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경찰 백차 1호’의 호통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55

‘경찰 백차 1호’의 호통
무려 10남매를 둔 우리 집은 대가족이어서 아이들만 15명이나 같이 살았지만 싸움을 하거나 일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집단 기합(얼차려)이 떨어졌다.

내 고향은 지난해 기름 사고가 났던 태안의 시골 마을이다. 우리 마을에서 엄하기로 유명했던 아버지는 ‘경찰백차 1호’로 통할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겨울 같은 농한기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화투 놀이를 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이러한 노름을 하지 못하게 동네를 밤낮으로 순시했고 가끔은 불시 단속에 걸리면 혼쭐을 내기도 했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동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해서 아예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사촌 누이가 동네에서 최초로 연애결혼을 하게 됐는데 원칙을 어긴 그 결혼식에 가족 친지들이 한 사람도 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바람에 결혼식 때 애를 태운 일도 있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길을 지나가다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동네에서 땅이나 재산으로 다툼이 일어나면 아버지가 경찰 역할을 도맡아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못한 측에 대해서는 반드시 바로잡도록 훈계했다. 이러한 역할은 집안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무려 10남매를 둔 우리 집은 대가족이어서 아이들만 15명이나 같이 살았지만 싸움을 하거나 일정한 기준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집단 기합(얼차려)이 떨어졌다.

이렇게 서슬 시퍼렇던 아버지도 50이 넘으시면서 인생의 대변신을 하시며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집안의 경사가 있거나 동네에 잔치가 있을 때 언제 배우셨는지 악기가 아닌 입으로 ‘품품’ 하고 크게 소리를 내면서 품바 춤을 추시며 흥을 돋우시고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오르면 젊은 사람도 불기 어려운 ‘퉁소’를 뒤춤에서 꺼내 한바탕 부시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처음에는 너무 의아해하는 눈치였지만 어느덧 같이 어울려 한바탕 신나는 마당이 만들어졌다.

또 하나는 그렇게 완고하게 반대하던 연애결혼에 대해서도 언제부턴가 해금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 후 작은 형님부터 여동생까지 모두 연애결혼을 했고 막내였던 내가 오랜 연애 끝에 시골로 인사를 갔을 때 호통 대신에 막내며느릿감을 보고 기뻐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완고함과 여유로움이 교차하고 변신하는 이러한 모습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80도 넘기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지만 이러한 DNA를 물려받았는지 나는 집안에서 이러한 원칙과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고 지금까지 실천해 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특별히 어떤 것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두 자식들이 다 직장도 다니고 결혼해 손녀까지 있지만 아이들은 집안의 일에 원칙을 지키고 스스로 알아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원칙만 지킨다면 아이들에게 크게 참견하기보다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고 남들처럼 헌신적으로 자식 사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꼭 한 가지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나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고기를 직접 잡아주기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보면 사뭇 다른 모습들이 너무 많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줘야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적인 사교육비에 직장을 알아봐 줘야 하고 결혼 때는 빚을 내서라도 혼수를 장만해 줘야 한다. 또 손자를 봐줘야 하고 반찬거리를 채워주다 못해 심지어는 카드까지도 내준다. 그러나 부모가 헌신적인 역할을 다했다고 해서 책임이 덜어질까. 부모는 자식들에게 때로 이기적이어야 하고 경찰처럼 엄해야 한다. 잘못을 해도 정해진 룰이나 원칙을 벗어나도 나무라거나 호통치는 일들이 사라지고 있다.

선진국은 국민소득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고 예측이 가능한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선진 사회가 되려면 질책과 잘못에 대한 이 나라 아버지들의 호통이 부활해야만 하지 않을까.

1954년생. 78년 삼성물산 입사 후 삼성비서실 인사기획팀, 삼성생명 인력개발팀, 삼성자동차 관리본부장을 거치며 인력개발·교육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04년부터 조인스HR 대표이사를 맡아 국내 인재 개발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가재산 조인스HR 대표이사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09-11-17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