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과 쟁점

창원·마산·진해를 묶어 인구 108만 명의 메가시티를 탄생시킨 시·군 통합은 지방행정 체제 개편의 첫 출발점에 해당한다.

최종 목표는 100여 년 전 만들어진 틀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기본 골격을 21세기형으로 완전히 새로 짜는 것이다.

지방행정 체제 개편 논의는 생각보다 오래전에 시작됐다. 대체적인 개편의 큰 그림들도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다.

노태우 정부 시절 민주화가 진전되고 지방자치제 부활이 거론되면서 본격적으로 개편 논의가 부상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지방 공무원, 지방 정부의 반발로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의 3단계 행정 계층을 한 단계로 축소하는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유야무야됐다.

이어 추진한 ‘도(道) 폐지’도 도시와 농촌 지역을 묶어 38개 도농 통합시를 만드는 성과에 그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광역시를 폐지해 도 산하 자치단체로 편입하고 자치구 수를 대폭 줄이는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분권 강화’ 한목소리…‘道 폐지’ 엇갈려
18대 국회 핵심 과제로 부상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여야 합의로 국회에 지방행정체제개편특위가 구성돼 가동되기도 했다. 2006년 특위는 ‘광역시·도 폐지, 시·군·구 통폐합 및 광역화’를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그해 6월 지방선거와 맞물려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18대 국회 들어 여야 모두 이 문제를 핵심 현안으로 선정하면서 논의에 한층 탄력이 붙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는 의원입법으로 모두 8개의 개편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지난해 8월부터 행정안전부가 대대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추진한 밑으로부터의 ‘지자체 자율 통합’도 멀게만 느껴지던 지방행정 체제 개편 문제를 가시권으로 끌어냈다.

현재까지 쏟아진 개편안은 크게 3개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는 현행 도를 폐지하고 시·군은 통합해 70여 개의 통합시로 전환하는 것이다. 17대 국회 특위 논의 내용을 계승한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의 안이 대표적이다. 조선 초부터 유지된 도 체제를 없애고 전국을 70여 개 통합시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둘째는 자유선진당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장하는 ‘강소국 연방제’안이다. 허태열 의원안과는 정반대로 기존 광역시·도를 한층 강화해 인구 1000만~1500만 명 규모의 4개 초광역 지방정부를 창설하자는 구상이다. 이는 전국을 4개로 나누는 준연방제 성격이 강하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안에 채택될 경우는 전국은 △서울주(서울·인천·경기 일부) △경강주(경기 일부·강원) △충전주(대전·광주·충청·호남·제주) △경상주(영남) 등으로 나뉘게 된다.

셋째는 광역시와 도를 통합한 도 중심의 광역화 방안이다. 현행 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광역시를 도에 통합해 광역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전광역시는 충청남도에, 대구광역시는 경상북도에 흡수 통합하는 방식이다. 박기춘 민주당 의원 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시각이 결정적으로 나뉘는 포인트는 도 폐지 문제다. 허태열 의원 안은 고비용·저효율의 중층·소규모 행정체제를 저비용·고효율의 간편·광역 체제로 개편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의 3계층 행정 구조를 1단계 줄여 인력·예산·시간을 절약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민 편의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도가 폐지 대상으로 꼽힌다. 이는 시·군·구 광역화 구상과 맞물려 있다.

교통·통신의 발전과 정보화에 따른 생활권과 경제권의 확대로 100여 년 전 자연 지형을 기준으로 그려진 행정구역은 이미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이 안에는 여러 개의 시·군·구를 묶어 적정 규모로 키우고 권한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하지만 광역시·도를 폐지하면 70여 개 통합시들이 중앙정부와 곧바로 부딪쳐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 후퇴와 중앙집권 체제 강화라는 역작용만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허 의원 측은 통합시가 기존 광역시·도와 시·군·구가 나눠 갖고 있던 권한을 일원적으로 행사하게 돼 자치권의 내용과 행사가 한층 충실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통합시가 주민의 참여와 통제라는 주민자치의 원리를 실현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행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도 해외 선진국에 견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읍·면·동 자치의 부활이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시행될 때 시·군·구를 기초자치단체로 정하면서 읍·면·동은 사실상 주민 생활에 밀려나 있던 게 사실이다. 이를 준자치단체로 다시 살려 주민 자치의 기초 단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강소국 연방제 방안을 강력하게 밀고 있는 것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이 총재는 ‘도 폐지’ 주장은 지방분권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공격한다. 기존의 중앙집권 체제로는 21세기에 더 이상 국가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수도권 중심의 단극 발전 모델은 한계에 달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해 강력한 초광역 지방정부를 창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외교와 국방을 중심으로 국가 통합과 조정 업무를 맡고, 지방정부는 입법·사법·행정·재정·교육·경찰 등의 자치권을 갖게 된다.

박기춘 의원과 학계 일부에서 지지하는 ‘도 중심의 광역화’안은 앞의 두 대안만큼 파격적이지는 않다. 기존 광역시는 도에 통합하고 시·군 역시 70여개 통합시로 광역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역화를 통해 행정 효율성을 제고하면서 강력한 지방정부를 만들어 지방분권을 강화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행안부, 밑으로부터의 통합 추진

지방행정 체제 개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에 비유될 만큼 어려운 과제다. 100여 년간 몸에 익은 체제를 뒤흔드는 일인데다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특히 도 폐지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온 개편안들은 하나의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시·군·구의 광역화에는 큰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행안부가 추진한 자율 통합은 바로 이 부분에 착안한 것이다. 골치 아픈 도 폐지 문제 등은 뒤로 미루고 밑으로부터의 통합을 통해 지방행정 체제 개편의 밑그림을 그려간다는 전략인 셈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