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나무가 전하는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그저 나무가 좋아 나무만 그리는 이가 있다. 전국 방방곡곡 나무를 찾는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여행 중 만나는 나무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화폭 위에 옮겨 담는 나무 그림 화가 유선영 씨다.

화가 유선영 씨는 이렇다 할 걸출한 수상 실적도 없고 웬만한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녀온다는 해외 유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쉼 없는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자신만의 예술혼을 닦아가고 있는 화가다.

“아직 멀었어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인걸요.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저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더 들면 인생의 깊이만큼 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그릴 뿐이죠.”

‘나무가 전하는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를 만나는 그림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건 7년여 전, 그녀 나이 마흔 살 때부터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진작부터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7남매 중 여섯째인 그녀에게 미술은 감히 꿈꿔서는 안 될 욕심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대학에서는 영문과를 전공했고 졸업하고는 전공을 살려 학원 강사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며 평범한 일상을 계속했다. 결혼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아 키웠다. 하지만 그런 일상의 순간순간에도 만족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어 너무나 갑갑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깥일도 계속했어요. 집안일에 아이들 키우랴, 바깥일 하랴 바쁘게 살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내내 텅 빈 것 같더라고요.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죠.”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본 그녀는 그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바로 그림이었다. 평생 그저 꿈 꿔 오기만 한, 자신 안에 숨어 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것이다. “다행히 저처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동아리를 만들고 함께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됐죠.”

스케치 연필을 들고 도화지에 선을 긋는 법부터 배워나갔다. “아크릴화나 유화로 그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작업 과정도 복잡할 뿐더러 냄새나 기타 여건 때문에 아크릴이나 유화 작업을 하려면 생활공간과 분리된 작업실을 마련해야 하거든요. 그에 비해 수채화는 집 안에서 손쉽게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하는데 큰 부담이 없었죠.”

그림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자꾸만 신이 났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일이며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 너무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족 누구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림 중에서도 그녀가 주로 그리는 것은 나무, 그것도 흔히 노거수(老巨樹)라 일컬어지는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들이다. “처음에는 저도 인물화도 그려 보고 거리의 풍경들도 그려 보긴 했어요. 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딱 이거다 싶은 그림이 없더라고요. 제가 그려도 제 그림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쩌다 한두 번씩 그리는 나무 그림만이 그녀에게 충만감을 주었다. 나무를 그리고 있으면 놀랄 정도로 그림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제 오빠 중 한 분이 나무 심는 신부님이시거든요. 오빠에게 나무를 심는 일은 너무나 경건한 일이고, 어찌 보면 신을 받드는 일과 같아요. 그런 오빠를 곁에서 자주 보다 보니 저 역시도 자연스레 나무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나무가 전하는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나무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후에는 전국의 노거수를 찾아다녔다. 수령 몇 백 년 이상의 노거수들은 하나하나 그 생김새 자체가 바로 곧 철학이자 예술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거기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 같은, 그래서 거기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노거수의 진한 감동을 화폭에 옮겨 담는 작업들을 계속해 갔다.

먼 길일 때는 회사를 휴가 내면서까지 남편이 동행해 주곤 했다. 착한 아이들은 엄마, 아빠 없는 빈집을 잘 지켜줬다.

“그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 유명한 노거수가 있는 곳이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어요. 가지 않은 곳은 백두산 정도? 그래서 올해는 꼭 백두산에 다녀오려고요.”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노거수들은 산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대부분 쉽지 않은 여정의 연속이다.

“어떤 때는 노거수가 있는 곳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진 그 웅장한 장관에 몰두하다가 제 발 옆으로 뱀이 지나가는 것도 보지 못할 뻔했죠. 게다가 노거수가 있다고 해서 산 위까지 고생 고생해 올라갔는데 허허벌판만 볼 때도 많고요.”

시골 동네에서는 동네 개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위기에 몰리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나무들은 대부분 고생한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장관을 연출했다. 또 때로는 길을 잃어 잘못 든 곳에서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노거수를 발견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은 단순히 그림의 소재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듯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나무가 전해주는 따뜻한 감성과 대자연이 전해주는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잊고 화폭에 거의 달라붙듯이 엎드려 작업하다 보니 어깨가 상할 정도였지만 고달픈지도 몰랐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나무 그림을 통해 그녀가 보고 느꼈던 노거수에의 감동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올해 첫 아이가 대학에 들어갔는데요, 아이가 수능을 보는 날에도 전시회를 여느라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날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그림을 보러 많이 왔더라고요. ‘마음의 위로가 됐다’는 학생들의 방명록을 보고 그제야 아,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게 바로 이런 걸 위해서구나 싶었어요.”

나무처럼 나누며 살고 싶어

학벌과 수상 경력이 그 사람의 재능을 판가름 짓는 세상에서 별다른 수상 경력이 없는, 이렇다 할 학벌도 없는 그녀가 스스로의 이름을 내세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미술을 이해하는 지식과 눈이 없어도 그저 보고만 있어도 나무가 전해주는 감동과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나무 그림을 사랑해 주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는 하루에 10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찾아오시더라고요. 그때는 저 자신도 많이 놀랐죠. 그분들은 대부분 그림에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다 거리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그 포스터 속의 나무 그림에 이끌려 찾아오신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녀에게는 평단의 찬사나 화려한 상장이나 트로피보다 전시를 보고 난 후 ‘나무 하나하나를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는 관람 소감이 훨씬 더 뜻 깊고 소중한 선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무에서 받은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지금까지처럼 작품 활동을 해가고 싶습니다.”

유선영 약력
: 1964년생으로 1988년 덕성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나이 마흔에 첫 붓을 잡았다. 전국 방방곡곡의 노거수들을 주제로 2007년 제1회 개인전 ‘오! 나무여(중동창작실)’ 2008년 제2회 개인전 ‘나무처럼…(라메르갤러리)’ 2009년 제3회 개인전 ‘신의 축복(세종문화회관 광화랑)’ 등의 다양한 전시 활동을 했다. 현재(3월 4일~4월 3일) 국립수목원 초대전에 참여하고 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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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01 1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