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756호 (2010년 06월 02일)

‘달러 안 나는’ 대한민국의 외환 안보는

기사입력 2010.05.25 오후 02:11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얘기할 때 흔히 ‘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직원들은 이와 비슷하게 ‘대한민국은 달러 하나도 안 나는 나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경제활동에 꼭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만들 수 없고 모두 외국에서 구해 와야 한다는 점에서 달러가 석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외환 관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은 ‘대한민국은 달러 하나도 안 나는 나라’라는 말을 되새겨보게 한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7.8%로 7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4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보다 40만1000명이나 늘어나는 등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지만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좀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좀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좀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4월 말까지만 해도 1100원을 깨고 1000원대로 내려갈 듯했던 원·달러 환율은 5월 들어서는 하루 만에 20~30원씩 오르기도 하면서 1100원대 후반으로 급등했고 주식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순매수 행진을 계속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은 5월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 수천억 원 규모의 순매도로 돌아섰다.

‘달러 하나도 안 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직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만큼 셀코리아(sell Korea)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가 아무리 건실해도 이와 무관하게 국제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외국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 때문에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제도를 개선하고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억제할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주목되는 것은 자본 유·출입 규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급격한 자본 유·출입 통제 장치 필요”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자본 유·출입을 통제할 경우 외국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외화 유동성 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해 왔다.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경제성장률 등 경제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유지하면 금융시장도 균형을 찾아간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5월 18일 자본시장연구원이 주최한 국제 세미나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응할 수 있는 개별 국가의 시스템 보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며 “거시 감독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에 적절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을 통해 외화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규제를 국내 은행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진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가의 외환시장 불안을 막을 수 있는 국제적인 협력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혔다.

국제적인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월 한 보고서에서 국제 자본거래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자본시장 자유화를 주장하던 IMF가 자본거래를 규제한 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라며 “자본주의의 철학과 원칙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간 자본거래 자유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규제에 반대해 왔던 정부의 논거가 약해진 것이다.

정부는 우선 국제 공조의 틀 안에서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주요 20개국(G20)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다자간 통화 스와프 등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국제 공조와 별도로 은행들의 선물환 거래를 규제하는 등 추가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시장 불안으로 달러 안 나는 나라의 ‘외환 안보’가 정부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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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6-03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