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발만 담가 놓고 눈치 싸움 치열하네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불과 2년 전인 2008년 7월 우리는 국제 유가 147달러(WTI, 배럴당) 시대를 경험한 바 있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것 같던 국제 유가는 그해 금융 위기로 33달러대까지 급락하기도 했지만 연료비가 적게 드는 전기차 도입 논의에 불을 댕겼다.

2010년은 국내나 해외 모두 전기차 시대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4월부터 제한적이나마 저속 전기차 주행이 허용되고 해외에서는 패밀리카 형태의 대중적 전기차가 양산돼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연료 소모가 적은 그린 카(Green Car: 친환경차)인 전기차가 곧 대세가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미 하이브리드카(HEV)는 순수 내연기관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올해부터 전기차(EV)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면 가격은 더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중화 시기가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다.

전기차 도입은 인프라 구축까지 이뤄져야 하므로 자동차 제조사의 역량만으로는 힘들고 정부·지역·기관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전기차 도입은 인프라 구축까지 이뤄져야 하므로 자동차 제조사의 역량만으로는 힘들고 정부·지역·기관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충전 시설이 문제다. 미국처럼 개인 차고가 있는 곳에서야 집에서 충전하면 되지만, 한국처럼 아파트·빌라 같은 공동주택이 많은 곳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나 홀로 전기차를 사서 아파트 주차장의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충전한다고 치자. 당장 아파트 주민회의·부녀회·관리사무소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결국 전기차 도입은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만으로는 보급이 어렵고 각 국가의 정책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리터당 1000원에 육박하는 유류세를 정부가 과연 포기할 것인지도 문제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충전 시설이 갖춰지기 전에는 전기차 보급이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전기차가 보급되기 시작하면 충전 시설도 따라서 보완될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리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완성차 업계의 의견도 분분하다. 현재 자동차 업계는 하이브리드카 진영, 전기차 진영, 그리고 클린 디젤 진영으로 나뉘어 친환경 자동차의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이브리드카 진영은 도요타자동차·혼다, 전기차 진영은 닛산·제너럴모터스(GM), 클린 디젤 진영은 폭스바겐·BMW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 앞서 가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전기차 보급이 이른 시간 내에 힘들기 때문에 향후 10년 이상은 하이브리드카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충전 시설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기존의 자동차 사용 패턴과 동일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이유에서다.

도요타, 하이브리드카로 고독한 싸움

도요타자동차는 1992년부터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시작해 1997년 친환경차의 대명사인 프리우스를 개발했다. 지금까지 무려 18년 가까운 시간을 하이브리드카에 투자하다 보니 전기차 대세론을 수용하기 어려운 입장에 서 있다. 게다가 도요타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다수 획득해 경쟁사들이 하이브리드카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시장이 크는 것을 막았고 타 업체들의 전기차 개발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도요타자동차도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카를 주축으로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카도 저속에서 엔진이 멈춘 채 모터 구동만 할 때는 전기차와 똑같다. 고속 주행용 모터와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는 배터리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도심형 전기차인 FT-EVⅡ를 선보였고 프리우스의 P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형도 개발해 금년 중 발표할 예정이다. 도요타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를 차세대 주력으로 삼으면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혼다는 도요타자동차만큼 적극적이지 않지만 현재는 하이브리드카 진영에 서 있다.

혼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도요타자동차와 달리 ‘마일드 하이브리드(모터만으로 주행이 불가능하고 엔진의 힘을 보조하는 형태)’로 비교적 간단하다. 도요타자동차의 특허 선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다의 경우 하이브리드카 흐름을 소극적으로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대신 혼다는 2009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양산형 연료전지차인 FCX클래러티(FCX Clarity)를 판매하고 있다. 양산형이라는 말은 생산에 필요한 조립 라인까지 갖췄다는 뜻으로 언제든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혼다는 FCX클래러티의 판매 목표를 3년 동안 200대로 잡고 있다. 이와 함께 2009년 도쿄 모터쇼 때 EV-N, EV-클럽, EV-몽팔 등 다양한 형태의 전기차를 선보여 기술력을 과시했다.

전기차 진영의 리더 격으로는 GM과 닛산을 들 수 있다. GM은 메이저 자동차 회사로는 처음으로 지난 1996년 전기차인 새턴 EV-1을 출시해 미국 일부 지역에서 리스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리스 대수가 800대에 그치면서 GM은 10억 달러의 적자를 보아야 했고, 결국 2002년 리스한 차량을 강제 회수해 폐차하기도 했다.

GM은 올해 전기차 볼트(Volt)를 출시해 전기차 대중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볼트는 전기차의 약점인 짧은 주행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1400cc 가솔린엔진을 장착했다. 완전 충전된 배터리로 64km를 주행한 뒤 배터리가 방전되면 엔진을 작동해 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동시에 배터리를 충전해 주행거리를 480km로 늘릴 수 있다.

닛산은 도심 출퇴근자의 평균 주행거리가 100km 이내라는 점을 들어 양산형 전기차 리프의 주행거리를 160km까지 늘렸다. 그러나 넓은 땅덩어리에서의 장거리 주행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볼트가 더 미국적인 전기차에 가깝다.

2010년 11월 출시될 볼트의 예상 가격은 4만 달러대로 정부의 세제 지원을 받을 경우 3만 달러 초반에 구입할 수 있다. GM은 이를 통해 전기차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만 담가 놓고 눈치 싸움 치열하네
GM, 전기차 볼트로 미국 시장 재기 노려


도요타자동차와 혼다가 하이브리드카로 앞서 나가는 것에 위기감을 느껴 왔던 닛산은 하이브리드카 개발을 건너뛰고 바로 전기차 양산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리프는 올해 미국과 일본에서 먼저 판매가 개시된다. 리프의 최대 주행거리는 160km다. 이는 전 세계 운전자의 80%가 하루 주행거리가 100km를 넘지 않는다는 자체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운전 중 방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각국 정부 및 기관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전기 충전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일례로 미국 에너지부는 샌디에이고와 피닉스 등 10개 주요 도시에 1만 개 이상의 충전소를 갖출 예정이다. 또 전기차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리프를 연간 10만 대 이상 생산할 경우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투자 천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투자한 회사로 잘 알려진 중국의 BYD는 중국 내수를 기반으로 전기차 분야의 글로벌 선두 주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09년 44만 대의 차를 판매한 BYD는 모회사가 세계적인 휴대전화 공급사라는 장점을 살려 저렴한 전기차를 전 세계에 공급할 계획이다.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그동안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차보다 디젤 기술을 발달시키며 친환경 기준을 맞춰 왔다. 도요타 프리우스의 공인 연비는 리터당 29.2km이지만 폭스바겐의 ‘폴로 블루모션 1.2TDI’는 리터당 31km에 달한다. 폭스바겐으로서는 굳이 비싸게 하이브리드카를 사느니 클린 디젤 기술을 이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하이브리드카는 비싸기만 한 과시용이라는 것이다.

유럽 업체들은 중립적 입장에 가까워

하이브리드카가 내연기관의 버려지는 동력을 재활용하는 것과 달리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디젤엔진은 엔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배출 가스 후처리 시스템을 통해 공해 물질을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에 따르면 디젤 직분사 엔진은 유럽에서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006년 북미 시장에 판매되기 시작한 후 56만 대가 팔려 디젤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북미에서 2000년 이후 80%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디젤 차량의 점유율은 2015년까지 3배 성장해 시장점유율이 15%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BMW도 전기차가 대세가 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전기차가 디젤·하이브리드카 등 여타의 친환경 차량에 비해 기술적으로 압도적이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디젤차, 직분사 엔진, 듀얼 클러치 변속기 등 현존 기술로도 얼마든지 저매연·고연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BMW는 전체 판매량이 그리 많지 않은 프리미엄 브랜드다. 엔진 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력 성능을 과시하는 편인데 진입 장벽이 낮은 전기차에 뛰어들 경우 시장 지배력을 잃어버릴까봐 고민하고 있다.

BMW는 어느 한 기술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기보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다양한 친환경 자동차에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볼륨이 작기 때문에 시장을 리드할 수 없어 기초적인 기술을 쌓은 뒤 시장의 변화에 따라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유럽 업체들이 전기차에 소극적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의 흐름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도 전기차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폭스바겐은 201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E-모빌리티’를 선언하고 2011년 전기로 움직이는 골프 500대를 시범 생산하기로 했다.

이어 2012년에는 제타 하이브리드를 미국에서 판매하고 2013년에는 파사트 하이브리드, 골프 하이브리드를 선보이고 전기차 E-UP 생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8년에는 폭스바겐 전체 판매량의 3%를 전기차가 되도록 목표로 삼았다.

아우디는 2009년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e-트론’을 선보이며 전기차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앞서 나갈 것을 선언했다. 타 메이커에서 주행거리와 가격을 고려해 경차 수준의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는 것에 비해 포지셔닝을 달리 하겠다는 의도다.

최신형 e-트론의 경우0→100km/h 가속 성능이 4.8초, 주행거리가 248km로 웬만한 고성능 내연기관 자동차에 뒤지지 않는다. 동시에 A1 베이스의 전기차인 ‘A1 e-트론’도 선보였다.

발만 담가 놓고 눈치 싸움 치열하네
한편 한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그동안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하이브리드카가 과도기적 형태에 그치고 궁극적으로는 연료전지차(FCEV)가 대세가 될 것으로 보고 한때 FCEV 개발에 매진했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FCEV 얘기는 쏙 들어가고 전기차(EV)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전기차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일단 지난해 현대·기아차 최초의 하이브리드카인 아반떼LPi 하이브리드카, 포르테LPi 하이브리드카를 출시했고, 올해 하반기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2011년부터는 소형차 i10 기반의 전기차를 소량 생산해 시범 운용한 뒤 201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양산할 계획이다. 현대차의 전략은 BMW처럼 디젤엔진, 직분사 가솔린엔진,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등 다양한 차세대 자동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모두가 언젠가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시기에 있어 지금이 적기인가에 대한 논의만 있을 뿐이다. 전기차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충전 인프라를 함께 갖춰 나갈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한 업체의 주도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다.

애플 ‘아이폰’ 같은 전기차 언제든 나올 것

기술 장벽이 낮은 전기차에서는 언제든지 애플 아이폰 같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 미국 테슬라모터스는 모든 제조 과정이 아웃소싱으로 이뤄지는 점이 독특하다.

기술 장벽이 낮은 전기차에서는 언제든지 애플 아이폰 같은 제품이 나올 수 있다. 미국 테슬라모터스는 모든 제조 과정이 아웃소싱으로 이뤄지는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전기차는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내연기관에 기술력을 갖춘 메이저 업체들이 쉽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시장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도입에 소극적인 반면, CT&T, 레오모터스, AD모터스 등의 중소기업이 주도적으로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도 실리콘밸리의 벤처 업체나 다름없었던 테슬라모터스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전기차 주도권 싸움은 메이커가 그간 쌓아온 기득권의 싸움이기도 하다. 도요타자동차는 향후 10년 동안 자신들이 주도하는 하이브리드카가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도요타자동차에 선수를 빼앗긴 후발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카를 뛰어넘어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100년 넘는 자동차 기술을 가진 유럽 업체들은 그간의 기득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 산업이 재미있는 것은 ‘애플 아이폰’ 같은 제품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테슬라모터스는 애플처럼 모든 하드웨어의 제작을 외주로 하면서도 뛰어난 상품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레오모터스, AD모터스 같은 업체들은 기존 완성차를 베이스로 전기차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프레임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직접 제작이 어려워 기존 완성차 업체의 껍데기를 이용해야 하지만 모터·배터리·인버터·컨버터 등은 공급처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를 엮는 기획력이다.

발만 담가 놓고 눈치 싸움 치열하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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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01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