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51호 (2010년 04월 26일)

“절대 데모 같은 것에 휩쓸리지 마라”

기사입력 2010.04.20 오후 03:41

“절대 데모 같은 것에 휩쓸리지 마라”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데모한 사실을 모르셨다. 말씀을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아마 아버지도 내가 데모한 것을 아셨으면 속으로는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셨을 게다.

아버지! 이 단어를 머릿속에 한번 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버지, 내게 잔잔한 기억만 남겨주신 아버지이기에 더욱 그러한지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자주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힘들 때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아버지다. 아버지에게는 대단히 죄송하고 불효막심한 일이지만 그것도 주로 아버지에게 원망이 생길 때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그야말로 빈농 중의 빈농이셨다. 가난을 대물림 받아 농사지을 땅이라고는 건넛마을 앞에 있는 다섯 마지기 정도의 밭뙈기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참으로 근면 성실하신 분이셨다. 들로, 산으로 밤낮없이 몸을 움직이며 일하셨다.

없는 살림에 8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어쩔 수 없기도 하셨겠지만 원래 타고난 성품이 큰 욕심 없이 일한 만큼 얻기를 좋아하셨고 세상의 순리도 거스르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난을 그런 방법으로밖에 헤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근면 성실은 우리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나 보다.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지도 않은 나이에 이미 하나의 작은 일꾼이었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일꾼이자 학생이었다.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근면 성실한 아버지 밑에서 저절로 터득된 것인지 나는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그래서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그러는 중에 의지력도 키워져 그 의지력은 이후에 내가 성장해 가면서 부닥친 여러 난관이나 중요한 고비를 뚫고 나가는데 큰 힘이 됐다.

아버지는 근면 성실 외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행복과 만인 평화의 철학도 심어주셨다. 아버지는 늘 ‘바르게 살아야 한다’거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욕심 부리지 말고 적게 먹고 적게 싸라’는 등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말씀은 내가 돈이나 권력, 명예보다 가치 있는 삶을 중시하게 했고 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만인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고를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꿈꾸며 살아온 것이나 인권 변호사로서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하게 된 것도 다 그런 아버지의 말씀에서 연유된 무욕(無慾)과 이타적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버지는 비록 남들의 부모처럼 학식도, 권력도, 명예도 누리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특별히 재산도 남겨주지 못한 가난한 시골 촌부였지만 아버지가 내게 주신 것은 다른 어느 위인의 유산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삶의 지혜였다고 자랑하고 싶다.

아버지는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내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금오공고에 들어가고 졸업 후에는 하사관(부사관)으로 5년간이나 군복무를 하게 되자 내내 마음 아파하셨다. 당신이 무능해 고생만 시키게 됐다는 자책감에서였다. 제대 후 공부해 고려대 법대에 4년간 학비를 면제받는 특별 장학생으로 들어가자 얼마나 좋으셨던지 밤새워 술을 드시고 대취하셨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는 나를 앉혀 놓고 딱 한 말씀 하셨다. “고려대는 데모 잘하는 학교라는데 너는 절대 데모 같은 것에 휩쓸리지 마라.”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의 곧은 성격을 잘 아시고 하신 말씀이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군대 갔다 온 놈이 무슨 데몹니까? 애들처럼 데모를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입학 후 나는 전 대학가를 격렬하게 휩쓸고 있던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교정과 거리의 난무하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군사정권의 폭압과 싸우는 나보다 나이 적은 학생들의 대열에 대동단결을 외치며 동참하고 말았다. 데모하지 말라던 아버지에게는 죄짓는 것이었지만 민주화의 대의에서 이탈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여덟 학기 중 두 학기는 평균 B학점을 받지 못해 등록금을 내야 했고 몰래 등록금을 대준 큰 형님에게 미안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데모한 사실을 모르셨다. 말씀을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아마 아버지도 내가 데모한 것을 아셨으면 속으로는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셨을 게다.

“절대 데모 같은 것에 휩쓸리지 마라”



장철우 인권 변호사

1958년생.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록도한센인권변호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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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23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