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751호 (2010년 04월 26일)

바람 잘 날 없는 지구촌…문제는 ‘경제’

기사입력 2010.04.20 오후 03:41

오는 5월 6일 영국에서는 하원의원 650명을 뽑는 총선이 실시된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이끄는 13년 집권의 노동당에 맞서 44세의 젊은 정치인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 공격이 만만치 않다.

쟁점은 경제다. 경제 살리기에 어느 당이 나을까, 이 문제를 놓고 성난 민심은 한 표 한 표로 실력을 행사하게 된다.

2009년 4분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0.4%, 유럽 선진국 중 최하위다. 자연히 실업률도 높다. 7%대 후반을 오가며 금융 위기 이전의 5%대로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서 집권 노동당은 부양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하고, 정권 탈환을 노리는 보수당은 재정 적자를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타던 말이 좋을지,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으려 할지 권력 싸움의 결론은 유권자들이 내리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는 양당 당수들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공개 토론에도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선거 문화이지만 영국에선 선거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권력 쟁탈의 과정을 일반 유권자들이 공정하게 지켜보게 하고 차분한 선택을 유도하자는 취지라는 것은 물론이다.일련의 선거 과정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표용지, 유권자의 손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TV 공개 토론이나 공약, 양쪽의 치열한 논쟁, 치열한 득표 경쟁 모두 늘 보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진화된 방식이 권력 다툼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다수의 희생도 있었고, 대중의 노력도 컸다. 다만 이런 식의 권력 경쟁과 그 결과에 따른 권력 이양은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제 분명한 정치 문화가 됐고, 사회적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영국 같지는 않다.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키르기스스탄과 태국의 정국(政局)만 봐도 딴판이다.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대규모 유혈 반정부 시위로 어느 날 정부가 전복됐다. 태국에서도 한 달 이상 붉은 셔츠의 시위대가 거리를 누비며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권력 쟁취 방식은 이렇듯 서로 완전히 다르다.

태국, 관광산업에 막대한 타격

아시아의 스위스라고도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 키르기스스탄에서 벌어진 정부 전복도 출발점과 배경은 영국과 비슷하다. 바로 경제문제다.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개혁 실패에다 경제난이 겹쳤다. 당연히 민심은 돌아섰고 성난 반정부 시위대는 선거 대신에 직접 싸움을 택했다.

도시와 농촌 간 빈부 차로 야기된 태국의 시위는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도시와 농촌 간 빈부 차로 야기된 태국의 시위는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2005년 ‘튤립 혁명’이라고 불리는 무혈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바키예프는 전임 정권의 부패와 선거부정을 비판하며 권력을 잡았지만 5년 만에 비슷한 이유로 같은 길을 걷게 됐다. 한때 혁명 동지에게 당해 지방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지구촌의 오지 키르기스스탄만큼은 아니지만 태국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권력의 운용이나 저항하는 방식이 직접적이고 극단적이다. 붉은 셔츠(탁신 지지파)들의 방콕 도심 시위는 한 달을 넘어섰다. 태국 정부는 4월 7일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비웃듯 그 직후에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했고 방송국을 기습했다.

5년째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된 이런 대립과 갈등엔 도시와 농촌 간 격차, 빈부 차로 인한 사회적 대립과 불만이 바닥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해묵은 갈등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났다고나 할까.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관광 대국의 명성에 지장도 초래했고, 관련 사업에 적지 않은 매출 타격을 주고 있지만 시위대는 개의치 않고 있다.

선거와 투표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개념이 분명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격차는 그대로 경제력 격차로 확인된다. 가령 필리핀만 하더라도 한동안 수많은 쿠데타 시도로 군대가 들고 일어난 것이 일상화되다시피 한 나라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경우에는 쿠데타 기도 병력들이 진압돼도 엎드려서 팔굽혀펴기 수준의 벌만 받고 바로 원래 부대로 복귀하는 게 낯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또한 현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곳에선 나름대로 권력을 매개로 한 하나의 문화다. 그래도 아프리카의 일부 분쟁국처럼 권력,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학살까지 벌어지는 야만의 현장에 비하면 인간적이다. 인종 말소만큼은 아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테러와 같은 일이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0-04-22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