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이하 백야행)’는 애초부터 화제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일본의 인기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이미 일본에서는 2006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백야행’은 곽재용 감독의 ‘싸이보그 그녀(2008)’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톱스타 아야세 하루카가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꼽기도 했었다.다음은 국내 캐스팅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여주인공으로 손예진이 일찌감치 낙점됐고 작품 고르는 눈이 까다롭기도 소문난 한석규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완성도는 어느 정도 담보되는 분위기였다. 남은 것은 여타의 정보가 없는 신인 감독 박신우의 연출력과 원작의 효율적인 압축 여부였다. 영화화하기 힘든 분량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기 때문이리라.이제 막 출소한 한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수사팀은 이 사건이 14년 전 발생한 한 살인 사건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당시 담당 형사였던 한동수(한석규 분)를 찾아간다. 그는 당시 피해자의 아들이었던 김요한(고수 분)이 연루돼 있다고 믿는다. 그 역시 당시 사건을 무리하게 조사하던 중 아들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다. 한편 유미호(손예진 분)는 한 재벌 총수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석연치 않은 과거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그의 배후에 요한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원작자의 예의상 발언일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연애시대’ 등을 썼던 박연선 작가가 각색한 시나리오를 두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합격점을 줬다. 원작의 팬이라면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백야행’의 영화적 압축은 꽤 훌륭한 편이다. 미호와 요한의 성인 이후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 특별한 무리수를 두지 않았고 미호와 요한의 비밀, 그리고 동수의 트라우마까지 잘 엮어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의심이 쏠렸을 만한 손예진과 고수의 연기는 한석규와 차화연의 무게감과 잘 어우러져 기대 이상의 에너지를 뿜어낸다.그러고 보면 그것이 만화(‘올드보이’)이건 소설(‘백야행’)이건 드라마(‘하얀 거탑’)이건 일본 원작의 국내화 작업은 꽤 성공적인 사례가 많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삶에 지쳐가던 LA 타임스 기자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어느 날 우연히 길 한복판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니엘(제이미 폭스 분)과 마주친다. 로페즈는 그가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천재 음악가이지만 현재는 혼란스러운 정신분열증으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기사로 연재하며 로페즈는 그를 점점 알게 되고, 그를 도와 재능을 다시 찾아주려고 한다.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백만장자 에르네스토(호세 루이스 고메즈 분)의 정부로 살고 있지만 여배우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는 레나(페넬로페 크루즈 분)는 실력 있는 감독 마테오를 만나 오디션을 본다. 레나의 신선한 매력을 눈여겨본 마테오는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레나는 뛸 듯이 기뻐하지만 그녀의 연인인 에르네스토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신경 쓰인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레나와 마테오는 에르네스토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눈다.‘천국의 우편배달부’의 재준(영웅재중 분)은 죽은 연인에 대한 원망어린 편지를 보내려고 하는 하나(한효주 분)를 만난다. 남겨진 사람들이 쓴 편지를 천국에 먼저 간 이들에게 배달하고 그들의 답장을 지상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소개하는 재준의 말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하나는 그와 동업하게 된다. 부인을 잃은 남편, 자식을 잃은 아버지를 만나 땅으로 꺼져가는 한숨을 건강한 삶의 에너지로 바꿔놓는다.주성철 씨네21 기자 kinoey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