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글로벌 자금‘대이동’…주가·집값 ‘들썩’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46

글로벌 자금‘대이동’…주가·집값 ‘들썩’

아시아 자산시장이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외 언론과 국제기구는 연일 ‘거품 경계론’을 쏟아낸다. 홍콩·싱가포르·중국 등 아시아 전역의 주택 가격이 들썩이고 주식시장도 급등 추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제2 금융 위기’의 진원지로 아시아를 지목하는 전문가도 있다. 경기가 가장 빠르게 살아나는 이 지역으로 전 세계 유동성이 대거 몰려들면서 빚어진 결과다. 최근의 거품 논란은 참혹했던 미국 주택 시장 대붕괴로부터 얻은 교훈을 시험하고 있다.

지난 9월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한 7명의 금통위 위원들은 연초부터 2.0%를 유지하고 있는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회의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자산 가격 거품이었다. 최근 공개된 당시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 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최근 주택 가격과 주가 등 자산 가격 거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은 최종 수요자에게 공급되기까지의 오랜 시차로 인해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기면 수요를 둔화시키지 않는 한 주택 가격 상승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과 단기 부동화 자금이 자산시장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쏠림과 주택 담보대출의 급격한 증가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원은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 대책으로 내놓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가 큰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금리 인상과 유동성 흡수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위원도 거품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과거의 경험이나 외국 사례에 비춰볼 때 저금리와 경기 회복세가 어우러질 경우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감독 당국이 주택 담보대출 억제 조치를 연이어 내놓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택 가격 움직임에 대해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날 회의는 대출 억제 정책의 효과를 좀 더 지켜보자는데 일단 합의하고 기준금리 동결을 의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금통위에서 자산 가격 거품 문제가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금통위 위원들은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 가능성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거품론 자체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아직 경기 회복의 온기를 체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금융시장 붕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한 것도 불과 얼마 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시장 거품론은 이미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먼저 국내 주택 시장을 살펴보자.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 4월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서 10월까지 3.6% 상승했다. 특히 강남은 4.4%가 올라 이미 전고점에 도달한 상태다. 10월 이후 급등세는 주춤한 상태지만 로이터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향후 집값이 현 수준에서 6.5%가량 추가 상승한 후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과거 사례를 볼 때 상승 추세는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206.4% 올랐으며 강남은 249.5% 상승했다.

주택 담보대출의 급증 추세도 불안 요인이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예금 은행의 주택 담보대출은 20조9000억 원으로 매월 2조6000억 원꼴로 증가했다. 이는 부동산 투기 붐이 한창이던 2006년 기록한 월평균 증가액 2조2000억 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다행히 LTV 강화(7월), DTI 수도권 확대 적용(9월), DTI 제2금융권 확대(10월) 등 정부의 잇따른 대출 억제 조치로 그런대로 급한 불을 껐지만 언제든 급등세는 재연될 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홍콩 주택 시장은 연일 걷잡을 수 없는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특히 고급 주택의 거래가 급증하면서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0월 도널드 창 홍콩 행정 수반은 부동산 버블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경고했지만 같은날 불과 몇 시간 후 ㎡당 1억1520만 원(평당 3억8000만 원)짜리 초고가 아파트가 팔려나갔다.

홍콩의 부동산 거품은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1000만 홍콩 달러(약 130만 달러) 이상 고급 주택 가격은 28%나 뛰었다. 또 9월 전체 주택 판매도 1만2285건으로 전달보다 1000건 이상 증가하는 등 부동산 투자 열기는 계속 가열되고 있다.

싱가포르도 지난 3분기 주택 가격이 15.8%나 뛰었다. 이는 28년 만에 최고치다. 주택 거래량은 3분기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 들어 누적 거래량은 이미 작년 대비 세 배를 넘어섰다. 한 아파트 개발 업체는 분양 전날 가격을 5%나 인상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부동산 시장의 투기 조짐에 맞서 싱가포르 정부는 긴급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분양 계약 시 매입 대금의 10~20%만 내고 나머지를 완공 후에 납부하는 분양 방식과 매월 이자만 납부하고 원금을 만기에 일시 상환하는 주택 대출을 금지했다.

글로벌 자금‘대이동’…주가·집값 ‘들썩’
아시아 증시 ‘나홀로 강세’

지난 10월 중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도 1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에 따르면 10월 중국 주요 70개 도시 주택 가격 상승률은 평균 4.0%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광저우(12.1%), 진화(11.0%), 선전(8.9%) 등의 상승률이 두드러진다.

거품 징후가 발견되는 곳은 부동산 시장만이 아니다. 아시아 주식시장은 올 들어 일제히 급등해 대부분 작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외국인 전용 시장인 중국 상하이B 지수는 올 들어 100% 가까이 급등했다. 인도네시아(75.74%) 인도(70.42%) 대만(65.39%) 필리핀(60.01%) 태국(57.39%) 홍콩(54.77%) 싱가포르(53.70%) 등도 50% 이상 뛰었다. 한국도 올 들어 40.74%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 다우지수 상승률은 20%대에도 못 미쳤다.

이처럼 아시아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기업공개(IPO)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7월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쓰촨고속은 거래 첫날 하루 300% 폭등했으며 장중에는 지나친 가격 급등으로 두 번이나 거래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국영 건설 업체인 건설엔지니어링 IPO는 500억 위안 규모로 작년 3월 이후 세계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자금‘대이동’…주가·집값 ‘들썩’
과열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규 상장 기업은 계속 줄을 잇고 있다. 현재 IPO를 준비하고 있는 아시아 기업들의 조달 예정 자본 규모는 134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최초의 민간 은행인 민생은행과 미국 카지노 업체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마카오 사업부인 샌즈차이나가 최대 관심 종목이다. 이들 두 업체는 홍콩 증시에서 IPO를 통해 각각 40억 달러와 34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다른 곳에서도 대형 IPO 계획이 한창이다. 말레이시아 최대 휴대전화 업체인 막시스는 쿠알라룸푸르 증시를 통해 37억 달러 규모의 IPO를 앞두고 있다. 중국 자오상증권도 상하이 증시에 상장을 준비 중이다.

전 세계에 여전히 경기 침체의 고통 소리가 낭자한 가운데 지난 2분기 이후 유독 아시아 자산시장만 이처럼 들끓고 있는 것은 글로벌 유동성의 대이동이 가져온 결과다.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막대한 자금이 선진국 시장의 저금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성장의 땅’으로 부각된 아시아로 대거 몰려든 것이다.

‘달러 캐리’ 투자 급증…대혼란 가능성

세계은행은 11월 초 발간된 보고서에서 동아시아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 자금이 갑작스럽게 ‘재등장’하면서 아시아 전역의 주식시장과 중국·홍콩·싱가포르·베트남 등의 부동산 시장에서 자산 가격 거품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동아시아에서 무려 990억 달러의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갔다. 그러나 3월 이후 해외 자금이 대거 유입돼 올 상반기에만 440억 달러 순유입을 기록했다. 990억 달러 순유출에서 440억 달러 순유입으로의 이러한 대반전은 금세기 최대 규모다.

해외 투자자들은 아시아의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 이에 따라 이 지역 채권 발행액은 올 들어 19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2007년과 2008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의 귀환도 이어졌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서 상반기에만 190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 주가의 강한 반등은 높은 성장과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이 지역의 역할 증대에 따른 것이지만 급격한 상승 속도는 투기적 거품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서 특히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달러 캐리 트레이드다. 미국에서 저금리의 달러를 빌린 다음 이를 고성장 국가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아시아 지역에서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통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추구하는 거래를 가리킨다. 그동안 일본 엔화가 주로 이러한 캐리 트레이드에 활용돼 왔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달러가 엔화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달러화의 명목금리(리보 3개월)는 0.28%이지만 물가상승률이 1.4%에 달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1.12%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폭넓게 이뤄지고 있으며 엔 캐리 트레이드에 비해 단기 위주로 운영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단기 운영이 많은 것은 달러의 초저금리 지속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대부분의 주요국 금리가 1%를 밑돌고 있어 달러 금리가 소폭만 올라도 캐리 트레이드 조달 통화가 급격히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경우 아시아 자산시장에 큰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 당국은 자산 가격의 거품 가능성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거품 차단을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선택한 나라는 아직 없다. 이는 금리 인상이 국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있는 데다 자산 가격 거품 여부에 대한 확신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년 미국과 유럽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이 감소하고 과열 분위기도 수그러들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주택 시장 붕괴가 남긴 교훈 중 하나는 거품 형성을 사전에 막는 것보다 거품이 터진 후 뒷수습하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자산 거품의 초기 단계에 과감한 정책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금‘대이동’…주가·집값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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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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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