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진입 규제 완화가 낳은 막걸리 열풍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12

진입 규제 완화가 낳은 막걸리 열풍
바야흐로 막걸리 전성시대다. 찌개류가 주종인 허름한 주택가 식당은 물론이고 깔끔하고 세련된 도심의 고급 식당에도 막걸리가 준비돼 있다. 고급 소비처인 골프장에도 웬만한 곳에는 갖춰져 있다. 막걸리 열풍은 한국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관심이 특히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독특한 맛과 분위기에 취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 관광객 중에서는 한국의 막걸리를 두루 맛보려고 입국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막걸리 투어다. 엔화의 강세에 힘입어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은 한국의 막걸리에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 ‘그 유명한 막걸리’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우리가 봐도 맛과 양에 비해 싸다. 요즘 물가에다 엔 환율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둘째, 일본에까지 유명한 막걸리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도대체 어떤 데서 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구입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란다고 한다.

일본인들 중에 막걸리를 두루 섭렵해 평가하는 마니아도 나오고 일본에서는 포천 막걸리에 대한 상표등록도 선점해 버릴 정도니 이래저래 놀랄 일이다. 막걸리의 사회경제학이라고 주목해도 좋을 정도로 뜬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상품성과 웰빙 열풍, 경제 사정 등등. 그런 가운데서도 최근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의 분석이 주목할 만하다. 정 위원장은 지난 11월 6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조찬 강연을 했는데 탁주의 선풍이 규제 완화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탁주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화하고 공급 구역 제한을 폐지함에 따라 상품으로 급속히 성장했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제품이 공급됐다는 논리다. 진입 규제의 핵심을 짚은 것이다. 규제라는 것이 이렇다. 국민 대중주 격인 막걸리의 질적 향상, 고급화·다양화·국제화가 가능하게 된 주요 원인이 바로 규제 완화, 규제 가운데서도 진입 규제의 완화였다.

규제 반만 줄여도 잠재성장률 ‘쑥’

문제는 공정위가 시장 진입 관련 규제 완화에 지속적으로 나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종종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것이 공무원들의 오랜 행태다. 공정 경쟁, 투명 시장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이런저런 규제 업무 때문에 공정위는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시장에 대한 규제자’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다.

정 위원장은 진입 규제를 절반으로만 줄여도 잠재성장률을 0.5%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까지 인용하면서 의지를 단단히 보였다. 일회성으로 으레 하는 이야기인지 정말로 진입 규제라는 대표적인 행정 규제, 기득권 보호 규제를 없애나갈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가 당면 추진 업무라고 말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도 연말까지 잘 수행해 낼지가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공정위가 올해 진입 규제의 문턱을 낮추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지난 8월 중순에는 닷새간의 일정으로 평소 민원이 가장 많은 순서대로 일부 서비스 업종의 진입 규제 철폐를 위한 전 단계로 공개 토론회도 가졌다.

해운 산재보험 렌털업 미용실 안경원 등 11개 업종이 대상이었는데 진입 장벽을 없애는 방안과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심을 나타냈다. 일자리 창출과 소비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의 거창한 방향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경쟁을 통해 서비스 품질 개선과 가격 인하를 바라는 다수 소비자들의 입장을 생각할 때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장경제의 발전 원리를 감안할 때도 경쟁 제한적인 요소는 없애 나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존의 사업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잉보호되면서 당연시돼 온 기득권을 어느 날 내놓으라니 빼앗기려 하지 않고 반항한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공청회 때도 진입 규제의 유지를 요구하는 기존 사업자들이 공청회장에 밀고 들어와 여론 수렴 일정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렇듯 시장의 기능 활성화라는 당위성은 명분이고 목표일뿐 당장은 밥그릇 싸움 같은 일이 빚어진다. 그러나 진입 규제 완화로 수익이 저하되는 곳에는 경과조치를 둔다거나 경쟁 체제가 제대로 갖춰질 때까지 특별한 지원 프로그램을 강구하는 식으로 해서라도 설득해 나가야 한다. 기득권을 포기하게 하고 변한 환경에 적응하게끔 유도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제화로까지 치닫는 막걸리의 약진을 보며 공정위가 진입 규제의 철폐를 위해 어떤 각오로 이행해나갈지 지켜볼만하게 됐다.

허원순 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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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