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규한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

‘연구 지원 관리의 전문성 높일 겁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실패에 대한 아량이 부족한 편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6월 출범한 한국연구재단은 성실 실패 용인(honorable failure)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창의·도전·모험적인 고위험 과제(high-risk, high-return) 연구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래는 도전적 ‘청년 정신’을 지닌 인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가능성 사고(Possibility Thinking)’를 지닌 끊임없는 창조적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의 주요 업무 추진 방향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학술 진흥 및 연구·개발을 선진화하기 위해 기존의 3개 연구 지원, 관리 재단들(한국과학재단·한국학술진흥재단·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연구 지원 관리의 글로벌 리더를 향한 도전과 혁신을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첫째, 선진형 PM(Program Manager: 연구사업관리전문가)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겁니다. 이를 위해 PM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연구 지원 관리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고 연구자 중심의 연구 지원 사업을 위한 PM의 기획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겁니다.

둘째, 연구 사업의 전 주기적 지원 관리 체계를 과학적·합리적으로 확립, 연구자 중심의 창의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셋째, 상이한 학문 분야 간의 소통과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21세기 새로운 창조의 근원은 융합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계해 융·복합 신(新)지식 창조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나노기술(NT) 간의 융합 연구를 중요시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폭넓은 학문 영역 간의 융합 연구를 강조할 겁니다.

넷째, 연구·개발 성과물의 보호와 확산 체계를 강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연구재단은 우수 성과를 창출·보호·활용·확산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월 ‘R&D 혁신센터’를 신설했습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유관 정부 부처와의 협력을 확대·강화해 국가적인 학술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입니다.

다섯째, 경영 효율화와 선진화를 촉진, 재단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도록 노력할 겁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제자문위원회 구성을 완료해 재단의 선진화와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글로벌 차원의 자문과 협력을 구할 예정입니다.

연구재단은 전 학문 분야에 대한 총괄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R&D 및 관련 지원 사업에 산업계와의 연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해법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정부의 R&D와 산업계의 연계성 부족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부는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성과물을 산업계로 확산시키기 위한 지원이 부족합니다.

2008년 정부의 기술이전·사업화 예산은 778억 원으로 정부 전체 R&D 예산(11조784억 원)의 0.7%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의 2.8%와 중국의 4.4%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입니다. 특히 기초 연구 성과물의 사업화와 산(産)·학(學)·연(硏) 연계 촉진을 위한 정부 지원 사업이 취약합니다.

둘째, 이른바 ‘특허괴물(외국특허관리회사)’의 국내 활동 강화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특히 이들이 국내 대학의 아이디어를 공격적으로 매입하고 있어 향후 국내 기업에 대한 특허 소송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셋째, 정부 R&D 사업의 산업계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R&D 전 주기에 걸친 사업화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대다수 R&D 성과 활용 프로그램은 사후적(事後的) 사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실제 사업화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국가 R&D를 통한 대형 성과물 창출과 산업계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전적(事前的) 개념의 사업화 전략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 재단은 연구 지원 관리 전문 기관으로서, R&D의 전 주기를 통하여 단계별로 필요한 동향 정보 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은 어떻게 추진할 예정입니까.

첫째, 올해 신규 사업(예산 30억 원)으로 기초 연구 성과 활용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장될 우려가 있는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 기관들의 기초 연구 성과를 효과적으로 발굴하고 산·학·연 간의 협력을 통해 정부의 R&D 성과를 확산해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특허청과 공동으로 ‘R&D IP 협의회’를 운영함으로써 국가 연구·개발 사업과 연계된 지식재산권의 창출·보호·활용 능력을 배양·제고하는 등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셋째, 지난 1월 설치된 ‘R&D 혁신센터’를 효과적으로 운영, 우수 성과를 창출·보호·활용·확산할 수 있도록 R&D 관리의 전 주기 단계[연구 기획(Plan)→ 사업 관리(Do)→ 성과 관리(See)]에 필요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올해 국가적인 화두는 일자리 창출입니다. 연구재단도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청년 실업률이 일반 실업률의 두 배 이상인 8.1%(지난해 기준)에 달해 사실상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우수한 청년 인재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하거나 또는 경력을 쌓을 기회마저 갖지 못한 채 사회에서 낙오하거나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교육과학기술부 지원 및 대학교와 협력해 대졸 미취업자들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해 관련 경력을 쌓고, 이를 통해 취업 능력을 제고하는 ‘미취업 대졸생 지원 사업’을 기획, 지난해 8월부터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대학교에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미취업 대졸생 인턴 조교 등 채용 지원 사업’과 각 대학 취업 지원 업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미취업 대졸생 교육훈련 프로그램 지원 사업’으로 구분됩니다.

지난해에는 373억 원의 예산으로, 미취업 대졸생 3356명(10개월 지원 기준)을 124개 대학의 인턴 조교로 채용, 매월 100만 원씩 지원하고 99개 대학의 각종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했습니다.

올해에는 79억 원의 예산으로, 미취업 대졸생 1500명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간 지원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이 일자리 창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국내 경제가 정상 궤도에 진입해 양질의 정규 일자리를 창출해야만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재단을 포함한 정부·대학·기업 간의 긴밀한 협조와 청년 실업자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들은 흔히 연구 지원 기관을 평가할 때 대부분 ‘관료적·권위적’이라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는 곧 ‘실질 존중’과 ‘절차 준수’에서 나오는 차이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연구자들이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학문 발전은 물론 보다 직접적인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정부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연구라고 하더라도 그 연구가 인류 복지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수 있다면 절대로 지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구자도 학술 연구 및 연구·개발을 통해 ‘국가 발전’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자 스스로 연구 과정에서 윤리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진지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이 창의적·도전적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미래 신성장 동력 창출과 일류 선진 국가 도약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배규한 사무총장은…

1951년생. 1974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79년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 석사. 85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사회학 박사. 85년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89년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95년 국민대 학생처장. 2000년 국민대 사회과학대학장. 2003년 국무총리 교육정보화위원회 위원. 200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2008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2008년 한국연구재단 초대 사무총장.

박병표 기자 tiki2000@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