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47호 (2010년 03월 29일)

‘대륙 떠돌이’ 전락…자립 능력 떨어져

기사입력 2010.03.26 오후 02:28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0년 이후 출생자들인 ‘바링허우(80後) 세대’가 대륙을 떠돌고 있다.

“취업 경쟁이 격렬해져 도시에선 하릴없이 몰려 사는 가난한 청년 집단인 이주(蟻族·개미족)가 늘어나고 산업도시에선 높은 물가로 귀향하는 젊은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이 증가하는 등 바링허우 세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청년보)

바링허우 세대는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1가족 1자녀 정책으로 대부분 독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왕자처럼 떠받들어진다고 해서 샤오황디(小皇帝)로도 불리는 이들의 낮은 저축률과 높은 소비성향은 중국 내수시장 확대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두 자릿수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되면서 취업난이 심화되는데도 바링허우 세대는 3D 업종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립심은 약하지만 애국심은 강해 민족주의 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바링허우 세대가 보여주는 고성장의 빛과 그늘을 조명해 본다.

두 자릿수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되면서 취업난이 심화되는데도 바링허우 세대는 3D업종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되면서 취업난이 심화되는데도 바링허우 세대는 3D업종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웨광주의 그림자 =
바링허우 세대가 성인이 돼 사회에 진출하면서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신흥 중산층 소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몸값이 1억 위안이 넘는 젊은 최고경영자(CEO), 중국 최초 20대 최연소 시장 발탁, 고위 간부 진출 등 바링허우는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고성장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때문에 부모 세대와 달리 소비에 주저함이 없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바링허우의 잠재 소비층은 약 2억400만 명에 달한다. 중국이 소비 번영기에 진입하는 2016년이 되면 바링허우가 소비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기표현에 강한 바링허우는 제품의 기능보다 ‘느낌·감각’에 충실한 소비층으로 중국의 감성 소비 시대를 이끌 세대로 통한다. 컴퓨터와 전자제품 사용에 능숙하며 블로그 등 정보 수집 채널이 다양한 이들은 인터넷 쇼핑의 주력 소비층이기도 하다.

바링허우의 영향력 확대는 중국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차이나모바일이 바링허우 세대에만 특권을 부여하는 ‘M-존(動感地帶)’을 내놓으며 ‘브랜드·유행·개성’의 이미지로 이들을 공략한 게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바링허우의 주요 소비 품목이 정보기술(IT) 전자제품·게임·애니메이션·의류 등으로 한국 기업이 강점이 있는 부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바링허우의 소비가 본격화될 때에 대비해 그들의 생활 방식과 소비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마케팅과 유통에 접합하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바링허우 세대는 돈 씀씀이가 헤퍼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측면도 있다. 월급을 몽땅 털어 소비하는 웨광주(月光族)가 되는 것도 모자라 카드 빚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많다. 카드 연체자 대부분이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이에 따라 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중국 언론을 통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자립심 약한 개미족 = “바링허우 세대는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의 이립(而立)으로 불리는 30세가 되어 가지만‘불립(不立)’에 빠졌다.”(관영 신화통신)

바링허우 세대는 공산 정권 수립과 문화대혁명 등을 거친 부모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정식 교육을 받았고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 눈높이부터 높다. 집을 사도 좀 더 좋은 것, 직장을 가져도 월급을 많이 주는 곳, 일을 해도 좀 편한 것을 추구한다. 자립심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 심화된 취업난과 최근 들어 치솟는 물가에 3D 업종의 회피 등으로 도시에서 안정된 삶을 찾는 바링허우 세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 졸업장을 들고도 힘이 없고, 하릴없이 몰려 산다는 개미족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두 자리 성장률을 자랑하며 고도의 성장기에 가려졌던 또 하나의 이면이 경제문제를 넘어 국가·사회적 골칫거리로 본격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을 갖고 있는 바링허우 세대도 결혼과 내 집 마련 걱정에 빠져 산다. 신랑왕의 설문 조사에 참여한 바링허우 중 1.7%만이 ‘행복한 세대’라고 답할 정도다.

빈부 격차 확대는 바링허우 세대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빈부 격차 확대는 바링허우 세대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농촌의 바링허우도 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바링허우 세대의 농민공들 사이에 귀향 열풍이 거세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살기 힘들어서다.

치솟는 물가가 일차적 주범이다. 특히 집값은 바링허우 세대가 도시의 삶을 포기하도록 하는 원인이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신랑왕이 최근 베이징·상하이·광둥성·저장성에 살고 있는 바링허우 33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둘 중 한 명은 월급이 월 3000위안(약 51만 원) 이하다.

갓 회사에 취직한 농민공은 잘 받아야 1000위안 안팎이다. 이 돈으로 고향의 부모에게 생활 자금을 부치고 ㎡당 수만 위안씩 하는 집을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 신세대의 특징 중 하나인 3D 업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기숙사나 음식 등 복지에 대한 요구 조건도 까다롭다. 광둥성의 기계 조립 업체인 한미실업 김치형 사장은 “젊은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고 공장 안에서도 원하는 게 많아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또 “최근 경기 호전으로 몸값이 점점 더 비싸지고 있지만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 산시성 등 내륙으로 이전을 고민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의 대물림 = 중국 고성장에 가려진 빈부 격차 확대는 바링허우 세대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민영기업들이 몰려 있는 저장성에는 2세 경영인들을 타깃으로 한 교육과정까지 인기를 끌 정도다.

“최근엔 부의 대물림을 뜻하는 ‘푸얼다이(富二代)’와 가난의 대물림인 ‘핀얼다이(貧二代)’에 이어 ‘관얼다이(官二代)’가 등장해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고 있다.”(중국 포털 사이트 첸룽왕) 관얼다이는 공직의 대물림을 뜻한다.

관얼다이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한 지방정부가 직원을 채용할 때 현 간부 자녀들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저장성 원저우시 룽완구 당국은 당·정 합동으로 ‘부계장급 이상의 간부급 자녀들에 대한 보충 채용 규정’을 만들어 기존 간부 자녀들에게 특혜를 줬다.

그 결과 이 구 간부 55명의 자녀 중 22명이 신규 직원으로 채용되는 행운을 얻었다. 중국 사회과학원 원사인 딩웨이웨 베이징대 교수는 인민들이 관얼다이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데 사실 많은 경우 이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서 관얼다이는 사회 불신과 권력 공신력 상실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사회 안정에 치명적인 독소가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초 산둥성의 신타이에서는 바링허우 6명을 부계장급 간부에 임명했고 이 중 23세의 왕란이 국유자산관리국 부국장에 기용되자 누리꾼들은 그녀가 관얼다이일 것으로 보고 인터넷을 통해 ‘인육검색’에 들어갔다.

왕란은 관얼다이가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지만 결국 한 간부의 예비 며느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푸얼다이의 과속 질주는 두렵지 않고 다만 관얼다이의 벼락출세가 걱정이 될 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바링허우 세대는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민족주의 감정을 분출시키며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성화 봉송 과정에서 오성홍기를 들고 반중국 시위대를 압도한 이들의 조직력과 참여의식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 광장을 태극기로 물들인 한국의 ‘붉은 악마’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들에게 중국은 성장하는 대국이고, 자긍심의 근원이다. 이들은 인터넷의 전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중국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선배들과 달리 ‘중국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들의 애국주의를 사회의 결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자칫 그 칼날이 공산당을 겨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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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01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