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새틀짜기’ 행정구역 개편

충북 옥천 주민들은 자녀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면 남편과 아내 중 한 명이 자녀를 데리고 주민등록지를 대전으로 옮기는 ‘이중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대전에 살면서 직장이 있는 옥천으로 출퇴근하거나 일정 기간 동안 별거 생활을 해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충북에서 대전의 학교로 갈 수 없는 학군제 탓이다. 옥천에서 대전까지는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다.

충남 천안 불당·백석동과 아산시 배방·탄정면은 KTX 천안아산역이 들어서면서 동일 생활권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도 행정구역은 예전 그대로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형적인 도시 발전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이 지역은 정부의 지자체 자율 통합 정책에 호응해 통합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이처럼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을 겪는 것은 비단 이들 지역만은 아니다. 더구나 문제는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급격한 고령화로 농촌 지역 지자체의 활력은 크게 떨어진 지 오래다. 세수 부족으로 재정자립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도시 역시 중병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도시 발전에 필요한 가용 면적이 부족해 공공시설과 산업시설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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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면 평균 면적인 62.5㎢보다 면적이 작은 시가 10곳에 달한다. 똑같은 기초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기초지자체는 경기 성남(71.7%)이며 가장 낮은 곳은 경북 봉화(7.4%)로 조사됐다.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경기 수원은 107만 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 울릉은 1만2000명으로 최하위로 무려 89배 차이가 난다.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도 거의 20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생활권과 경제권의 변화를 반영해 기초단체를 적정 규모로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통해 현재 230개인 기초자치단체를 통합·광역화해 50~100개 정도로 줄여야 효율성 제고와 자립 경제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분권화 추세

지방행정 체제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골간에 해당한다. 현행 체제는 1896년 갑오경장 때 확립된 ‘13도제’에 기초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농업경제를 넘어 산업경제로, 정보화경제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기본 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의 탄생, 그리고 1995년 도농 복합시 출범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다.

지방행정 체제 개편은 100여 년 전 짜인 대한민국의 틀을 21세기형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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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때문에 10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내다보는 비전 제시는 필수적이다.

현재 세계는 지방분권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국제 경쟁의 최전선에 선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지역의 경쟁력,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이는 비대해진 중앙정부의 비효율과 지자체 간 경쟁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이러한 흐름은 ‘수도권 중심의 단극체제 발전 모델’을 유지해 온 한국에는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지방행정 체제 개편에 대한 대안들은 다양하게 나와 있다. 기존 도(道)를 없애고 시·군·구를 통합해 광역화하는 파격적인 안도 있고, 이와 정반대로 도간 통합을 통해 강력한 초광역 지방정부를 창설하자는 연방제 구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지방행정 체제 개편은 20년 된 해묵은 과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지방정부, 지방 공무원의 반발에 밀려 번번이 좌초했다.

그러다보니 지방행정 체제 개편은 개헌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지방행정 체제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뒷받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자체 간 자율 통합에 성공한 창원·마산·진해에는 새로운 기대감이 넘치고 있다.

오는 7월 1일 출범하는 통합 창원시는 인구 108만 명으로 단숨에 전국에서 여덟 번째로 큰 메가시티로 올라서게 된다.

주민들은 창원의 기계·제조업, 마산의 문화·서비스업, 진해의 조선·항만업이 결합돼 국토 동남권의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