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729호 (2009년 11월 23일)

달러 ‘기고’ 금 ‘날고’…금융시장 ‘초비상’

기사입력 2009.11.17 오후 01:57

달러 ‘기고’ 금 ‘날고’…금융시장 ‘초비상’
월가의 눈이 달러와 금값에 모아지고 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달러 값과 사상 최고치를 연일 갈아 치우고 있는 금값이 과연 어느 선에서 진행을 멈출 것인지가 관심이다. 현재 진행형인 달러와 금의 역방향 시세 변동이 국제 머니 마켓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사회에 미칠 영향에도 국제 금융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美정부가 약(弱)달러 용인= 약달러 기조는 지난 11월 6∼7일 영국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렸던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이후 확실히 굳어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각국은 세계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회복될 때까지 서둘러 기준금리 인상 등의 ‘출구전략’을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는 전 세계가 약달러 기조를 공식적으로 용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회의 후 달러화 가치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달러는 지난 11월 9일(미국 현지시간) 현재 1유로에 1.4990달러에 거래됐다. 거래일 기준으로 전날보다 가치가 1% 더 떨어졌다. 지난 11월 3월 이후로는 18%가 폭락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 인덱스 역시 74.93으로 하락, 지난해 8월 이후 15개월 만에 최저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약달러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쌍둥이 적자, 재정 적자와 경상적자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또는 적어도 떨어진 채로 유지된다면) 한국산 TV나 프랑스산 와인 같은 수입품의 가격은 올라가게 된다. 이 경우 미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돼 미국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게 된다. 수입이 줄고 국산 제품 소비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경상적자가 줄게 된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캐터필러나 인텔, 펩시 같은 수출 기업들도 득을 보게 된다. 싼 통화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더 많은 제품을 팔아 이익이 늘어나면 이들이 내는 세금도 늘어 재정 적자 문제가 숨통을 트게 된다. 또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신호는 돈의 흐름을 주식으로 돌려놓아 주식시장이 랠리를 타게 된다.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 오바마 행정부가 약달러 기조를 유지해 수출과 내수를 도모하는 방법 외에는 특별한 묘수가 없다는 것도 약달러 기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 금 사재기 나서= 국제 투자 자금이 달러 대체 투자 자산으로 급속히 몰리고 있다. 각국이 경기 부양을 도모하기로 함에 따라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인플레가 벌어지면 화폐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금이나 원유 원자재 등 대체 수단에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값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11월 9일(미 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12월 인도분 금 선물은 온스당 1101.40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전 주말 종가보다 5.70달러(0.5%) 더 올랐다.

전문가들은 금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1500달러부터 2000달러까지 간다는 전망도 나온다. 메릴린치는 금값이 18개월 안에 온스당 1500달러까지 갈 것으로 봤다. 상품 투자 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향후 10년 안에 온스당 2000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금융 리서치 업체인 텔레벤트DTN의 다린 뉴섬 수석 애널리스트는 금값이 내년에 1400 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값이 고공 행진하는 데는 중앙은행들의 금 사재기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중앙은행들로서는 값어치가 떨어지는 달러보다 안전 자산인 금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수키 쿠퍼 바클레이스캐피털 귀금속 전문 애널리스트는 “약달러가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에 나서게 된 주요 원인”이라며 “특히 아시아 지역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활발하게 금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불씨는 인도중앙은행(RBI)이 댕겼다. RBI는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금 200톤을 매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RBI의 조치가 다른 중앙은행들을 자극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때마침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도 최근 로이터통신에 “지난 5, 6개월 동안 외화보유액 중 금 비중을 늘려 왔다”고 인정했다.

CNN머니는 금광 업체들도 금을 대거 매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값이 파죽지세로 치솟자 가격 하락을 점치고 내다 팔았던 금을 다시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금 생산 업체 베릭골드는 지난 10월 100만 온스의 금을 매입했다고 이날 밝혔다. 금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블랑샤르앤드컴패니의 데이비드 빔 부사장은 “금값이 치솟자 금광 업체들이 가격 하락에 대비해 마련해 둔 자금을 금을 매입하는 데 쏟아 붓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엔 어떤 영향=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올라가고(환율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500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최근엔 약달러의 영향으로 연일 연중 최저 기록을 계속 갈아 치우고 있다. 달러당 1100원선도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달러화 약세 및 원화 강세는 국내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실물경제에도 국제수지 악화와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 기업들에 타격이 된다. 수출 제품의 가격이 올라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수입 업체들에는 득이 된다. 원화 가치가 올라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제품을 살 수 있게 된다.

특히 약달러로 원유 가격이 오르고 있어 국내 경기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 11월 10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2달러(2.6%) 오른 배럴당 79.4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12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1.81달러(2.4%) 오른 배럴당 77.68달러에 거래됐다.

약달러는 금융시장에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등에서 빠져 나온 투자금이 개도국 주식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경우 개도국 시장은 큰 활황을 타게 된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게 됐을 때는 다시 투자금들이 밀물같이 쓸려 나가게 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신흥국 금융시장으로서는 큰 충격과 리스크에 노출되는 셈이다.

약달러가 기조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달러화 약세가 안전 통화 선호 현상 완화에 따른 일시적인 반락인지, 추세적 하락의 재개인지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면서 “미국 상업용 모기지 부실 확대 등 금융 부실 처리가 지연되고 있고 세계경제의 더블 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재상승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값 랠리가 곧 진정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금값을 온스당 2000달러까지 끌어올릴 만한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경제적 압박은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도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크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헤지 펀드와 기관투자가들이 금값을 과도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향후 4~6개월 안에 금값이 상당한 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 ‘기고’ 금 ‘날고’…금융시장 ‘초비상’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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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1-17 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