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넘는 ‘서바이벌 마케팅’

<YONHAP PHOTO-1257> People look at clothes displayed at Fast Retailing's Uniqlo store in Tokyo April 9, 2009. Fast Retailing reported 28.7 percent growth in operating profit on Thursday for the six months ended in February, buoyed by robust sales at its Uniqlo casual clothing chain, and again lifted its operating profit forecast for the full year to August.   REUTERS/Yuriko Nakao (JAPAN BUSINESS FASHION)/2009-04-09 16:07:4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People look at clothes displayed at Fast Retailing's Uniqlo store in Tokyo April 9, 2009. Fast Retailing reported 28.7 percent growth in operating profit on Thursday for the six months ended in February, buoyed by robust sales at its Uniqlo casual clothing chain, and again lifted its operating profit forecast for the full year to August. REUTERS/Yuriko Nakao (JAPAN BUSINESS FASHION)/2009-04-09 16:07:42/ <저작권자 ⓒ 1980-200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내수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긴자에서 요즘 손님이 북적대는 곳은 유니클로 매장 뿐이다.

프랑스의 루이비통이 점포 신설 계획을 철회하고 40년 역사의 일본 최대 보석점 미키 긴자점이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긴자점 면적을 1.5배로 확장했다. 작년 9~11월 중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영업이익은 49% 증가했다.

유니클로의 성공 비결로는 비슷한 캐주얼보다 20~30% 싼 ‘가격 파괴’가 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유니클로가 일본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지속적 물가 하락)을 부채질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러나 가격이 싸다는 것만으로 유니클로의 눈부신 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유니클로 제품엔 저렴한 가격 외에도 기능성과 디자인이란 ‘플러스알파’가 있다. 소위 ‘하류의 상(上)’이다.

하류의 상은 일본의 마케팅 전문가인 미우라 아쓰시의 책 ‘하류사회’에서 나온 말이다. 1990년대 장기 불황으로 중산층이 붕괴돼 대부분의 사람이 하류가 된 상황에서 그래도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싸지만 싸구려 티가 나지 않는 양질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하류의 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하류의 상(上)이 뜬다 = 최근 2~3년간 유니클로의 최대 히트작은 겨울 내복인 ‘히트텍’이었다. 일본에서만 6400만 장 이상 팔린 히트텍은 한국에서도 인기다.

이 히트텍은 몸에서 발산되는 수증기를 흡수해 열을 발생시키고 섬유 사이의 공기층이 열을 차단하는 기능성 신소재로 만들어졌다. 저렴한 가격에 실용적 기능성을 갖춘 것이다. 대표적인 ‘하류의 상’이다.
거품 뺀 실용성 ‘승부’…‘+알파’ 필수
유니클로가 히트시킨 브래지어 기능이 합쳐진 민소매 여성 속옷, 겉옷인지 내복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게 디자인한 내복 등도 모두 ‘하류의 상’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다국적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 헤네츠&마우리츠(H&M)도 비슷한 경우다. H&M의 강점은 무엇보다 ‘저렴하면서도 멋지다’는 것이다.

명품을 사기에는 돈이 없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 H&M이다.

H&M을 세계 3위 매출 규모의 패션 업체로 키운 롤프 에릭손 최고경영자(CEO)는 “경기 침체기엔 지갑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값비싼 명품보다 저렴하면서도 패셔너블한 ‘패스트패션(fast fashion: 패스트푸드처럼 유행을 빠르게 찍어 낸다고 해서 붙은 명칭)’을 찾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에서도 불황기 소비 코드인 ‘하류의 상’을 읽을 수 있다. 무인양품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싼값에 확보할 수 있는 양질의 친환경 소재 발굴, 제품의 핵심 기능과 관계없는 광택 염색 등 불필요한 공정의 생략, 로고 등의 장식을 최소화한 포장의 간략화 등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거품을 뺀 실용성’으로 불황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인양품의 콘셉트는 심플한 디자인과 기능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져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닌텐도가 성공한 포인트가 바로 그 ‘플러스알파’다. DS는 단순 게임뿐만 아니라 영어 학습, 지능 개발 등 교육적인 게임 타이틀을 개발해 게임기에 대한 부모들의 저항감을 최소화했다. 위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운동 삼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게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DS는 ‘교육’, 위는 ‘가족’과 ‘건강’이란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 불황기에도 대히트할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소비자들은 불황이라고 해서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니즈(Needs)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소비 여력이 줄어든 만큼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들의 눈이 더욱 까다로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다양한 제품을 이미 경험해 본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도 좋은 품질과 좋은 기능의 ‘보석’을 찾기를 원한다는 얘기다.

◇ 역발상 고가 마케팅도 먹혀 =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식품 슈퍼마켓 ‘세이조 이시이(成城石井)’. 주로 자체 상표(PB) 상품과 수입 식료품을 파는 이 상점엔 주부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두부 1모 가격이 279엔(약 3500원)으로 다른 가게보다 2배가 비싸지만 인기다. 다른 슈퍼마켓에서 3개당 900엔 정도 하는 햄버거가 이곳에선 1150엔이다.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 이런 ‘배짱 장사’로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일본 전국에 68개 점포를 운영 중인 세이조 이시이는 2006년부터 줄곧 두 자릿수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불황의 골이 가장 깊었던 2008년엔 영업이익이 26억 엔으로 전년보다 2.2배나 뛰었다.
거품 뺀 실용성 ‘승부’…‘+알파’ 필수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세이조 이시이의 성공 비결로 1927년 설립 후 80여 년간 지켜 온 이 회사의 신념을 꼽았다.

그 신념은 ‘소비자들은 시장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저렴한 가격보다 신용 유지를 더 원한다’는 것.

세이조 이시이의 PB부문 상품개발팀은 다른 경쟁 유통 회사의 2~3배인 30여 명에 달한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재료비를 줄이지 않고 화학조미료도 첨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경쟁사보다 훨씬 비싼 이 상점의 두부와 햄버거가 잘 팔리는 이유도 주부들 사이에 “세이조 이시이가 아니면 이런 맛을 못 낸다”는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세이조 이시이의 오쿠보 쓰네오 사장은 “우리도 가끔씩 가격 할인 행사를 하지만 할인 폭은 5~10% 정도”라며 “무조건적인 가격 인하 같은 안이한 방식으로는 절대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갑자기 물건 값을 깎으면 소비자들이 오히려 “재료가 더 안 좋아졌나?”, “조미료를 넣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는 곧 고객 이탈로 이어진다는 게 오쿠보 사장의 설명이다.

1956년 도쿄에서 창업한 세탁 회사 ‘기쿠야(喜久屋)’도 양복 한 벌의 세탁 요금이 1800엔(약 2만2500원)으로, 1000엔 안팎인 다른 세탁소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사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서비스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내 150개 점포를 갖고 있는 기쿠야가 내세우는 서비스는 2004년부터 시작한 ‘e클로짓’과 ‘문라이트(Moonlight)’다. e클로짓은 수납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고객들을 위해 기쿠야가 자사의 대형 창고를 무료로 개방해 고객들이 맡긴 세탁물들을 장기간 보관해 주는 서비스다.

손님들이 인터넷으로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직원들이 직접 방문해 세탁물을 수거해 가고 드라이클리닝을 마친 뒤 세탁물을 보호하기 위해 섭씨 영상 20도 이하, 습도 40~60%로 유지되는 전용 창고에 보관해 준다.

또 문라이트는 퇴근 시간이 늦은 맞벌이 부부 가정을 위해 밤 11시까지 세탁물을 수거·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기쿠야 측은 “종전엔 1∼3월과 7∼8월엔 일감이 적어 월별 수익 차가 심했었는데 이 서비스들을 시작한 뒤부터 1년 내내 가동률이 100%”라고 전했다. 불황에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기업들이 되새겨 봐야 할 사례들이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