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756호 (2010년 06월 02일)

“가발은 머리에 아름다움 입히는 패션”

기사입력 2010.05.25 오후 02:11

“가발은 머리에 아름다움 입히는 패션”
평범한 전업주부에서 연매출 100억대의 성공 최고경영자(CEO)로 화려하게 변신한 이가 있다. 남다른 아이디어와 손재주를 살려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여성 창업계의 롤모델이 된 씨크릿우먼 김영휴 대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패션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았고, 남과 똑같은 건 절대로 싫었다. 결혼하고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 때도 아이들의 옷이나 자신의 옷, 커튼이나 식탁보와 같은 집안의 소소한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리폼하지 않은 게 없었다. 처음 가발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리폼 습관에서 비롯됐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유난히 숱이 많이 빠진 머리가 속상해 가발을 구입하게 된 것이 단초가 됐다. 풍성한 머리숱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당시 구입했던 가발은 너무 무겁고 답답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결국 언제나 리폼 하던 습관대로 가발을 자신이 원하는 크기대로 잘라 손쉽게 머리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한 다음 쓰고 다녔다.

아홉 번 부딪친 벽에 열 번을 도전하다

미용실이나 고속도로 휴게실, 백화점 화장실에서 우연히 그녀가 가발을 손질하고 손쉽게 착용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 가발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여심을 제대로 공략한다면 가발 사업은 분명 성공하리라고 확신했죠.”

상품으로서의 실용성을 위해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좀더 손쉬운, 좀더 간편한 가발 만들기도 계속했다. 하지만 사업화하기까지에는 너무 많은 벽들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었다.

우선, 그녀 자신이 사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전업주부라는 사실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사업자등록증이 뭔지,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창업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두드렸던 여성창업지원센터에서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부랴부랴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었죠. 게다가 그때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던지라 가족들의 반대도 거셌죠.” 특히 남편의 반대는 그녀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하지만 전 안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갖고 있었고, 또 지금도 갖고 있지만 그것에 겁먹고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결국 그녀는 자신의 고집대로 일을 밀고 나갔다.

가내수공업 식으로 혼자서 집 거실에서 제품을 만들고 상품화하는 일을 계속했다. 가발 아이템에 대한 확신으로 창업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라면 어디든 문을 두드렸고,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똑 떨어졌죠. 이유요? 아직도 몰라요. 왜 떨어졌지?(웃음)” 하지만 그녀는 수상 결과에 낙담하지 않고 주최 측을 직접 찾아갔다. 자신이 직접 만든 부분 가발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손쉽게 머리에 부착하고 떼어내는 모습들을 보이며 담당자들에게 사업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이야기했다.

“결국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죠. 그리고 그 돈으로 본격적으로 상품을 만들고 팔러 다니기 시작했죠.” 2001년, ‘씨크릿우먼’이라는 이름으로 가발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이라고는 하지만 사장도, 상품 기획자도, 상품 제작자도, 마케터도 오직 그녀 혼자뿐인 시절이었다.

“당시는 한창 인터넷 붐이 일 때여서 인터넷을 통해 가발을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결과가 그리 썩 좋지 않더라고요.”

가발, 그중에서도 부분 가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터넷은 그다지 큰 발판이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방향을 급선회했다. 애초에 그녀가 가발을 착용하는 모습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것에 착안해 직접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을 통한 입소문 효과를 노렸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했더니 역시 박람회밖에 없더라고요.”

미용이나 헤어 관련 박람회에 참가할 때마다 씨크릿우먼의 부스에는 유난히 많은 구름 관중들이 몰려들곤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정수리 부분에 부분 가발을 넣어 머리를 부풀리는 이른바 키 높이 가발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이템이었거든요.”

쓴 듯 안 쓴 듯 티 나지 않고 가벼운 가발, 그러면서도 방금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 받고 나온 듯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하게 도와주는 간편한 가발에 쏟아지는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회사를 키우고 직원들을 뽑아 본격적인 사업체로서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2003년부터는 창업 초기부터 꿈꿔왔던 ‘백화점 입점’에의 꿈도 이뤘다.

“사실 백화점 입점은 씨크릿우먼에 그 상징성이 커요. 단순히 사업 수익성 면에서가 아니라 가발이 단순한 기능성 제품이 아니라 패션 소품, 패션 아이템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백화점 입점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제였죠.”

하지만 백화점으로의 입점은 계속되는 “노(NO)”, “노(NO)”, “노(NO)”의 연속이었다.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가발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백화점의 문을 두드렸다. 그동안에도 보다 더 가볍고, 편리한 제품 개발을 위한 노력도 쉬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들 덕분에 2003년 ‘롯데백화점 대전점’을 시작으로 하나씩 하나씩 점점 더 많은 메이저 백화점들에 입점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에서의 히트를 바탕으로 2003년 말에는 업계 최초로 우리홈쇼핑·LG홈쇼핑 등의 홈쇼핑 방송을 통해서도 가발을 판매, 히트시키며 그야말로 승승장구를 계속해 나갔다.

가발은 헤어 웨어라는 이름의 패션이다

“가발은 머리에 아름다움 입히는 패션”
그 후 씨크릿우먼은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2005년에 매출 10억 원을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9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의 목표는 매출 200억 원대다. 내로라하는 유명 백화점 30여 곳에 씨크릿우먼의 매장이 입점해 있다.

10년 전 특허가 뭔지, 사업자등록증이 뭔지도 몰랐던 전업주부는 특허 등록만 수십여 개를 가진 가발 전문가이자 가발 브랜드의 성공 신화를 이룩한 여성 CEO로 우뚝 섰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단순히 단점을 가려주고 숨기는 가발이 아니라 멋과 아름다움을 위한 패션 아이템, 즉 헤어 웨어로서의 가발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 1963년생. 조선대 철학과 졸업. 조선대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2001년 씨크릿우먼 창업. 2002년 대한민국특허기술대전 동상 수상. 2006년 한국여성발명협회 우수발명제품 장려상 수상. 산업자원부 장관상 수상. 씨크릿우먼 대표(현).


〈 회사 개요〉

회사 이름 : 씨크릿우먼
설립 연도 : 2001년 직원 수: 70명
주력 제품 : 헤어웨어(부분가발)
매출액 : 90억 원(2009년 기준)
주소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915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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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6-03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