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751호 (2010년 04월 26일)

구성원 ‘부정’…개인적 자아 ‘충실’

기사입력 2010.04.20 오후 03:41

“너는 왜 혼자 다니니?”, “혼자 다니는 게 이상해요?” 혼자 커피숍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트북으로 일하거나 커피 한잔과 함께 책을 보는 사람들.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들을 ‘나홀로족’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동행 없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과 같이 예전 같으면 ‘궁상맞다’는 소리를 듣기에 딱 좋을 법한 행동을 당당히(?) 한다. 사회적 고립 상황처럼 보이는 삶의 방식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나 생활문화, 그리고 개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나홀로족을 규정하는 중요 기준은 독립된 주거 공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가 13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전체 가구 중에서 약 20.1%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나홀로족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 점차 팽배한 ‘개인주의’도 분명 나홀로족 증가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홀로족의 삶의 방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도 부정적인 평가에서 막연한 인정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우려도 있다. 고립돼 사는 사람들은 성격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도 작용한다. 심리적 고립이 우울증이나 자살 또는 범죄를 야기하지 않을까 염려도 한다.

나홀로족의 등장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가족의 붕괴, 개인주의의 팽배,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나홀로족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단지 이들의 삶의 특성을 반영할 뿐이다. 이런 시각은 집단적 연고가 아닌 개인적 취향에 따른 삶을 사는 인간을 비적응적인 사람으로 보려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편견을 다시 확인해 준다.

“당신은 누구예요?”라고 질문할 때 “나는 잘 웃겨요”, “저는 조금 답답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죠”, 아니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에요”라는 응답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는 조금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심리적인 나홀로족이다.

나홀로족은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개인적 자아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나홀로족은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개인적 자아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어떤 집단에 소속시키지 않는다. 자신을 누구라고 이야기할 때 스스로를 특정 조직의 구성원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어느 집안, 학교, 또는 지역의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개인적 자아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개인주의란 바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멋진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나홀로족은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주의적 규범 vs 개인주의적 자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집단적 자아를 가졌다고 규정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유교화된 나라로 자처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인들은 강렬한 개성을 주장하면서 거기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 점에서 특히 일본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1999년께 한 미국 학자가 한국인의 심리적 정체성을 진단한 내용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삶의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강한 집단적 자아와 강렬한 개성은 특정하게 양식화된 심리적 장애를 야기한다. 이런 장애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사회적으로 ‘좌파-우파’, ‘있는자-없는자’, ‘특권층-서민’, 그리고 ‘우리-그들’로 구분된다.

나홀로족 자신들이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자아를 강조하는 상황 속에서 개인적 자아를 주장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다. 집단주의적 규범과 개인주의적 자아가 충돌하는 순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때로 개인주의적이면서 때로 집단주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자신을 규정하거나 행동하는 방식에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이중적인 틀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학연·혈연 또는 조직의 틀 등 집단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나 안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우리’라고 표현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홀로족의 심리와 특성에 대한 탐색은 이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집단성에서 벗어난 다른 삶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사회생활은 보통 학교나 회사와 같은 조직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또 개인은 자신을 조직과 연계된 ‘집단적 자아’로 표현한다. 자연스럽다.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가진 ‘개인적인 자아’보다 보통 더 분명하다. 그렇기에, 개인의 자아를 노출하는 것을 마치 죽음처럼 경계한다. 이 사회에서 살려면 학교나 회사와 같은 조직의 집단적 성향을 마치 자신인 듯 수용해야 했다. 자신의 개인의 성향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조차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개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금물이다.

단지, 회사의 회식 자리와 같은 곳에서 누구나 기대하는 노래나 장기 자랑 정도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만 허용될 뿐이다. ‘다르면 악이요, 튀면 죽음’이라는 말로 작동하는 압력이다.

‘그래야 한다’로부터 자유

집단주의적 규범 속에서 현실적으로 다른 것은 기껏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나 한 달 수입, 타고 다니는 자동차 배기량 정도로밖에 찾기 힘들다. 이런 경우 각자의 삶은 더욱 답답해진다.

천박한 자본주의적 심성의 발로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다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의 차이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개인은 화병, 우울증, 무차별 폭력 등의 심리적 장애를 겪는다. 집단적 자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적 자아를 내세우는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심리적 비용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일 만큼이나 여가 활동도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는데 관심이 있다. 갈등이 적은 환경을 좋아한다. 자부심이 있다. 조직의 성취보다는 개인적 성취를 중시한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규율보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유머 감각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적극적이다. 빠른 의사결정을 중요시한다.”

조직에서 생활하는 나홀로족들의 심리적 특성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편안함’과 ‘시간 절약’을 선호한다. ‘자기계발’과 ‘여가선용’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개인주의의 삶의 방식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아끼고 자신에 대해 투자한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고 쏟는데 집중한다. 이런 그들은 삶은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과 고용 불안정 등의 원인으로 양산된 생존형 나홀로족과 대비되기도 한다.

나홀로족의 심리적 코드를 파악할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래야 한다’는 것도 다양한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아이든, 개인적 자아이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뤄진다는 생각들이 최소한 수용될 수 있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모순을 경험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각자 그저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알 수 있다. 나홀로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보이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된다면, 내가 확실하게 믿고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미래의 삶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구성원 ‘부정’…개인적 자아 ‘충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1962년생. 81년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92년 동대 대학원 심리학 석사, 미국 하버드 대 심리학 석사, 박사 2000년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소장. 98년 연세대 심리학과 발달심리학 교수(현).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0-04-22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