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형 한국투신운용 사장

지난해와 올해 펀드 시장에서 최대 이슈 메이커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다. 대표 상품 ‘한국투자 네비게이터 펀드’는 연초 대비 2월 말 기준 3333억 원(재투자 제외)이 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가 4061억 원 감소한 것과 비교할 때 놀라운 실적이다.

물론 수익률도 업계 최상위다. 아무리 시장이 불황이라도 질 좋은 상품은 고객이 먼저 알아보는 법. 지난 2월 5일 설정된 ‘한국투자 네비게이터 중국 본토 증권 펀드’ 역시 한 달(3월 11일 기준) 만에 294억 원이 유입됐다.

정찬형 한국투신운용 사장은 “단기 수익률에 연연하지 않고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 장기 투자한 결과”라면서 “우리의 펀드는 시스템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앞으로 시장이 아무리 나빠져도 수익률만큼은 업계 최상위를 차지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우리의 경쟁상대는 글로벌 펀드 운용사”라면서 “올해부터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해 글로벌 펀드 운용사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투 네비게이터 펀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이 높은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적을 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중·장기 안정적인 수익률, 시장 상황에 흔들림 없는 펀드, 원칙에 충실한 펀드운용이 저의 경영 철학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난 12분기(4년 중) 중 최근 9분기 동안 펀드 수익률이 상위 25%의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3년 동안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낸 펀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 비결을 찾는다면 가치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장기 투자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 종목을 교체하는 매매 회전율의 업계 평균치가 약 200%인데 우리는 지난해 66.7%에 불과했죠.

중·장기 가치 투자로 수익률 ‘최고’ 달성
한국투신운용의 펀드 운용 원칙이 궁금합니다.


야구로 치면 홈런보다 꾸준한 3할대를 치는 타자가 우리의 이상형입니다. 우리 회사는 가치 투자를 신봉합니다.

내부 리서치 인력들이 상향식(Bottom up) 방식으로 기업 가치 종목을 분석해 구성원 간 활발한 토론을 통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죠,

사전 합의된 프로세스를 철저히 준수하는 대신 단기 모멘텀 투자를 지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투운용의 펀드는 위험 분산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리는 시스템에 따라 움직입니다. 펀드매니저 교체에 따라 수익률 부침이 큰 다른 펀드들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 임원 1명, 리스크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전담 본부를 별도로 두고 있는 것도 요즘 같은 때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국내 최장수 자산 운용사답게 그동안 쌓은 위기 대처 노하우를 바탕으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국내 처음 개발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사실 산업의 특성상 펀드매니저의 이직은 불가피합니다. 그렇게 되면 펀드의 수익률은 부침을 거듭할 수밖에 없죠. 이 때문에 시스템을 통한 펀드 운용만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운용사와 펀드 운용 방식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관리하는 겁니다. 우리 회사는 리서치와 운용을 축으로 운영되는데, 모두 전문성이 기본입니다.

대부분의 운용사들이 리서치 업무의 경우 외부 업체에 의존하는데 우리는 리서치팀의 역량이 대단합니다. 이에 대해 펀드매니저들이 높은 신뢰를 보내주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사실 펀드를 운용하다 보면 단기 성과에 대한 유혹이 많습니다.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선 원칙과 철학이 필요하죠. 기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오너와 펀드매니저가 하나의 통일된 운용 원칙을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장기 가치 투자로 수익률 ‘최고’ 달성
올해 펀드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전체적으로 펀드 시장은 소폭 성장할 것 같습니다. 국내 주식형을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해외 펀드는 비과세 일몰제가 시행되면서 당분간 자금 이탈이 불가피합니다.

해외 펀드에서 이탈된 자금이 국내 주식형에 재투자되는 경우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죠.

시장 밸류에이션 매력이 증가하면서 검증된 대형 성장주 펀드의 매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 펀드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따른 국내 주식시장의 경쟁력 강화가 단연 이슈가 될 겁니다. 지수 편입은 해외 장기 투자 자금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현재 약 14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개인의 노후 자금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 시장이 약 30조 원 정도로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펀드에 대한 지나친 환상으로 손해를 본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펀드 투자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박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대 수익률을 낮춰야 해요. 물론 투자 패턴도 장기 분산, 적립식 투자로 바꿔야 합니다. 실제로 주가가 고점이었던 2007년 10월 말에 가입해 2년간 꾸준히 금액을 납입한 경우 주가지수는 마이너스 23.45%였지만 적립식 펀드의 수익률은 7.91%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금융 위기로 2008년 10월에 납입을 중지했다면 수익률은 마이너스 7.75%로 뚝 떨어집니다. 장기 분산 투자는 펀드매니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에요. 투자자도 예외일 수 없죠.

올 국내 주식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원칙적으로 자산운용사는 시황과 지수를 전망하거나 종목을 추천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증시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으며 외국인 수급상의 여유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상대로 기업 이익이 나온다면 지수 1850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글로벌 운용사로의 도약을 준비하시는데 이에 대한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리는 지난 2006년 9월 베트남 호찌민시에 국내 운용사로는 처음으로 증권 업무를 위한 현지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홍콩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범 중국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올 상반기에는 중국 상하이에 리서치센터를 세울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중국 본토 내 중국 합작 운용사 설립도 준비 중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삼성생명 기업공개(IPO) 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이 선정됐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투신의 인덱스 펀드에는 삼성생명 주식을 담을 수 없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사실 요즘 그게 고민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삼성투신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공동 주관사로 삼성증권이 선정됐기 때문이죠. 계열사를 통한 주가 조작이나 담합 문제를 막기 위해 이런 법이 만들어졌는데, 반대로 보면 우리 고객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현재 금감원과 협의 중에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적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펀드 이동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운용사 입장에선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판매사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습니다만 고객의 자산을 제대로 관리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싶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싸고 자산관리 서비스가 잘 돼 있는 곳을 선호할 수밖에 없죠.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지만 은행의 비중은 주는 대신 증권사는 다소 커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식 투자에 대한 강점이나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해 고객들이 증권사의 역량을 더 높이 평가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찬형 사장은…

1956년생. 81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 1981년 한국투자신탁 입사. 2002년 IB사업본부장. 2006년 한국투자금융지주 전무. 2007년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현).

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