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34호 (2009년 12월 28일)

시장경제 ‘버팀돌’…윤리 경영 ‘핵심’

기사입력 2009.12.22 오후 05:26

시장경제 ‘버팀돌’…윤리 경영 ‘핵심’
회계 투명성은 사회 책임 경영 및 윤리 경영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고 자본시장의 윤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한 기업은 자본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받고 결국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지만

그 반대는 자본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버팀돌이 되는 ‘회계 투명성’의 의미를 알아봤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완전 시장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는 서로 완전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다수의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경쟁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에 의해 생산과 소비의 의사결정이 이뤄져 최적의 효율성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정보의 대칭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고차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좋은 예다. 중고차는 주인이 차를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따라 외형상 동일한 차라고 하더라도 차의 질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관리가 잘되지 않아 불량한 중고차를 레몬(Lemon)이라고 부른다.

레몬은 과일 중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먹기에는 맛이 쓴 과일이다. 반대로 관리가 잘돼 성능이 우수한 차를 맛있는 과일인 복숭아라고 부르도록 하자. 레몬의 가치는 1000만 원이고 복숭아의 가치는 2000만 원이다. 두 차량은 외견상 동일하고 구매자는 어떤 차가 레몬인지 복숭아인지 알지 못하는 정보 비대칭의 상황이며 구매자는 다만 중고차의 평균 가치가 1500만 원인 것만 알고 있다.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판매자는 2000만 원 미만에 자신의 차를 판매할 의사가 없는 반면 구매자는 평균가격인 1500만 원만 지불할 용의가 있으므로 복숭아를 가지고 있는 판매자는 이 중고차 시장을 떠나게 된다. 결국 시장에서는 불량한 차인 레몬만 남게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커로프(George Akerof) 버클리대 교수는 ‘마켓 포 레몬(Market for Lemon)’이라는 논문에서 이처럼 정보 비대칭이 시장의 실패를 가져 온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를 자본시장에 적용해 보자. 우수한 기업인 복숭아와 불량한 기업인 레몬이 존재하는데 투자자는 어떤 기업이 복숭아인지 레몬인지 알지 못하며 경영자는 자신의 기업 가치를 알지만 윤리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레몬의 경영자도 자신의 기업을 복숭아처럼 보여서 투자자로부터 높은 가격으로 투자 받기를 희망한다. 투자자는 평균가격으로만 투자할 의사가 있으므로 우량한 기업은 자본시장을 떠나게 되고 자본시장에서는 불량한 기업만 남게 되고 자본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레몬과 복숭아를 판별하는 ‘재무제표’

시장경제 ‘버팀돌’…윤리 경영 ‘핵심’
한편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스탠퍼드대 교수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신호(Signaling)이론’을 제시했다. 복숭아는 레몬이 흉내 낼 수 없는 신호를 시장에 보냄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높다는 정보를 시장에 전달하고 투자자는 이 신호에 의해 복숭아와 레몬을 구별해 냄으로써 시장은 가격에 의한 자원 배분의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에서 이러한 신호의 대표적인 예는 재무제표라고 할 수 있다. 우량한 기업의 경영자는 재무제표를 통해 자신의 기업이 가치가 높은 기업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 있고 높은 가격으로 투자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으므로 자본시장의 기능이 회복된다.

만일 비윤리적인 레몬 기업의 경영자가 자신의 기업 재무제표를 우량한 기업의 재무제표로 투자자에게 보일 수 있도록 이익을 과대 계상하고 부채를 은폐하거나 자산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한다면 투자자는 레몬 기업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고 투자하게 되고 결국 레몬 기업은 도산하거나 분식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주가가 폭락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높여 신호로서의 기능을 갖게 해 주는 중요한 제도적 수단이 공인회계사의 외부 감사다. 공인회계사는 재무제표가 분식되지 않고 기업의 가치를 적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공인회계사가 적정 의견을 표명한 재무제표는 신뢰할 수 있는 신호이며 투자자는 공인회계사의 감사 의견을 믿고 재무제표를 활용해 투자하게 된다.

물론 비윤리적인 공인회계사와 경영자가 결탁해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는 부실 감사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2000년도의 엔론(Enrone)의 분식회계와 아서앤더슨(Arthur Andersen)의 부실 감사라고 할 수 있다.

엔론의 경영진은 분식회계를 통해 주가를 조작하고 많은 투자 및 대출을 받아서 부당한 보너스, 과도한 스톡옵션뿐만 아니라 횡령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인 이익을 취했다. 이는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무제표의 분식을 적발하고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는 아서앤더슨은 엔론으로부터 거액의 컨설팅 수수료를 받는 등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분식된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 의견을 줌으로써 엔론에 투자한 많은 투자자와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줬다.

결국 당시 미국의 스타 기업이었던 엔론과 미국 최고의 회계법인이었던 아서앤더슨은 파산하고 양사의 경영진과 파트너들은 형사 및 민사상의 중벌을 받게 됐다. 이는 분식회계의 일반적인 결말이다. 분식회계를 한 기업은 주가 폭락, 상장 폐지, 구조조정, 법정관리 또는 파산 등의 길로 가게 되고 경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형사 민사상의 책임을 지게 된다.

회계 투명성 및 회계 감사의 독립성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미국은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사베인옥슬리(Sarbanes-Oxley)법을 2002년에 발효시키면서 강도 높은 회계 개혁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이 법안은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그와 유사한 내용의 회계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경영자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는 서명을 해야 한다. 경영자의 재무제표의 적정성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또 기업은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잘 운용해야 하며 경영자는 내부 통제 시스템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서명해야 한다. 아울러 외부 감사인이 내부 통제 시스템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검증하고 의견을 표명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 기업 투명성 ‘선진국 수준’

우리나라에서는 회계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내부 통제 시스템 대신에 내부 회계관리 제도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또 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대상 회사들에 대해 내부 회계관리 제도를 구축하고 운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경영자가 이의 적정성에 대해 서명하도록 하고 공인회계사가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재무제표 자체의 검증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재무제표 작성의 인프라가 되는 내부 통제 시스템의 건전한 운용에 대해서도 검증을 의무화해 투자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이제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 개발시대에 회계분식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했던 관행이 있었다. 1999년에는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로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외부 감사인이었던 산동회계법인이 사라졌다. 2003년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위기에 처한 SK그룹의 경영권이 외국계 사모 펀드인 소버린의 도전을 받기도 했다.

우리 기업들은 개발시대의 잘못된 회계 관행으로부터 탈피, 회계 투명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그룹은 대그룹 중 최초로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해 정도 경영을 추구하고 있으며 SK그룹이 두 번째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이끌고 있다.

지배구조의 선진화는 회계 투명성을 위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사베인옥슬리법과 유사한 수준의 회계 개혁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돼 상장 기업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부터 상장 기업들에 국제회계기준인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의 도입이 의무화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이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회계 투명성은 사회 책임 경영 및 윤리 경영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고 자본시장의 윤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한 기업은 자본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받고 결국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과 그 기업의 경영자는 신뢰를 잃고 자본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시장경제 ‘버팀돌’…윤리 경영 ‘핵심’
한인구 교수는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KAIST에서 경영과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올 초까지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공인회계사이며 현재 금융전문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원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한치우 SK에너지 경영지원부문장·전무

지주회사제 도입·이사회 중심 경영…글로벌 경쟁력 ‘업’

시장경제 ‘버팀돌’…윤리 경영 ‘핵심’
SK그룹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의 분식회계로 그룹의 경영권이 외국계 사모 펀드에 위협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체제 전환과 이사회 중심 경영 도입 이후 2~3년 새에 기업 투명성 부문에서 국내 재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그룹의 주력사 중 하나인 SK에너지 한치우 전무를 만났다.

SK글로벌 사태의 원인은.

SK글로벌 사태는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지만 우선 1980~90년대 고도 압축 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부실 요인이 가장 클 것이다. 또 이 같은 성장에 걸맞은 성숙한 관리 역량 부재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SK그룹은 글로벌 사태 이후 모든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물론 변화가 SK글로벌 사태에서 시작된 것만은 아니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SK가 보여준 조직 역량과 경험은 앞으로 직면할 새로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SK글로벌 사태 이후 그룹 회계제도의 변화는.

SK그룹 산하 각 기업은 독립적인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SK에너지에 한정해 이야기한다면 크게 세 가지 변화가 있다. 먼저 명실상부한 이사회 중심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이 70%에 달하며 실질적인 회계의 적정성을 통제할 수 있는 감사위원회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였다. 둘째, 주요한 회계 정책의 변경 사항과 결산 내역을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보고하도록 제도화했다. 또 감사위원회를 통한 외부 감사인의 선임·변경 절차를 제도화하는 등 외감 법인 선정에 있어서도 투명성과 객관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본사 및 국내외 자회사 관리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내부 통제 제도에 바탕을 둔 ‘내부 회계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울러 본사에서 자회사 관리를 일원화하고 ‘글로벌 캐시 매니지먼트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자회사를 포함해 보다 체계적인 전사 리스크 관리제도를 운영 중이다.

SK에너지의 회계 투명성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투명성은 시스템적으로 글로벌 수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도 한국 기업이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특히 2011년 도입 예정인 IFRS는 잘 정착시킨다면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의 회계 수준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SK에너지는 회계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해외 현지법인에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전사 회계 과목 표준화(SK CoA)를 도입해 회계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해 전사적으로 분기별 내부 통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분기 실적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IR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2005년 한국CFO대상과 한국재무혁신기업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9년에도 LACP&ARC가 주최하는 연간 보고서 국제심사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새 회계기준 IFRS에 대한 회사의 준비 수준은.

95%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새 회계기준을 도입하면 그 전년도 데이터, 즉 2010년의 데이터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먼저 회사의 기본적인 회계 정책을 반영한 IFRS 기반의 SK GAAP를 수립해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웹 기반 시스템의 구축을 완료했다. 또 IFRS의 중요한 업무인 연결재무제표 산출을 위해 보다 효율적인 연결 데이터를 추출하려고 내부 거래 관리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SAP 기반의 연결 결산 시스템 구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IFRS 영향 분석을 통해 도출된 개선 과제에 대해 보완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이를 위해 2010년 1월 자산 재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인구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금융전문대학원장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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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2-22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