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51호 (2010년 04월 26일)

셔츠, 슈트와 넥타이 사이의 미학

기사입력 2010.04.20 오후 03:41

봄이면 뭐하나. 계절을 타지 않는 사무실 환경에 무채색 슈트 차림을 하고 타이로 목을 조른 채 컴퓨터나 마주하고 있으니 모니터 속 여자 연예인들의 짧은 옷차림이나 화사하게 차려 입은 기상 캐스터의 꽃이 피었다는 얄미운 발언을 통해서나 겨우 봄인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봄 기분을 내기 위해 큰맘 먹고 장만한 올해 유행이라는 플라워 프린트의 티셔츠는 좀처럼 입을 기회가 없어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한 밤에 브라운관 불빛이나 쬐며 맥주나 묻히고 있으니 이쯤이면 바늘구멍을 뚫고 힘들게 들어온 회사 생활이 서러워질 법도 하다. 아무리 빡빡한 회사 생활이라도 자신을 위해, 또 업무를 위해 봄 기분을 좀 내줘야 한다.

매일 입어야 하는 슈트 차림 속에서 어떻게 봄 기분을 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에겐 셔츠가 있다. 셔츠로 멋 내는 것은 굉장히 세련된 방법의 멋내기이지만 내공이 쌓이기 전까지는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셔츠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목 칼라(collar)나 커프링크스(cufflinks)의 형태도 여러 가지에 TPO(Time, Place & Occasion:때와 장소, 경우)에 맞춰 때마다 달리 입어줘야 하니 아직도 셔츠를 줄무늬 셔츠와 단색 셔츠로만 구분하는 사람들에겐 다림질을 해야 하는 골치 아프고 귀찮은 물건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듯이 이 모든 것들 앞에 어떻게 셔츠로 멋을 내야 할지 고민하지 말고 반드시 알아둬야 할 셔츠 착장의 기본이라도 짚고 넘어가자.

칼라·커프링크스 모양 따라 분위기 달라져

비슷한 라인의 셔츠라고 할지라도 목 칼라나 커프링크스의 형태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버튼다운 목 칼라는 목 칼라 끝에 단추 구멍이 있는 형태로 캐주얼한 자리에 적합하다. 슈트에는 착용하지 않고 목 칼라의 단추는 항상 잠그는 것이 원칙이지만 위트 있게 옷 입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배리에이션(변화)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스트레이트 포인트 목 칼라는 클래식한 타입의 목 칼라로 누구에게나 어떤 슈트에나 다 잘 어울려 편하게 연출할 수 있는 민주적인 목 칼라다. 투 버튼 스프레드 목 칼라의 경우 단추가 두 개 달려 있고 목 밴드가 높고 넓어 드레시한 연출이 가능해 타이를 매지 않아도 멋스럽다.

그 이름도 유명한 윈저 목 칼라는 영국의 귀족 에드워드 8세 윈저공이 자신이 개발한 큰 매듭의 윈저 노트 넥타이에 어울리게 고안한 것으로 깃의 각이 벌어져 있고 풀을 먹여 뻣뻣해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잘 어울린다. 가장 포멀한 타입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이 위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윈저 목 칼라에 변화를 주는 것은 자제하라고 권하고 싶다.

커프링크스는 그 형태나 단추의 개수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원 버튼 배럴 커프링크스는 하나의 단추가 소매의 가운데 위치해 심플하고 기능적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는 형태다.

프렌치 커프링크스는 드레시하면서 포멀한 스타일의 이중 커프링크스로 윈저 목 칼라에 어울리며 턴백 스타일의 커프링크스는 멋스러우면서도 활동적인 느낌도 줄 수 있다. 포인트를 주기 위해 커프링크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석이 박힌 것들은 물론 다양한 형태와 색상의 커프링크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최근에는 금속이 아니라 실크로 만든 매듭 커프링크스로 가벼운 느낌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중 폴스미스의 스트라이프 커프링크스(19만 원대)는 그 특유의 줄무늬 패턴과 색감으로 경쾌함을 더해주는 포인트로 활용하기 제격이다. 커프링크스는 남성이 착용하는 몇 안 되는 보석류 중의 하나다. 남성이 커프링크스를 신중하게 푸는 모습은 여성이 드레스 뒤쪽 지퍼를 내리는 모습만큼이나 섹시하다고 하니 잘 활용하도록 하자.

개성의 포인트는 칼라와 커프스다. 라피규라의 칼라와 커프스 세트.

개성의 포인트는 칼라와 커프스다. 라피규라의 칼라와 커프스 세트.

기본을 익혔다면 이제 셔츠에 봄기운을 불어넣을 색상에 대해 살펴보자. 각종 브랜드들은 봄을 맞아 옐로에서부터 레드·핑크·그린·블루·퍼플까지 다양한 색상의 컬러 셔츠들을 내어 놓고 있으니 원하는 색상의 셔츠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일은 없어졌다.

톤온톤 코디네이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래도 봄이니 과감한 색상 대비로 갖춰 입는 것도 좋겠다. 보테가베네타의 레드 셔츠(가격 미정)는 화사한 색상에 소재도 부드럽고 광택이 있어 칙칙한 직장 착장에 생동감을 불어넣기에 제격이다.

레드나 옐로 및 핑크색 셔츠를 입을 때는 어두운 색의 네이비나 블랙 슈트로 귀여운 느낌을 줄 수 있고 네이비나 퍼플 셔츠에는 베이지나 라이트 그레이 슈트를 매치하면 색상을 더 뚜렷하게 보이게 해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커프링크스와 목 칼라의 색상만 화이트인 클레릭 셔츠의 경우 강렬한 색상보다는 파스텔톤을 선택한다면 굳이 재킷을 입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멋스러운 연출을 할 수 있다.

누구나 흰 셔츠는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봄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집에 들른 여자 친구를 위해서도 화이트 셔츠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남성에게 화이트 셔츠는 흰색 언더웨어 팬티와 같다. 팬티를 하나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듯 화이트 셔츠도 적어도 세 벌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팬티 밑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 같이 화이트 셔츠를 입을 때도 러닝셔츠와 같은 언더웨어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화이트 셔츠는 그 어떤 셔츠보다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이 중요하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슬림한 라인으로 몸에 휘감기는 것으로 유명한 질샌더의 것을 추천한다. 가격이 부담된다면 질샌더와 디자인 작업을 같이한 바 있는 유니클로의 화인클로즈도비셔츠를 주목하자(3만9900원대). 가격은 저렴하지만 소재의 감촉도 좋고 목 칼라나 라인이 날렵하게 살아 있다.

롤러장의 향수를 불러오는 데님 셔츠

데님 셔츠는 유행을 멋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다. TV나 잡지에서는 계몽운동이라도 하듯 데님 룩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으니 데님 셔츠를 선택한다면 유행에 뒤처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2010년 봄여름 시즌의 데님 셔츠는 한결 더 날렵해지고 댄디해졌다. 갭의 데님 셔츠(7만5000원)는 색상이 그레이톤으로 차분하지만 소재나 모양새 면에서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가득해 캐주얼 데이에 입기 좋다. 좀 더 차별화된 데님 셔츠를 즐기고 싶다면 돌체앤가바나가 선보인 데님 셔츠(79만 원대)를 추천한다.

타이트한 착용감에 라인이 슬림하게 잘 빠져 깔끔하게 멋 내기에 훌륭하다. 롤러장을 즐기던 세대들에겐 이전의 향수를, 갓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세대들에겐 새로운 추억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니 올봄 데님셔츠를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셔츠는 슈트를 돋보이게 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슈트를 입어도 안에 좋은 셔츠를 선택하지 못하면 슈트의 멋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슈트의 하이라이트는 넥타이와 셔츠가 드러나는 라펠의 V라인인데 셔츠의 칼라 모양은 물로 셔츠의 바닥인 원단의 디자인과 색상 등 여러 가지가 잘 맞아야 멋을 살릴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브랜드의 슈트를 입어도 태가 잘 나오지 않고 시장 옷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잘 드러나지 않는 셔츠나 이너웨어에 투자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다. 셔츠 단독으로는 메인으로서의 존재감이 부족하지만 잘 고른 슈트 한 장은 전체 옷맵시의 완성도를 높여줘 소피스티케이션(까다로움)이 갖춰질 수 있다.

셔츠로 멋을 낸다고 해서 너무 셔츠에만 과하게 멋을 부리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셔츠로 멋 내기의 포인트는 바로 멋을 낸 듯 안 낸 듯 기본에 충실하며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나타내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셔츠를 입었다고 해서 누구나 오션스 일레븐의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처럼 셔츠를 멋스럽게 소화해 내긴 힘들다.

셔츠 한 장 입는데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걱정하지 마라. 장담하건대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이 모든 것을 즐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셔츠는 직장 남성의 히든카드다. 셔츠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붙여나간다면 회사 가는 길도 즐거워지고 회의 시간에 관심 없는 듯 흘끗흘끗 던지는 여성들의 시선과 부러움 섞인 남성 동료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기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셔츠, 슈트와 넥타이 사이의 미학


필자약력:
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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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23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