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전쟁의 총아’ e북

올해는 요한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1450년으로부터 560년째 되는 해다. 하지만 국내 출판 인쇄 시장에서 올해는 ‘인쇄 기술의 혁명’인 전자책(e-book) 시장이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다는 점에서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있다. 정보기술(IT)과 인쇄 매체의 만남인 전자책은 앞으로 글로벌 IT 업계가 나아가야 방향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큰 폭의 성장세가 예상되는 분야다.전자책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1964년부터다. 미 국립의학도서관이 색인지 편집을 전산화해 정보 검색이 가능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 시초로 꼽힌다. 이후 미국 정부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통해 20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콘텐츠를 전산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전자책 시장이 IT 업계의 화두로 부상하게 된 것은 아마존이 킨들을 내놓은 지난 2007년부터다. IT 업계에선 킨들의 등장을 애플의 아이팟과 동급 수준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킨들은 출시 1년 만에 미국에서 50만 대가 팔렸다. 이는 애플의 아이팟 출시 첫해 판매량보다 32%가량 많은 숫자다.전자책 시대가 활짝 꽃피운 것은 무엇보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자책에 적용되는 디스플레이 기술인 e-잉크는 플러스 전극인 백색 분말과 마이너스 전극인 흑색 분말이 액체와 함께 채워져 마이너스 전기를 가하면 백색 분말, 플러스 전기를 가하면 흑색 분말이 화면 위로 올라와 글자를 나타내는 원리다. 흑백 대비가 뚜렷해 전자 활자로 활용하기 그만이다. 또한 e-잉크는 전력 소비량이 적고 액정표시장치(LCD)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처럼 평면 화면 뒤 백라이트가 없어 햇빛 아래서도 화질이 선명하다. 반사율이 적기 때문에 눈에 주는 피로도도 적다. 최근 컬러 방식 기술에 일반 종이처럼 디스플레이를 구부릴 수 있게끔 발전돼 전자책 시장의 전망을 한층 더 밝게 만들고 있다.킨들의 등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킨들 이전 전자책이 e-잉크 디스플레이에 콘텐츠를 USB(정보막대)에 담아 읽어보는 형태였다면 킨들은 무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온라인상에서 각종 콘텐츠를 마음대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확연하게 구분된다. 현재 킨들 사용자는 아마존이 보유한 27만5000권 정도의 전자책과 37종의 신문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다. 아마존이 e-비즈니스 유통 업체의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모바일 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킨들의 대성공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8년 구글과 미 출판 업계 간 저작권 소송이 원만하게 타결되면서 온라인상 도서 검색이 간편해진 것도 전자책 시장 변화에 불을 댕겼다.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전자책 시장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규모면에선 턱없는 수준이지만 성장 속도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의 전자책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일단 e-잉크 기술력이 상당하다. LG디스플레이가 e-잉크사와 공동으로 10.1인치 전자종이(e-paper)를 개발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14.3인치 전자종이 개발에 성공했다. SK텔레콤·SKS·SK케미칼은 원천 기술을 보유한 e-잉크사의 도움 없이 독자로 전자종이를 개발해 연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단말기도 속속 출시되고 있어 삼성전자가 지난해 7월 파피루스(제품명 NSE-50K)를 출시한데 이어 3월부터는 후속 제품인 SNE-60K를 판매한다. 특히 파피루스 SNE-60K는 기존에 없던 무선 랜 기능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킨들이 한국어판을 국내에 출시할 경우 경쟁이 불가피하다. 내장 메모리가 2기가바이트(GB), 화면은 6인치다.교보문고와 공동으로 개발된 SNE-60K는 교보문고 북스토어를 통해 관련 콘텐츠를 일반 책의 50~60% 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다. 메모리 저장 용량도 상당하다. 2GB는 약 1400~2만4000권 정도의 콘텐츠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주요 신문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한영·영한·영영 전자사전 기능과 MP3 기능도 갖췄다.아이리버의 스토리도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전자책 전용 포맷인 PDF 외에 ‘txt, ppt, doc, xls’ 등 각종 오피스 문서 파일도 볼 수 있고 MP3, 영한사전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 역시 다른 제품과 비슷하다. 아이리버 역시 오는 3월 무선 랜 기능을 갖춘 후속 모델을 공개할 예정이다. 네오럭스는 지난해 4월 누트2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무선 랜 방식을 적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LG이노텍은 인터파크와 공동으로 3G 통신망을 활용한 단말기를 선보일 계획이다.지금까지 국내 전자책 시장이 단말기 제조사 위주로 돌아갔다면 앞으로는 콘텐츠 제공 업체나 이동통신사가 주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KT는 교보문고와 제휴해 전자책 시장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며 SK텔레콤은 네오럭스와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알라딘도 지난해 9월 전자책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았다. 두 회사가 주도적으로 만든 (주)한국이퍼브(Korea Electronic Publishing Hub)에는 영풍문고·반디앤루니스·리브로 등의 대형 서점과 한길사·비룡소·북센·북21 등의 출판사, 일부 중앙 언론사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여기에 중앙 일간지와 잡지, 출판 업체들까지 추가적으로 가세할 경우 시장 규모는 예상외로 빠르게 커질 가능성이 높다. 종이 가격 인상으로 인쇄 비용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콘텐츠만을 제공하는 전자책 시장의 등장은 관련 업체들엔 수익률 개선의 청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화증권은 전자책 관련 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의 규모를 845억 원으로 내다봤다. 단말기 시장 규모는 546억 원, 콘텐츠 시장은 299억 원이다. 시장이 태동한 지 2년 만에 기록한 실적 치고는 상당하다. 한화증권 리서치센터 안하영 연구원은 “2011년 1370억 원, 2015년에는 3599억 원으로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시장 확대에 따라 판매가가 내려간다면 성장 속도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전자책의 소비자 가격 저항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책 구입자의 74.7%가 30~40대 성인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면 어느 정도 부담을 안고서라도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세대다.여기에 정부가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긍정적이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2월 중 발표할 전자책 산업 육성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안에 콘텐츠 육성과 전자책 플랫폼 지원, 콘텐츠 불법 복제를 방지하기 위한 추적 시스템 개발 지원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월 교과서 선진화 방안을 통해 내년부터 국어·영어·수학 콘텐츠를 CD 형태의 이북(E-Book)으로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하지만 최근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하는 등 넷북과 전자책을 결합한 태블릿 PC 시장이 커질 경우 전자책 시장이 PC 시장에 흡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월 아이패드 신제품 발표장에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아마존 킨들”이라고 말해 두 제품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