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51호 (2010년 04월 26일)

증세 앞두고 곳곳서 ‘사회 동요’ 표면화

기사입력 2010.04.20 오후 03:41

▶ 장면1. 정부의 과세 정책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지난 3월 8일 자신의 소유인 체로키 PA-28 경비행기를 몰고 미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국세청(IRS) 건물에 돌진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 조종사와 건물에 있던 2명이 사망했고 다수가 중경상을 입었다.

조종사인 조지프 앤드루 스택(53) 씨는 인터넷에 게재한 유서에 “빅 브러더 국세청 인간들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주마. 너희가 나의 살점을 떼 갔으니 (너희들도) 이제 잘 자라”고 적어 정부의 과세 정책에 대한 극도의 불만감을 표시했다. 스택 씨는 두 차례 창업했지만 실패하고 실패 원인이 과도한 정부의 과세 행정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장면2. 한 달여 후인 지난 4월 15일. 소득세 마감일(일명 tax day)인 이날 미 전역 주요 도시는 세금과 관련된 상반된 성향의 집회로 떠들썩했다.

보수 성향의 시민 단체인 ‘티파티(tea party)’가 전국 단체화를 선언하고 정부의 증세 움직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그 인근에선 티파티 행위에 반대하는 안티-티파티(anti-tea party)의 집회가 따로 열렸다. 이들 집회 참석자 간에 적지 않은 언쟁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천문학적 재정 적자 어떻게 채우나

미국에선 4월 택스 데이(tax day)를 전후로 세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적 동요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정부의 세금 인상 움직임과 강력한 과세 행정, 또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과 극단적인 선택 등이 예상 가능한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현실화되고 있는 것.

미국은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투입한 후 사상 최대 재정 적자와 부채라는 문제를 떠안게 됐다.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안은 세금을 올리든지,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든지, 아니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지금 세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티파티’에서 ‘내게 세금을 부과하지 말라’는 표지를 들고 있는 참석자.

미국에서는 지금 세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티파티’에서 ‘내게 세금을 부과하지 말라’는 표지를 들고 있는 참석자.

그러나 세 가지 방안 모두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반발과 이에 따른 사회적 동요를 수반하게 된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뒤처리(재정 적자 및 부채 해소)는 더욱 지난(至難)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경제 전문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으로 미국이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세원 발굴과 세율 인상 등의 ‘세금 쥐어짜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미국인 대부분이 세금이 인상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남은 문제는 언제, 어떻게, 누구의 세금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느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초당파 기구인 조세정책센터(TPC)가 지난 1월 발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 정부가 건전한 경제성장과 재정 건전성을 위해 연방정부 재정 적자를 향후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2010년은 10% 수준)으로 낮추려면 앞으로 매년 연평균 5000억 달러 정도의 새로운 세수를 발굴하거나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연방정부가 현재 메디케어 프로그램에 지출하고 있는 예산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TPC는 이를 세금 인상으로 충당하려면 현재 35%인 소득세율 상한선을 48%로 높여야 한다고 추산했다. 만약 연봉 20만9000달러 이상 상위 2개 소득계층에 대해서만 세금을 올린다고 하면 이들에 대한 세율은 각각 33%, 35%에서 72.4%와 76.8%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

TPC는 또 소득세율을 올리는 방법 말고도 세수 기반을 늘리기 위해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을 줄이는 한편 다른 나라들처럼 부가가치세(VAT)같은 소비세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에 따른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처럼 세금을 급격하게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11월엔 중간선거도 앞두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세금 인상이란 카드를 뽑아들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마냥 재정 적자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도 없다. 이미 재정 적자와 부채 문제는 미국 정부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지난 3월 월간 재정수지는 654억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전달 1916억 달러에 비해 적자 폭은 약간 줄었지만 18개월 연속 적자 기조를 이어갔다. 미 의회 예산국은 올 한 해 재정 적자가 1조6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현재 12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연방정부 부채가 계속 불어나 10년 후엔 2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때쯤이면 GDP 대비 부채비율이 100%에 달하게 된다.

과도한 재정 적자 문제는 당장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빚 많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줄어들면 자금 조달 금리(미 국채 금리)가 올라가고 미 국채 수익률과 연동돼 있는 미 모기지 금리도 덩달아 상승하게 된다.

미 경제 전문가들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 방법은 세금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세목을 두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연히 재정지출도 줄여야 하지만 현재 쓰고 있는 돈을 줄이는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뿐더러 크게 표시도 나지 않는다.

TPC는 만약 세금을 올리지 않고 지출 감축으로만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정부의 재정지출을 현재보다 40% 정도 줄여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선 사회보장연금과 의료보험 혜택을 25%까지 줄이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는 것.

“정부 지출 40% 줄여야” 극약 처방도

현실적으로 이렇게 재정지출을 감축한다는 것은 ‘폭동’이나 ‘혁명’을 수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쓰고 있는 돈은 쉽게 줄이기 힘들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연초 의회에 2011 회계연도 예산안을 보낼 때 재정지출 감축안을 함께 발표했지만 그 규모라는 게 앞으로 10년간 1조 달러를 줄이겠다는 정도다.

연방정부 부채 규모가 향후 10년간 9조∼10조 달러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 1조 원 감축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3조∼4조 원씩 뭉텅뭉텅 예산을 줄였으면 싶지만 손을 댈 만한 항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의료·사회보장·교육 등 굵직굵직한 항목들은 여야·시민 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 당연히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다 보니 모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백악관과 민주당이 가장 기대를 거는 부분은 의료보험 개혁이다. 의료보험 대상을 확대하면서 돈은 더 들어가지만 지출 효율화를 통해 지출을 상당히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튼 미국은 재정지출을 동반한 세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이는 시기와 폭의 문제이지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행정부는 증세와 지출 감축안 모두 검토 중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적자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앨런 심슨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어스킨 볼스 전 대통령 비서실장(빌 클린턴 정부)은 지난 4월 12일 CNN에 출연해 “증세는 물론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 등 의료보험 개혁을 포함해 모든 방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적자 해소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중 첫 회의를 열고 연방정부 부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낮추는 정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위원회의 목표는 올해 GDP의 10% 선인 재정 적자를 2015년께 3% 이내로 확 낮추는 것이다.

마틴 설리번 세금 전문 칼럼니스트는 “근본을 바꾸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연방 세금을 평균 8%가량 올리고 지출을 7%가량 줄이는 방안을 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그런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다. 여론도 수렴하고 정치권에서 기반 작업을 해야 한다. 이미 소득세율 복귀 문제는 언론을 통해 많이 거론됐다. 조지 부시 전 행정부가 도입했던 ‘부자 10년 감세제도’를 연내 폐지하는 방안이다.

부시 행정부는 연간 20만9000달러 이상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각각 36%에서 33%로, 25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39.6%에서 35%로 낮췄다. 오바마 행정부는 연내 의회 동의를 얻어 이를 원대 복귀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채플힐(미 노스캐롤라이나 주)=박수진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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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4-23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