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의 금리 인상 고민

미국에 살면서 깜짝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이하 연준, 미국의 중앙은행) 의장에 대한 높은 인지도다.

한국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누구냐고 물으면 선뜻 ‘이성태’라는 이름이 나오기 힘들겠지만, 이곳에선 ‘버냉키’라는 이름이 쉽게 나온다. 대개 열 중 예닐곱은 그렇다.

어째서 그럴까.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패트릭 컬리(62) 씨는 “경제 위기 후에 미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지면서 버냉키라는 이름이 TV나 신문 지상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YONHAP PHOTO-0005> Federal Reserve Chairman Ben Bernanke answers a question as Brookings President Strobe Talbott (R) looks on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forum on the September 2008 financial crisis on September 15, 2009 in Washington.        AFP PHOTO/Mandel NGAN

/2009-09-16 00:13:13/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Federal Reserve Chairman Ben Bernanke answers a question as Brookings President Strobe Talbott (R) looks on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forum on the September 2008 financial crisis on September 15, 2009 in Washington. AFP PHOTO/Mandel NGAN /2009-09-16 00:13:13/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그런 버냉키가 다시 한 번 그의 인지도를 한껏 높였다. 그동안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시장에 사정없이 돈을 뿌려 관심을 끌었지만, 이번엔 그 반대 경우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시기에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시장을 바짝 긴장시켰다.

전 세계는 금리 인상 후 ‘버냉키’라는 이름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이번엔 ‘재할인율’이라는 단도(短刀)를 썼지만, ‘연방기금 금리’라는 큰 칼을 쓸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기금 금리 인상은 각국의 금리 인상 도미노를 유발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 자신감의 표현? 출구전략의 시작? = 미 연준이 조정하는 금리는 크게 재할인율(discount rate)과 연방기금 금리(federal fund rate), 지급준비금 이자율(이하 지준 부리율:interest on excess reserves) 등이 있다. 재할인율은 미 중앙은행이 급전이 필요한 시중은행에 긴급 자금을 대출하면서 적용하는 금리로, 일종의 벌칙성 수수료(penalty fee)로 여겨지고 있다.

이 금리는 경제 위기 전까지 미 기준금리(key short-term interest rates)인 연방기금 금리보다 1%포인트 높게 유지돼 왔지만 경제 위기 과정에서 재할인율을 큰 폭으로 낮추면서 두 금리 간 격차(스프레드)가 0.25%포인트까지 줄어들었다.

연방기금 금리는 연준이 시중은행과 평상시에 하루짜리 단기로 자금을 거래하면서 적용하는 금리다. 이를 인상할 경우 시중 예금 및 대출금리가 바로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연방기금 금리는 0~0.25%로 책정돼 있다.

지준부리율(支準附利率)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지급 준비금에 붙는 이자율로, 이 금리를 올리면 지급준비금이 늘어나게 돼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연준이 지준부리율을 높이면 시중은행들이 돈을 많이 맡기고, 대신 대출 이자율을 높이게 되므로 민간 대출 수요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준부리율은 연방기금 금리의 상단인 0.25%로 설정돼 있다.

미 연준이 지난 2월 18일 조정한 것은 재할인율이다. 연준은 재한인율을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미 언론들은 이번 조치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첫째,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5.7%였다. 전 분기(2.2%)보다 크게 높아졌다. 연준은 올해는 2.8~3.5%, 내년과 내후년은 4%대의 성장을 점치고 있다.

반면 인플레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미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월 대비 0.2% 상승하는데 그쳤다. 12월에도 소비자물가는 0.1% 상승에 그쳤다.

특히 1월의 경우엔 에너지 및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가 2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0.1%)를 기록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인플레 걱정 없이 견실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 정치적인 행위 해석도 = 둘째, 이번 조치가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유동성을 환수하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의 시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준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값싸게 돈을 조달하는 시기의 종말로 해석해야지, 통화정책(monetary policy)의 변화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버냉키도 여러 차례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는 상당 기간(for extended period) 저금리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위기 이후 기업들의 시설 투자 감소로 공급 사이드에서 인플레 리스크가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이나 임금 삭감 등을 고려할 때 급속한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공급 능력 부족으로 일정 부분에서는 공장 가동률이 벌써 80~90%에 달하는 등 등 공급 사이드에서의 인플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통계의 리스크를 지적했다. 인플레 수치가 낮게 나오고 있지만 이는 아직 팔리지 않은 주택 재고 물량이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므로 다른 부문에서 받고 있는 인플레 압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미 경제에는 이런저런 인플레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번 조치를 별도의 행위로 보기보다는 연방기금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버냉키는 이와 관련, 재할인율 인상→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 기간물 예금 판매→ 지준부리율 인상→ 연방기금 금리 조정 등의 순차적 출구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세 번째는 이번 조치가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 회사인 핌코의 빌 그로스 회장은 금리 인상 조치 다음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할인율 인상은 인플레를 우려하는 연준 내부의 이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유화책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 연방금리 인상은 언제? = 재할인율 창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회사는 사실상 거의 없다. 재할인율 창구를 통한 대출은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말에만 해도 1119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2월에는 그 규모가 143억 달러 내외로 줄었다. 중앙은행에서 급전을 쓸 정도로 형편이 나쁘다는 평판을 무릅쓰고 연준에 손을 벌리는 금융회사가 이제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재할인율 인상은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실질적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버냉키는 이렇게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 시장에 대한 파장이 적은 카드를 씀으로써, 앞으로 인플레 리스크에 더욱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내부 반발을 무마시키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이제 전 세계의 관심은 연준이 연방기금 금리를 언제 올릴 것인가에 맞춰지고 있다. 올해 말께라는 추정에서부터 내년에도 어렵다는 얘기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미 연준은 일단 저금리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만 상업용 부동산 부문에서 디폴트 사태가 우려되고 있고, 내년에도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전망들이 이 같은 입장을 뒷받침한다.

2월 17일 공개된 지난 1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임에 따라 연준 위원들 간에 연방기금 금리 인상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연준 내부에서는 인플레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로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릴 경우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기준금리를 조기에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