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정부 지원 축소…자생력 갖춰야 ‘생존’


2008년 하반기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신종플루라면 한국이 1997년 겪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백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덩치 큰 강대국들이 골골거리는 가운데 내성을 지닌 한국은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간 보아 온 대로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점유율이 크게 늘었고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치킨게임(담력 경쟁)’ 승리자의 달콤함을 즐기고 있다.

10년 전 같으면 위기 때 가장 먼저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연구·개발비를 줄였겠지만 이제는 위기에 오히려 인재를 확보하고 연구·개발(R&D)에 집중해야 위기 후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공감대가 국내 기업들에 형성돼 있다. 2008년 국내 총 연구·개발비는 34조498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2%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3.37%로 전년 대비 0.16%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웨덴(3.6%) 핀란드(3.46%) 일본(3.44%)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09년 6월 경제 불황기 기업들의 R&D 전략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56.2%가 ‘가격 경쟁력 심화에 따른 핵심 기술 확보’를 1순위로 꼽았다. 반면 과거처럼 ‘경영층의 자금 절감 및 개발 기간 단축 요구’는 11.7%에 불과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은 경제 불황기에 비용 절감보다 핵심 기술력으로 불황을 타개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 중심의 경제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대부분의 국내 경제·경영 관련 연구소들이 국내 경제성장률을 4% 내외로 보면서 2009년(마이너스 1.0%)보다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08년 2.2%보다 더 빠른 회복세다. 이에 따라 2010년 R&D 투자 증가율도 10% 이상을 상회하는 높은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의 회복 ‘글쎄’

R&D와 함께 지속 가능 경영의 또 다른 한 축은 인재 확보다. 한국 기업들은 더 이상 추격자(fast runner)가 아니라 선두주자(first runner)로서 견제와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입장이다. 이는 단기적인 경제적 성과에 매달리는 것만으로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할 수 없다는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들의 핵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직 문화와 경영 방식 전반을 변화시켜야 기업 구성원의 창조성을 향상시키고 혁신 활동에 참여시킬 수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인재를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은 더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 경영 환경을 살펴보면 내수는 소비 심리와 고용 상황이 개선되고 4대강 살리기 등의 공공투자가 지속되면서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가계 부채의 증가에 따른 소비 여력 감소와 금리 상승 가능성 등으로 회복세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수출의 경우 2009년에는 고환율·저유가·저금리의 혜택에 글로벌 경쟁 기업들의 부진으로 국내 기업이 선전하는 조건이 됐지만 반대의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저달러로 인한 유가 및 국제 원자재가 상승, 글로벌 금리 상승, 그리고 환율 하락의 3중고가 변수가 될 수 있다.

허만율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 주요 산업 경기는 업종 전반에 걸쳐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외 경제 회복의 속도가 더뎌지고 국제 공조하에 추진돼 온 경기 부양책이 점차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위기 이전 수준만큼의 회복은 아니라는 얘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기계·자동차·정보기술(IT) 등의 분야는 제품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호조를 보일 전망이다. 반면 건설·해운·조선업 등은 미약한 회복세로 상대적인 부진이 예상된다. 건설업은 부동산 시장의 회복 지연으로 내수는 정체되지만 유가 상승에 따른 산유국의 오일머니에 힘입어 해외 수주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해운 및 조선업의 경우는 세계경제 회복과 교역 증가로 수요의 반등이 기대되지만 선박 수주량은 소폭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여 한정된 물량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져 제한적인 회복세에 그칠 전망이다.

2010년에는 녹색 산업 경쟁력 강화가 기업 경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각국은 경기 부양 차원을 넘어 차세대 성장 동력의 선점 차원에서 녹색 산업 육성과 친환경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녹색 산업에 투자한다고 해서 당장 1년 내 과실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2~3년 동안은 씨를 뿌리는 과정으로 실질적인 효과는 그 이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내부에서는 인수·합병(M&A)과 그 결과로 인한 재계 서열의 변화가 이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금호생명·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등의 매각을 비롯해 2010년 초까지 유동성 위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효성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포기하면서 대우건설·하이닉스반도체·대우조선해양 등의 초대형 M&A 매물의 향방도 관심거리다.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3사의 합병도 통신 업계에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성숙한 국내 M&A 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열 DW 컨설팅 대표는 “국내 기업들은 차입급 비율이 외국의 평균치를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외부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유동성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또 산업은행이 매각하는 공공 딜과 달리 사적 딜의 경우 무리한 가격 경쟁으로 ‘승자의 저주’가 우려된다. 다행히 정부는 2010년부터는 과도한 차입에 의한 M&A의 참여를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각 기업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우건설·대우조선·하이닉스 향방 ‘주목’

글로벌 시장에서는 선진국의 경기 회복과 중국의 성장으로 글로벌 대경쟁 시대가 오리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해 선진국 제조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중국의 제조업체들이 경쟁 역량을 강화하면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정부는 금융 위기에 대처하면서 금융 경색 완화 및 실물경제 위축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총액 대출 한도를 6조5000억 원에서 9조 원으로 증액하는 등 대대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또 위기 대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 유동성을 신속히 지원하는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을 운영해 2009년 8월까지 20조 원을 지원했다. 또 보증기관에 대한 정부 출연을 확대하고 보증 심사 기준 완화 및 부분 보증률 95% 인상 등의 조치를 통해 중소기업의 대출을 기피하는 금융회사가 대출 만기 연장, 대출을 유도하도록 했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렇게 공급된 유동성은 자산 가격 상승 및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금리 인상을 대신할 출구전략으로 회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은 총액 대출 한도를 줄이고 있고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는 정부도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정부는 2010년 중소기업부문 예산을 축소하겠다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물론 정부는 중소기업보다 가계 부문의 유동성을 축소하는 정책이 요구되지만 중소기업들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비사업 부문의 투자를 줄이고 투자된 것은 회수해야 하며 부채 구조도 재조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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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