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대 기업 사외이사 대해부

12월 결산 기업의 주주총회 시즌(3월)이 마무리되면서 올해 새롭게 선정된 사외이사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지난해 자체 선정한 ‘2009 한국의 100대 기업’ 중 50위 이내 기업들의 공시를 통해 사외이사들을 분석했다. 국내에 상장된 기업체 수는 773개지만 이들 50대 기업은 매출액·시가총액·순이익 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5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숫자는 244명, 이들을 출신별로 살펴보면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 경영을 책임지는 위치이므로 기업가들이 많을 것 같지만 교수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기업인·법조인이 잇고 있다.

하나의 기업 내에서도 사외이사는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법조인은 거의 필수라고 할 만큼 한 명 이상 꼭 들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기업 경영과 관련해 법률적인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조계 인맥을 활용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윤동민 삼성전자 사외이사는 대검찰청 검사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다. 현대중공업의 송정훈 사외이사는 서울지법 부장판사,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출신이고 박진원 사외이사는 금감위 비상임위원 출신의 변호사다.

현대자동차 김광년 사외이사는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임영철 사외이사는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이다. SK에너지의 이훈규 사외이사는 대검찰청 형사부장과 인천지검 검사장 출신이다. LG전자의 김상희 사외이사는 서울고검 형사부장과 법무부 차관 출신이다. 특히 20위권 이내 기업에서 법조인이 없는 회사는 SK텔레콤과 외환은행뿐이었다.

기업인·교수·법조인 ‘귀하신 몸’
법률·세무 전문가 영입은 필수

법조인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인물들로는 국세청 간부 출신들이 있다. 기업에서 세금 1%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만큼 세무 전문가들이 귀한 몸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50대 기업 내에는 8명의 국세청 출신들이 있다.

이주석 신세계 사외이사는 서울지방국세청장, 박석환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는 중부지방국세청장, 서상주 삼성물산 사외이사는 대구지방국세청장, 정형수 현대제철 사외이사는 서울지방국세청장, 홍현국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는 대구지방국세청장·국세청 감사관, 최명해 현대산업개발 사외이사는 국세청 조사국장·재경부 국세심판원장 출신이다. 최봉길 우리투자증권 사외이사는 국세청 과세적부심사위원회 및 국세심사위원회 위원 출신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학계 출신으로 경영대 교수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포스코 사외이사,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LG디스플레이 사외이사, 전성빈 서강대 경영대학장은 LG텔레콤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학계 출신은 활동 내역이 검증돼 있고 이론적 깊이가 있다는 이유로 선호되는 편이다.

국내 5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평균 나이는 60.2세로 나타났다. 40대는 13명에 불과했지만 50대는 98명, 60대는 121명으로 60대가 가장 많은 층을 형성하고 있다. 70대는 12명에 그쳤다.

최고령 사외이사는 (주)한화의 오재덕 이사로 78세(1933년 3월 30일생), 최연소 사외이사는 현대제철의 오정석 사외이사로 41세(1970년 9월 30일생)다. 사외이사들의 나이가 많은 것은 풍부한 경험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현직에서 한창 일할 때는 사외이사로 활동할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외이사가 은퇴한 기업인·교수·공무원들의 괜찮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학력별로 보면 244명 중 박사가 82명으로 가장 많았고 학사 69명, 석사 54명 순이었다(미기재 39명). 교수의 수가 73명인 만큼 박사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기업 경영이라는 것이 전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력이 높은 편이다.

한편 50대 기업들의 기업당 사외이사 숫자는 4.86명으로 조사됐다. 사외이사는 ‘오너 기업’이냐 아니냐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사외이사가 전체 이사의 과반수가 되어야 한다. 사외이사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회사는 사외이사 비율이 훨씬 높겠지만 대개는 과반수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선에서 운영하고 있다.

시가총액이 국내 증시의 10%가 넘는 삼성전자에서도 사외이사는 4명에 그친다. 현대자동차 5명, LG전자 4명, 현대모비스 5명, 신세계 4명, 삼성중공업 4명, 삼성물산 5명, 현대제철 5명, GS건설 5명, 한진해운 4명, (주)한화 5명 등이다.

반면 특정 대주주(오너)가 없는 회사로 구분되는 포스코는 8명, KT 8명, 한국가스공사 7명, 특히 케이티앤지(KT&G)는 9명으로 50대 기업 내에서 가장 많다.

5순위 내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A 씨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이사회의 거수기가 되지 않고 오로지 주주 이익만 생각하면 되지만 문제는 대부분 ‘오너 기업’인 곳에서 생긴다. 사실상 추천 과정에서 오너의 입김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데 자신을 추천해 준 사람에게 맞서기가 힘든 면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오너 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이익과 소액 주주의 이익이 상충하는 일이 발생해도 사외이사가 소액 주주의 편을 들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대주주의 의지에 따라 경영이 이뤄지는 만큼 이사회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사의 수가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인·교수·법조인 ‘귀하신 몸’
금융권은 경험·전문성 고려해 영입


그러나 최근에는 오너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들도 전문성을 고려해 영입하는 추세다. 이는 특히 금융권에서 두드러진다.

현대해상 김창수 사외이사는 대한재보험 상무, 한국보험개발원장 출신이다. 엄홍렬 동부화재 사외이사는 보험감독원 기획조정국장, 삼성증권 김경림 사외이사는 외환은행장, 이영균 사외이사는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이다.

효성 배기은 사외이사는 동양나이론 대표이사, 대우건설 김세호 사외이사는 건설교통부 차관, 김진호 외환은행 사외이사는 한국수출입은행 전무, 이재욱 사외이사는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이다.

최근 KT 사외이사로 영입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이사도 전문성을 고려해 영입한 경우다. LG화학의 박일진 사외이사는 한국다우케미칼 사장, 오승모 사외이사는 서울대 교수로 차세대전지 성장동력사업단장 출신이기도 하다. SK에너지 이재환 사외이사는 삼성BP화학·삼성벤처투자 사장 출신이다.

사외이사 제도가 정착되면서 예전처럼 ‘거수기’ 역할에 그치지 않고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사외이사도 이제는 헤드헌팅 업체의 업무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평판 조회가 중요해지다 보니 같은 회사의 사외이사들 사이에 ‘열심히 안 한다’는 인식이 심어지면 임기 만료 후 다른 회사로의 ‘취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비교적 사외이사 제도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K텔레콤의 한 사외이사는 “해외에서는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 간 평가)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비교적 잘 되고 있는 SK텔레콤조차 피어 리뷰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외이사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눈치가 보인다”고 전했다. 회사가 사외이사 제도를 잘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사외이사들 사이에 경쟁 구도를 형성해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는 “사외이사 제도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려면 회사의 준비도 중요하다. 단순히 이사회에 참석해 보고를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전 설명과 조율이 이뤄지면 2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실기업은 사외이사가 연대책임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사외이사가 하는 일에 많은 보수를 받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기업처럼 처우가 좋은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 제도는 자산 총액 1000억 원 이상의 코스닥 상장 법인에도 의무화돼 있다. 사외이사도 등기이사이기 때문에 회사의 결정에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소액주주들에게 배상 의무가 있는데, 최근 소액주주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다. 코스닥시장에 부실기업, 상장폐지 회사가 많은 만큼 사외이사도 그만큼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또 오너 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이익과 소액주주의 이익이 부닥칠 때 사외이사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코스피 상장회사의 사외이사인 B 씨는 “재벌 총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에서는 총수의 생각을 읽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룹사에 따라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계열사 간 거래는 현실적으로 다 막지는 못한다. 다만 조금씩 줄여나가도록 할 필요는 있다”며 사외이사의 현실적 역할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업인·교수·법조인 ‘귀하신 몸’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