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불붙은 카르텔 전쟁…속타는 기업들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13

불붙은 카르텔 전쟁…속타는 기업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각국마다 ‘카르텔(담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부시 정부가 공정 경쟁 관련법의 집행에 지나치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제 카르텔을 공격적으로 차단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닐리 크로에 유럽연합(EU) 경쟁위원회 위원은 지난해 12월 “EU 경쟁법 집행의 최우선 순위는 카르텔 적발과 제재”라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 정책 당국자들은 표면적으로는 국제 카르텔이 시장경제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국적기업들로부터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특히 아시아 국가를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가전·자동차·반도체 등에서 엄청난 이익을 취하자 이에 대응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취지다.

게다가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 경제국들도 공정 경쟁법을 대폭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선진국에서 발길을 돌려 자국으로 몰려드는 해외 기업들의 담합 혐의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겠다는 정책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국내 기업들의 카르텔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워낙 해외 경쟁 당국들의 카르텔에 대한 규제 강도가 세다보니 국내에서부터 미리 카르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공정위는 소주 업체 국내외 항송사의 화물 운송료, 전국 30여 개 주유 업체의 판매 가격 담합 등 10여 개 업종에 담합 혐의를 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과징금 약하게 때리면 의심 살까 우려

하지만 공정위의 이런 정책 의지가 아직 업계에서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르텔이 반시장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공정위가 업계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카르텔을 잡아내려고만 하는 성과 중심주의에 급급해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담합 판정을 받은 액화석유가스(LPG) 업체들은 “전체 가격에서 원가와 환율 등 외부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통상 절반을 넘고 세금 등을 감안하면 가격을 담합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객관성이 논란 대상이다. 정호열 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일부 담합 혐의가 있는 업종에 대해 과징금 규모의 예측치를 미리부터 밝혔기 때문이다. 담합 여부와 과징금 규모를 판정하는 공정위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한 위원은 “집행 당국의 수장이 담합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바람에 독립적인 기준으로 사안을 판단하기 힘들어졌고 설사 소신 있게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객관성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카르텔 조사에 임하는 심사관들이 추후 ‘기업 봐주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징금 규모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매긴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들어 공정위 출신 공직자들이 대형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카르텔 조사에 들어간 심사관들이 과징금을 약하게 부과하면 추후에 기업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법무법인에 잘 보이기 위해 그렇다는 의심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추후 감사원의 감사를 받을 때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징금을 많이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몰아치기’식 조사가 가뜩이나 한국 기업들의 동향에 민감한 해외 경쟁국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의 무더기 카르텔 적발이 “한국 기업들은 상습적으로 카르텔을 일삼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서도 기업들이 하루 빨리 카르텔에 대한 인식 수준을 국제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이의가 없다. 한 기업 관계자는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기업들이 공정위가 제시하는 카르텔 기준을 체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솔직히 말하면 그 기준이 높다고 불평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응석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 경쟁법 전문 변호사도 “공정위의 정책 방향이 맞는다는 것을 모두 인정해야 된다”며 “다만 공정위와 기업 간의 인식의 차이를 얼마나 빨리 좁힐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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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