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여론 등에 업고 개혁안 밀어붙이기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법안이 금융 위기 초래 주범인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규제를 골자로 하고 있어 여론의 호응이 높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대통령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월가 편을 들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는 상황은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의료보험 개혁(healthcare overhaul)’, ‘금융 개혁(financial overhaul)’, ‘교육 개혁(education overhaul)’….

미국에서 요새 부쩍 많이 보고 듣는 게 바로 이 ‘오버홀(overhaul)’이란 단어다. 사전적으로는 ‘기계를 완전 분해해 점검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으로는 어떤 법안이나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뜻한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의료보험이나 금융 산업 등을 큰 방향에서부터 세부적 사항까지 완전히 뜯어고친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TV나 라디오 인터넷 등 언론도 이를 여과 없이 쓰고 있다. 이 단어가 유행하는 것을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전 부처에서 ‘혁신(革新)’이란 단어가 대유행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미국의 금융 산업 규제는 기타 관련 국가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금융 산업 규제는 기타 관련 국가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 개혁안에 관심 = 어쨌든 3월 들어 오버홀 작업에 부쩍 속도가 붙는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가장 큰 이슈인 의료보험 개혁은 3월 내 관련 법안이 상·하원에서 표결 처리될 예정이다. 이 법안이 양원에서 통과된 후 대통령의 사인을 받으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한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근 100년 만에 실현되게 된다.

이제 관심은 두 번째 개혁 주제인 금융 개혁 법안으로 옮아가고 있다. 금융 개혁 법안에 관한 관심은 지난 3월 15일 상원 금융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주도로 만든 상원안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증폭되고 있다.

이 법안은 금융 위기의 주범인 월가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를 어느 정도로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과연 민주·공화 양당이 이를 합의 처리할 수 있을지 절차적인 측면도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미국의 금융 산업 규제는 기타 관련 국가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 금융 개혁 법안의 내용은 크게 △미 연준(Fed·미 중앙은행)의 위상 조정 △소비자 보호 강화 △금융회사 감독 및 리스크 관리 강화 △정리기금 신설 등이다.

도드 금융위원장이 공개한 상원안은 공화당의 주장이나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했던 내용, 12월 하원을 통과한 법안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보호기구가 쟁점 =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독립 기구, 가칭 ‘금융소비자보호기구(financial consumer protection agency)’의 신설 문제였다. 이 기구는 금융회사의 전횡으로 신용카드나 모기지론 분야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을 만들고 필요할 때 관련 기관을 직접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오바마는 당초 이를 독립 기구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이 안은 하원안에 포함됐다. 도드 위원장은 공화당과의 협상을 거쳐 이 기구를 독립 기구가 아닌 연준 내 부서로 두기로 했다.

또 금융회사들의 이익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새로 신설되는 ‘금융안정감시위원회’에서 3분 2 이상 찬성하면 소비자 보호 규정을 부결시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상당 부분 공화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양보한 셈이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비판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시장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금융회사를 ‘강제 정리(orderly liquidation)’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었다. AIG처럼 파산 결정 시 피해가 너무 커 손을 대지 못하는 사례가 없도록 정부 예산이 아니라 대형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추렴해 500억 달러 규모로 정리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강제 정리 절차에 착수할 때는 반드시 재무장관의 승인을 얻은 후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두 기관 이사회로부터 3분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되 그 조건을 매우 어렵게 해 공화당과의 협상의 여지를 둔 셈이다.

월가의 위험 거래를 제한하는 ‘볼커 룰’도 오바마의 제안 내용보다는 약간 톤다운 형태로 상원안에 포함됐다. 월가 보너스 잔치와 관련해서는 주주들이 경영진 보수를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했다.

헤지 펀드 규제에 대해서는 하원안은 정부 등록 대상을 펀드 규모 1억5000만 달러 이상으로 정했지만 상원안은 1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했다. 은행들의 자기자본 기준 등을 통해 시장 리스크를 관리할 9인의 ‘금융안정감시위원회(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도 신설하기로 했다.

연준의 은행 감독권 조정 문제는 민주당 내에서 다소 조율이 필요할 전망이다. 하원안은 금융 위기 발발에 대한 연준의 책임을 물어 중소형 주법은행(state-charted banks)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다른 기관에 넘긴다는 내용을 담았다. 상원안은 연준의 감독권을 유지시켜 준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상원안대로 된다면 연준은 자산 500억 달러 이상 금융 지주회사 및 500억 달러 미만 주법은행에 대해 계속 감독권을 행사하게 된다. 사실상 연준은 이번 금융 개혁안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평도 있다.

◇처리 가능성은 = 민주당 소속의 도드 위원장은 공화당 밥 코커 의원과 2월부터 1개월 넘게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뉴욕타임스는 실패 이유에 대해 △당파적 이해 △철학적 이견 △실무자 간 인파이팅(infighting) △중간선거의 압력 등을 꼽았다. 선거를 앞두고 시장 규제를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입장(민주당)과 시장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당파적 이해관계(공화당)가 충돌하면서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지역구 관리를 잘못해 이번 중간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된 도드 위원장의 개인적 처지도 표결 처리 강행의 이유가 됐다.

지난 1980년 상원의원으로 입성해 5선 가도를 달린 도드로서는 그의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줄 ‘큰 건’이 필요한 입장이다. 그는 어떻게든 금융 개혁안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도드로서는 공화당과의 절충을 포기하고 곧바로 표결 처리로 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민주당은 3월 22일 상원에서 표결 처리를 강행한다는 전략이다. 도드 위원장은 “양당의 합의 도출을 원했지만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3월 22일 전체회의 표결을 통해 상원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원에서 표결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하원안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절충을 거쳐 다시 양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한 셈이다.

상원에서 공화당의 의사 진행 발언 전술을 제지하고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최소 60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 의석은 59석이다. 민주당 전원이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공화당에서 최소 한 표의 반란표가 가세해 줘야 한다.

미 언론들은 민주당이 금융 개혁을 둘러싼 합의안 도출 실패로 여론이 악화되고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여론에 따라 마음을 돌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상원안이 양당 간 합의 실패 후 사실상 도드 의원이 단독으로 공개한 것이어서 공화당이 순순히 협조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공화당은 소비자보호기구 신설 문제를 비롯해 민주당이 시장을 크게 위축시키는 방안들을 추진하고 있다며 별도의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 언론들은 궁극적으로는 금융 개혁 법안의 통과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이다. 일단 법안이 금융 위기 초래 주범인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규제를 골자로 하고 있어 여론의 호응이 높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이 금융 개혁 법안 추진 과정에서 대통령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월가 편을 들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는 상황은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시기적으로 통과에 유리하다. 금융 개혁 법안이 본격적으로 양당 지도부의 도마 위에 오르는 시기는 오는 6월께로 점쳐진다. 그리고 9월이면 금융 위기 발발 2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더해진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법안을 밀어붙일 태세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박수진 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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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01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