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게 배우는 ‘직관의 기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남의 인생을 살지 마라. 네 목마름을 추구하라. 바보 같아도 좋다.”

이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다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잡스는 2006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청바지를 입고 나와 이렇게 연설했다. 잡스가 말한 그 목마름은 무엇으로 적셔질 수 있을까.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고졸 출신의 양부모에게 입양된 잡스는 다니던 대학마저 중퇴하지만 풍부한 독서를 통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잡스는 전공인 물리학보다 철학이나 문학에 심취했다.

그는 “내가 다녔던 리드칼리지에는 플라톤과 호머로부터 시작해 카프카에 이르는 고전 독서 프로그램이 있었다. 고전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고전의 바다에 빠질 수 있었던 게 애플컴퓨터의 오늘을 만든 힘”이라고 말한 바 있다.

리드칼리지는 아이비리그에 드는 명문대도 아니지만 ‘방과 후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대학’ 1위에 선정된 학교다. 잡스는 리드칼리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독서를 하면서 동양의 신비주의 정신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양부모가 모은 평생 재산이 비싼 등록금으로 다 쓰인다고 생각한 잡스는 리드칼리지를 6개월 만에 자퇴하고 18개월 동안 청강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참 두려운 결정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그것은 내가 내렸던 최고의 결정들 중 하나였다. 자퇴를 결정한 순간부터 흥미 없던 필수과목들을 중단할 수 있었고 훨씬 더 흥미로운 강의들을 청강하기 시작했다.”

잡스, 자퇴 후 18개월 청강으로 학업 마쳐
<YONHAP PHOTO-0480> SAN FRANCISCO - JANUARY 27: Apple Inc. CEO Steve Jobs demonstrates the new iPad as he speaks during an Apple Special Event at 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January 27, 2010 in San Francisco, California. Apple introduced its latest creation, the iPad, a mobile tablet browsing device that is a cross between the iPhone and a MacBook laptop.   Justin Sullivan/Getty Images/AFP

== FOR NEWSPAPERS, INTERNET, TELCOS & TELEVISION USE ONLY ==

/2010-01-28 06:15:34/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SAN FRANCISCO - JANUARY 27: Apple Inc. CEO Steve Jobs demonstrates the new iPad as he speaks during an Apple Special Event at 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January 27, 2010 in San Francisco, California. Apple introduced its latest creation, the iPad, a mobile tablet browsing device that is a cross between the iPhone and a MacBook laptop. Justin Sullivan/Getty Images/AFP == FOR NEWSPAPERS, INTERNET, TELCOS & TELEVISION USE ONLY == /2010-01-28 06:15:34/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자퇴한 잡스는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어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기숙(寄宿)하면서 콜라병을 반납하고 받는 5센트씩을 모아 끼니를 해결했다.

헤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는 맛있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매주 일요일 밤마다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을 걸었다. 인도의 사원에서 잡스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접한다.

스티브 잡스는 누구보다 직관적이고 창조적인 리더로 표현된다. 직관과 창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해답 중의 하나는 시에 있다. 시는 흔히 직관의 산물이라고 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잡스는 한때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시에 깊이 빠졌다고 했다. 영국 시인 겸 화가였던 블레이크는 주로 신비로운 체험과 상상력을 시로 표현했다.

“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시간 속에 영원을 붙잡아라.”

블레이크가 쓴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라는 시의 도입부다. ‘손바닥 안의 무한을 붙들고’라는 표현에서 언뜻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연상된다.

이 시를 읽으면 어떤 영감과 직관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준다. 스티브 잡스가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을 테크놀로지로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시를 통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블레이크의 생애와 시의 세계를 엿보면 잡스가 어떤 유대감 같은 것을 느꼈을 법하다. 런던에서 태어난 블레이크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15세 때부터 판각 화가 밑에서 일을 배웠다.

왕립미술원에서 공부하면서 미술에도 소질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환상력을 지녀 천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언덕 위에 올라 하늘을 만진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과 상상력이 신비로운 시풍을 만들어 냈는데, 그래서인지 ‘경험의 노래’라는 시집도 있다. 특히 ‘순수의 전조’에서처럼 그의 시에서는 동양적인 선(禪)의 이미지가 강하게 표현돼 있다.

잡스 역시 동양적인 신비주의와 선의 세계를 추구한다고 고백한다. 더욱이 블레이크의 시는 열린 세계와 역동적 사고를 꿈꾸고 있는데, 이 역시 ‘잡스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블레이크는 또한 이성이나 법률, 관습이나 종교가 만들어낸 사슬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잡스는 블레이크의 삶과 시에서 틀을 깨뜨리는 창조적인 ‘상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블레이크의 시는 그가 발표할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가 죽은 뒤에도 한동안은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했다.

반면 잡스는 그의 상상력과 환상력의 세례를 받아서인지 당대의 테크놀로지와 트렌드를 앞당겨 구현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잡스는 “생각이 막힐 때 시를 읽으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말한다.

철학서·시집은 직관력의 원천

시인들은 직관을 중시하는데 세상을 뒤흔든 리더들도 대부분 직관을 중시한다. 흔히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논리를 중시한다면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은 대표적으로 직관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리더는 전문가적인 지식이 직관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전문가적 지식을 뛰어넘는 힘이 직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의 철학적 정의는 감각·경험·연상·판단·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뜻한다. 여기에는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는데, 일종의 경험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그 판에 빠삭해야” 직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라는 책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시조시인 황인원 박사는 이 책에서 세계적인 창조적 리더들 중에서는 시를 통해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 이들이 많다고 다양한 사례를 들며 분석한다.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습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를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황 박사는 “시 한 편을 읽으며 생각을 풀어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집착했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아파트란 시멘트를 쌓아 짓는 게 아니라 진심을 쌓아 올리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건설사도 있다. 이처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니 새집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집을 구울 수 있는 상상을 하게 되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1.5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는 ‘질’, 즉 어떤 콘텐츠를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고전과 철학 등 직관의 기초가 되는 책들인지 아닌지에 따라 후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달리 말하면 ‘기초가 되는 책을 읽느냐, 응용에 해당하는 실용서를 읽느냐’는 미래에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시카고대는 100여 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를 84명 배출해 ‘노벨상 명문 학교’로 유명하다. 그 비결이 고전 위주의 독서 목록을 만들어 교육한 데 있다고 한다. 1890년 석유 재벌인 존 D 록펠러가 설립한 시카고대는 실용적인 학문보다 순수 학문에 치중하는 전통적 경향을 띠고 있다.

특히 학생들은 2년 동안 폭넓은 교양과목을 공부하는 ‘리버럴 아츠 프로그램’을 택하고 있다. 그 시작은 1929년 로버트 허친스가 총장이 되면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야심적인 목표 아래 도입한 ‘시카고 플랜’이다.

시카고 플랜의 핵심은 인류의 고전 100권을 필독서로 선정해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고전 교육을 받은 후 시카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허친스는 교양 교육을 강조하며 고전을 통해 지성을 계발하고, 이성을 훈련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보았다.

이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필수’라고 한다. 누구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른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자세만 유지하더라도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다만 성공의 기술을 전해주는 실용서를 읽기보다 ‘읽기 싫고 잠이 오는’ 철학이나 시를 읽어보자. 잡스가 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영감이나 직관의 기술은 경영 필독서가 아니라 때로는 신비주의적 시나 선의 세계와 같은 것의 탐닉에서 나온 것이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경영자는 논리보다 직관력 키워야
최효찬 소장은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