인에 관련된 모든 부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함께 일하면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창조적인 디자인을 계속 시장에 내놓는다.스탠퍼드대의 케슬린 아이젠하트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시간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훌륭한 성과를 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라는 시간 제약 아래에서도 다양한 정보 수집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 구조, 팀 구조, 공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스피드 경쟁에서 계속 새로운 디자인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1974년생. 97년 연세대 사학과 졸업. 99년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 석사. 2008년 미국 코넬대 경영학 박사. 2005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 경영학 방문교수. 2007년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이수진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