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나홀로족 실태

‘고독한 홀로서기’…자기관리 ‘올인’
신림동 고시촌은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꿈을 안고 고시원과 원룸 등을 찾았지만 목표했던 기간 내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사람들은 일부분. 이곳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1인 가구 밀집지역이 됐다.

젊은 나홀로족들의 취업과 결혼은 모두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이처럼 고시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1인 가구 집단은 예비 취업군으로 분류된다.

꿈을 위해 집을 떠나왔거나 저렴한 방값에 임시 거처를 삼은 청년 실업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3~5년 사이 고시 생활을 끝내려고 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인 문화 형성… ‘혼자 사는 것에 익숙’

특히 일정 나이를 넘기게 되면 취업 시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의지와 관계없이 나홀로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경제적인 원조가 끊기면 근근이 ‘알바(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느 한 곳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37세 고시생 박모 씨는 “편의점 알바나 학원 총무, 공사판 일을 하며 반짝 돈을 모은 다음 공부를 하고 돈이 떨어지면 또다시 돈을 버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들은 주로 학원과 집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이웃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지만 각자의 사생활은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7년째 고시 생활을 하고 있는 36세의 권모 씨는 “혼자서 공부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며 “쉴 때는 컴퓨터로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7㎡ 정도의 고시원은 겨우 몸을 뉘일 수 있을 정도의 협소한 공간에, 방음은 거의 되지 않는다. 세탁은 근처 코인세탁소에 맡기고 끼니는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쾌적하고 안락한 집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건강도 고민거리다. 오랜 나홀로 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찾아오고 있는 것. 대부분은 운동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한다. 고시촌에는 삼삼오오 모인 축구 동호회가 수십 개 결성돼 주말마다 축구 대항전을 벌이기도 한다.

고시촌 이외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 나홀로족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취업난으로 정규직을 얻지 못해 여러 알바를 병행하는 이른바 ‘장기 알바생’들이다. 이들은 주로 지방에서 올라와 원룸 등에서 생활하며 취업의 문을 두드리다가 절박한 심정에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대학 졸업과 함께 사회 속에 진입해야 할 이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또 하나의 1인 가구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이선화(26·가명) 씨는 “오랫동안 혼자 살아 외로움만 더 커지고 있다”며 “빨리 취직도 하고 돈도 모아 결혼하고 싶다”고 한숨지었다.

이렇듯 젊은 나홀로족들의 생활 방식은 경제력과 관계가 깊다. 대부분의 청년 1인 가구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으로 허전한 배를 채우며 고독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한 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서 온전한 형태의 가구를 이루지 못한 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력은 또한 주거지와 직결된다. 1인 가구들이 주거지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만큼 거주하는 위치와 형태에 따라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은 학교 주변에서 고시원과 원룸, 하숙 등으로 간이식 삶을 영위하고 있다. 좁은 방 한 칸에 책상, 침대 하나가 전부다.

반면 여유 있는 공간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는 나홀로족들도 있다. 취업과 창업 등으로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최근엔 능력 있는 싱글 남녀, 일명 골드미스, 골드미스터가 새롭게 대두되면서 1인 가구를 구성하는 젊은 세력으로 떠올랐다.

서울 선릉에서 시행사를 경영하는 박정진(35) 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홀로족이다. 부양가족이 없는 데다 회사에서는 최고경영자(CEO)로 일하기 때문이다. 가장이라면 가족에게 투자해야 할 여가 시간을 그는 대부분 취미 생활에 할애한다. 매일 골프 연습장을 찾고 종종 수상스키를 즐긴다. 박정진 씨는 “일을 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느라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취업 문제’ 정부가 나서야

박 씨와 같은 골스미스, 골드미스터들은 결혼을 ‘선택’으로 여기며 젊은 나홀로족을 자처한다. 이들은 부양가족이 없기 때문에 상당수의 돈과 시간을 ‘자기 관리’에 쏟는다. 값비싼 운동, 취미 생활도 기꺼이 즐기는 편이다.
‘고독한 홀로서기’…자기관리 ‘올인’
구매력을 무기로 싱글 시장을 돌파하며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해 가기도 한다. 자기 관리와 관계된 뷰티·여행·쇼핑 등 관련 업종도 이들을 겨냥해 호황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피할 수는 없는 법. 대다수는 ‘대체 가족’을 선택하며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애완견을 기르거나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동호회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낸다. 이들은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의지할 가족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며 유목민 생활을 지속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거주지는 안정된 형태를 보인다. 직장 위치에 따라 ‘강남·논현·역삼·마포’ 등에 오피스텔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 마포 공덕역 일대는 대표적인 오피스텔 밀집 지역으로 전세 7000만~8000만 원, 월세 60만~70만 원 정도의 33~46㎡(구 10~14평형)가 대다수를 이룬다. 마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체의 70~80%는 20~30대 회사원들”이라며 “66㎡(구 20평) 이하 작은 평수는 늘 부족한 상태이고 최근 금리가 낮아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수요자들은 원룸으로 퍼져 이 일대는 1인 가구의 메카를 형성해 가고 있다. 오피스텔에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생활에 필요한 가전기기가 내장돼 있어 혼자 살아도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해체된 가족 또한 1인 가구를 구성하는 주요 집단이다. 일명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이에 해당한다. ‘퓨싱(퓨어 싱글)’, ‘원싱(한 번 돌아온 싱글)’, ‘투싱(두 번 돌아온 싱글)’ 등 좀 더 세분화된 표현도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혼 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400건(3.7%) 늘었다. 1970년 1만1615건에서 2008년엔 11만6535건으로 10.03배 증가했다. 갈수록 우리 사회에 이혼이 많아지면서 기존 청년 세대 이외에도 이혼 남녀들이 나홀로족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혼이란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혼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이혼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며 다시 찾아온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상에는 돌싱들이 이용하는 포털 등 각종 커뮤니티가 활발하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소개팅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돌싱 포털 관계자는 “최근 들어 회원 수도 많아졌고 예전에 비해 프로필과 사진을 공개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와 TV에서도 이혼 남녀들에 대한 드라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회의 비주류에서 주류로의 편입을 꿈꾸는 돌싱들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가고 있다.
하지만 1인 가구의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나홀로족의 삶의 질이 경제력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하루 빨리 안정된 수입원을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취업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로 지적된다. 또한 1인 가구 급증에 따른 주택 공급 정책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상담 프로그램과 문화적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책과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