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처럼 경제 전망을 하기 힘든 해도 드물다는 것이 거시경제 학자,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불황이 할퀴고 간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구체적인 데이터 부족으로 대공황 당시와 비교하기도 어렵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속 시원하게 내년 전망을 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해가 된다.그렇다고 해서 마냥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비관이 비관을 낳고 불안이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 세상 이치 듯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 불황이 터졌을 때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가 쓴 ‘야성적 충동’이 세인의 관심을 끈 이유는 인간의 심리가 경제 주체의 근본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쉬우면서 예리하게 짚어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내년 우리 경제와 세계경제는 어떤 상황을 연출할까. 시작이 그렇듯 가장 큰 변수는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지만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아직 절대적이다.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앞으로 10~50년 이후의 일이다. 상황에 따라선 그 이후로 늦춰질 수도 있다. 내년 우리 경제엔 사망 선고 직전까지 갔던 미국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살아나야 중국이 살아나고 우리의 주요 수출처도 회복되기 때문이다.그나마 최근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전반적으로 내년 미국 경제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 부양 조치와 달러 약세를 통한 수출 호전에 힘입어 올해보다 다소 나아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반기까지는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되겠지만 하반기부터는 금리 인상 압력이 강화되면서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지역 국가들마저 출구전략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제통화기금은 내년 선진국 경제성장률을 1.3%로 내다봤다.현대증권 이상재 애널리스트는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당분간 저성장(Low growth), 저물가(Low inflation), 지역 간 불균형 축소(Lower global imbalance) 등 3L 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면서 “올해가 R(불황:Recession)에서 R(회복:Recovery)로의 변화였다면 내년은 더블 딥 공포에서 자생적 성장(Sustainable growth)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비관론자들이 내년도 우리 경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 것도 결론은 미국이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2년여에 걸쳐 지속된 정책 효과가 약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무엇보다 가계 부채의 저점을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 내 소비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실업률 등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은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이유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의 자율 상승을 좌우할 민간 투자는 브릭스(브라질·인도·러시아·중국) 국가들의 과잉투자 부담과 미국 설비 투자 지연으로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이라며 경기 회복 시점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잡았다.우리 경제는 다소 우울한 전망이 많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정부가 내년 확장 정책을 펴기 힘든데다, 유가로 대표되는 원자재 값 상승, 여기에 달러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1150원까지 하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다만 금리와 재정정책이 정상화되면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인 4% 수준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민간 부문의 투자 확대가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가파른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있지 않는 점, 자금이 부동산 등 일부 자산에 편중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를 우울하게 만드는 불안 요인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임형석 연구위원은 “투자 심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데다 대부분의 제조 업종별 가동률이 과거 평균치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지난 확장 국면(2005~07년)의 평균치(7.6%)에 비해 늘기는 힘들다”면서 “특히 경기 확장 정책의 장기간 지속은 자산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재정·통화·환율정책의 최적 정책 조합(Policy Mix) 모색을 통해 안정 성장을 도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불안은 불안감만을 키우는 악순환을 만들뿐이다. 최악이었던 올해에 비해 내년은 기대치만큼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지 경기가 후퇴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년은 2011년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그리기 위한 전 단계 성격이 짙다. 2010년 대전망 기획에 참여한 상당수 전문가들이 여러 지면을 통해 회복과 희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자. 이런 관점에서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상건 이사가 △자산 시장 차별화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강조하면서도 △금리 인상에 대비해 대출 상환 전략을 수립할 것을 주문한 것은 의미가 있다. 뒷장에는 경기 혼란기인 현재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조언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