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아이돌 스타 활약상

축구 경기에만 ‘멀티플레이어’가 있는 건 아니다. 경기 전술의 발전 덕에 멀티플레이어 개념이 생겼듯이 연예 산업도 한 가지만 잘해서는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 변화를 주도하는 건 아이돌 스타들이다. 오랜 기간 합숙으로 단련된 재능과 끼, 여기에 장르를 불문하는 영역 파괴 바람은 넘쳐나는 아이돌 스타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 주었다.

최근의 아이돌 스타들은 대부분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몇 년간의 혹독한 조련 끝에 나온 이들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H.O.T., 젝스키스, 핑클, SES 등을 1세대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멤버들도 있지만 이들 중에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톱스타도 있다.

본업인 가수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효리와 은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두 명은 아이돌 스타의 역사 안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로 꼽힌다. 이효리는 여전히 섹시함을 강조한 댄스 가수로 인정받고 있고 은지원도 음악적 색깔을 ‘힙합’으로 바꾸긴 했지만 본업을 버리지 않으면서 예능 스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혹독한 조련’ 거쳐 데뷔
[아이돌 스타, 연예 산업 판 바꾸다] 재능·끼 ‘철철’…멀티플레이어 ‘우뚝’
1세대 아이돌 스타들은 오랜 연륜(?)으로 아이돌 스타의 향후 진로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생명이 짧은 댄스 가수의 특성상 또 다른 예능 분야를 찾아야 하는 건 아이돌 스타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들 중 가장 성공적으로 타 분야에 안착한 이들은 성유리·옥주현·유진(김유진)·슈(유수영)·바다(최성희) 등이다. 특히 성유리·옥주현·유진의 활약이 눈에 띈다.

성유리는 2002년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데뷔했다. 초기에는 으레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며 곤욕을 치렀지만 이후 출연 횟수를 늘려가며 최근에는 연기자로 자리 잡았다는 평이다.

옥주현은 그룹 활동 시절부터 장점이었던 가창력을 살려 뮤지컬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시카고’, ‘몬테크리스토’ 등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티켓 파워를 지닌 뮤지컬 스타로 자리 잡았다.

유진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연기의 문을 두드려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최근 종영한 주말 드라마 ‘인연 만들기’를 통해 배우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슈는 일본에서 먼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2005년부터 국내 무대에 선 특이한 경우다. 얼마 전에는 농구선수 임효성과 결혼해 화제가 됐다. 바다도 2003년 뮤지컬에 데뷔한 후로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가수와 배우 겸업을 이어가고 있다.

1세대 아이돌 스타에 이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는 단연 ‘비(정지훈)’를 꼽을 수 있다. 2002년 데뷔한 비는 2003년 ‘상두야 학교 가자’를 시작으로 ‘풀하우스’, ‘이 죽일 놈의 사랑’ 등으로 배우 겸업에도 성공했다.

2006년에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아시아권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한 비는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2008)’를 통해 할리우드에 데뷔했고 ‘닌자 어쌔신(2009)’으로 ‘원톱’ 주연과 흥행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오는 10월에는 드라마 ‘도망자(가제)’ 출연이 예정돼 있다. 과거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드라마 출연이 1회성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지훈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아이돌 스타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됐다.

이미 대중문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의 영향력이 비교적 진입이 어렵다는 연기 분야에도 미치기 시작한 것. 특히 연기력 논란을 불러왔던 과거 사례와 달리 넘치는 끼로 전업 배우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요즘 아이돌 스타들의 특징이다.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SS501’의 김현중이 대표적인 케이스. 김현중은 조각 같은 외모와 캐릭터를 잘 살린 연기로 대한민국 모든 누나들의 마음을 빼앗은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찬란한 유산(2009)’은 시청률 40%를 넘는 대박을 터뜨리며 주인공 이승기를 연예계 최고의 블루칩으로 성장시켰다. 이승기는 현재 ‘1박2일’, ‘강심장’ 등으로 예능에서도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고 8월에는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로 다시 한 번 연기자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2009년 말 청춘 스타가 대거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미남이시네요’는 아이돌 총출동을 방불케 했다. 주인공 장근석과 박신혜를 빼면 이홍기(FT아일랜드)·정용화(씨엔블루)·유이(애프터스쿨) 등이 모두 최고 인기 그룹의 아이돌 멤버들이다.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아이리스’에는 ‘빅뱅’의 탑(최승현)이 냉혹한 킬러로 등장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개봉을 앞둔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차승원·권상우 등의 톱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아이돌 스타=드라마 흥행’의 공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정윤호)가 출연한 드라마 ‘맨 땅에 헤딩(2009)’은 방영 내내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손담비 주연의 ‘드림(2009)’도 ‘선덕여왕’의 독주에 빛을 못 본 케이스. ‘너는 내 운명(2008~2009)’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소녀시대’의 윤아(임윤아)도 2009년 선보인 ‘신데렐라맨’의 한 자릿수 시청률로 녹록하지 않은 경험을 해야 했다.

최근 들어 아이돌 스타들의 영역 파괴는 ‘뮤지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연기 외에도 가창력이 주요한 자질로 꼽히는 분야이다 보니, 본업(가수)의 메리트를 톡톡히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 상반기 뮤지컬의 화두는 단연 아이돌이었다. 새로 선보인 대작 뮤지컬의 경우 이들의 흥행력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김준수)가 주연한 ‘모짜르트’는 작년과 올 초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다. 티켓 판매 사이트의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매진 사례를 빚은 덕분이다. 빅뱅의 승리(이승현)와 대성(강대성)도 ‘소나기’, ‘캣츠’ 등에 출연하며 흥행력을 인정받았다.

이 밖에 이재진(FT아일랜드), 박정민(SS501), 예성·성민·강인·희철(이상 슈퍼주니어), 제시카(소녀시대) 등도 올 상반기 뮤지컬에 출연한 아이돌 스타들이다.
[아이돌 스타, 연예 산업 판 바꾸다] 재능·끼 ‘철철’…멀티플레이어 ‘우뚝’
뮤지컬서도 아이돌 스타 활약 돋보여

버라이어티쇼로 불리는 예능 분야는 아이돌 없이는 프로그램 진행이 힘들 정도다. MC 분야에서 최고의 블루칩인 강호동은 ‘강심장’에서 이승기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영화배우 김승우가 진행하는 토크쇼 ‘승승장구’에는 소녀시대의 태연(김태연)과 2PM의 우영(장우영)이 공동 MC를 맡고 있다. 모든 연예·문화 부문에 아이돌이 포진하고 있다 보니, 이제 예능은 아이돌이 등장하지 않고선 방송 자체가 힘들어졌다.

게스트의 영역을 넘어 메인 MC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강심장’에는 메인 MC 이승기 말고도 슈퍼주니어의 이특(박정수)·신동(신동희) 등이 고정 출연하고 있고 SBS의 ‘패밀리가 떴다2’는 택연(옥택연·2PM)·윤아(소녀시대)·조권(2AM) 등의 아이돌 스타가 전편의 인기를 어느 정도 만회해 주고 있다는 평가다.

KBS의 ‘청춘불패’ 같은 경우는 여성 아이돌 그룹 집결지다. 나르샤(박효진·브라운 아이드 걸스), 유리(권유리)·써니(이순규·이상 소녀시대), 효민(박선영·티아라), 한선화(시크릿), 구하라(카라), 김현아(포미닛) 등이 활약하고 있다.

라이벌 그룹끼리는 한 프로그램에 서지 않는다는 과거와 달리 ‘걸그룹’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아이돌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최근 들어 바뀐 경향이다. 중·장년층이 즐겨 본다는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MBC의 ‘세바퀴’는 환갑을 넘긴 스타들과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이 인기의 비결이다. MC 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경우를 꼽자면 거의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에 아이돌 스타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