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topic 제 756호 (2010년 06월 02일)

신용 평가사 무소불위 권력 개혁되나

기사입력 2010.05.25 오후 02:11

무디스는 설립 100년이 넘는 회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역사도 100년에 가깝다. 합병으로 덩치를 키워 온 피치도 업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 3대 국제 신용 평가사는 세계를 무대로 업무가 진행되는 대기업들과 금융회사들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이고 때로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는 곳이다.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위기에 처한 기업일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금융회사일수록 더 무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 경제의 등급까지 이들 손에 좌우되다 보니 각국 정부도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13년 전 외환위기 때 한국이 그랬고 지금 그리스와 포르투갈, 심지어 유럽의 경제 대국 스페인까지 이들의 눈치를 살펴야만 할 지경이 됐다. 한국인들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들이 휘두른 국가 신용의 조정에 따라 등급이 내려가면서 온 나라가 울었고, 뼈를 깎는 고통 끝에 등급을 올린다는 방침에 살았다며 웃었다.

이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누가 이들에게 이런 막강 권한을 부여했는가. 이들은 과연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신용 등급을 매기고 있는가. 이들은 순수하게 기업 경영과 금융회사의 비전만 보고 등급을 매기는가.

신용 평가사들은 대기업들에 때로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다.

신용 평가사들은 대기업들에 때로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다.

국가 경제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나옴직하고, 흔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그러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간 제대로 여론으로 형성된다거나 국제금융계에서 이렇다 할 만큼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이들의 횡포를 문제 삼는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 3대 신용 평가사들이 독점적으로 누리는 시장구조 때문이었다.

또 이들이 매겨주는 신용 등급표가 있어야 필요한 자금 조달로 순조로운 경영을 할 수 있는 금융·산업계의 현실 때문이었다. 무디스·S&P·피치의 시장점유율은 미국에서만 95%,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유로존에서도 9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횡포와 과점 시장을 지적한다는 것은 자금 조달을 포기하거나 최소한 더 많은 대가를 단단히 각오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항은커녕 이들 주변에 사무실을 내고 현지법인이란 이름으로 적절하게 대응해 현실적으로 ‘좋은 등급’을 받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통제 수단 마련’ 목소리 높아져

그러던 것이 결국 문제로 터졌다. 그리스발 재정 위기가 유로존으로 퍼져나가면서 유럽 각국이 먼저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 그리스 문제 해결을 위한 막바지 구제 협상이 한창 진행될 무렵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신용 평가사들이 유로존 내 긴장을 과장하고 있고, 심지어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며 정면공격 하고 나섰다.

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러 차례 나왔다. 마지막 그리스 대책회의가 열린 5월 7일 EU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주요 이슈로 논의되면서 신용 평가사에 대한 압력은 최고조에 달하는 듯했다. 대다수 국가 대표들의 지적은 곧 신용 평가사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다른 금융시장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용 평가사들도 지금처럼 특별히 힘들고 민감한 시기에는 책임 있고 엄밀하게 행동하기 바란다.” 구제금융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S&P가 그리스의 신용 등급을 전격 하향 조정한 것에 대해 EU 집행위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이런 기류에 맞춰 미국이 먼저 행동에 나섰다. 미국 상원이 신용 평가사에 대한 규제·감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찬성 의결했다. 법안의 찬성표에는 오바마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 공화당 의원들까지 다수 가세했다.

이 법안은 오바마 정부가 금융 위기의 진원지 격인 월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금융감독 개혁 법안의 하나로 채택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 하원의 별도 금융감독 개혁 법안과 절충돼 상·하원 전체 안으로 최종 처리되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던 신용 평가사들의 앞길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와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까지 신용 평가사 규제 감독에 함께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신용 평가사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때문도 있지만 신용 평가사들과 고객의 관계 또한 쉽게 손대기 어려운 구조다. 신용 평가사들은 영향력에 비해 임금이 많지 않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횡포라지만 그 이면에는 신용 평가사 쪽에서 고객 쪽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게끔 만드는 요인도 있다는 얘기다.

허원순 한국경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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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6-03 0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