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들이 뛴다

재벌가의 딸들이 국내 명품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백화점·면세점·의류업체 등의 핵심 경영진으로 포진한 삼성·신세계·롯데 등의 오너 2세들이 한국의 명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선 시중의 명품 매장 사업에서는 이서현(37) 제일모직 전무와 정유경(38) 신세계 부사장 등 ‘젊은 피’가 눈에 띈다.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실력과 경험 앞세워 명품 시장 주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 딸인 이 전무는 제일모직이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다졌다는 평가를 안팎에서 받고 있다. 이 전무는 2002년 디자이너 브랜드 ‘이세이미야케’를 도입하면서 명품 브랜드 수입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세이미야케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이 밖에 ‘띠어리’와 슈즈 브랜드 ‘나인웨스트’를 비롯해 최근 뉴욕 패션 리더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토리버치’, 이탈리아 명품 뷰티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 등을 연이어 들여왔다.

특히 2008년 3월 개장한 ‘10꼬르소꼬모’는 이 전무가 ‘글로벌 패션 기업’이라는 제일모직의 비전 실현에 도약대로 삼고 있는 매장이다. ‘10꼬르소꼬모’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세계적인 편집 매장으로 서울 매장은 밀라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이 전무는 국내 브랜드의 글로벌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03년 인수한 ‘구호’가 대표적이다. ‘구호’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매출 5배, 연평균 성장률 50%를 기록하며 ‘효자’ 브랜드로 거듭났다. 지난 2월에는 뉴욕에 ‘헥사 바이 구호(hexa by kuho)’라는 이름으로 진출, 한국 패션의 글로벌 진출에 청신호를 켰다.

미국 파슨스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 전무는 2005년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를 후원하기 위해 ‘삼성패션디자인펀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인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의 보드 멤버로 선정되면서 세계 패션 업계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전무는 2010년을 전 세계 글로벌 시장에 문을 두드리는 원년으로 삼고 오는 9월 미국 뉴욕에 여성복 ‘구호’의 두 번째 컬렉션을 기획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 진출한 빈폴·갤럭시·라피도 등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다.

한국 명품 산업의 산파 역할을 해 온 신세계의 명품 사업은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는 자회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아르마니·돌체&가바나·코치·센존 등 유명 수입 브랜드를 들여오는 등 국내 수입 명품 브랜드 시대를 개척해 왔다.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실력과 경험 앞세워 명품 시장 주도
추진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정 부사장은 사라 퍼거슨 전 영국 왕세자비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꽃집 ‘제인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에 오픈했는가 하면 국내에 수입 멀티숍 바람을 일으켰던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분더샵’ 개설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정 부사장은 이 밖에 미국 첼시그룹과 합작으로 설립한 명품 아울렛 ‘신세계 첼시’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부사장은 이화여대에서 비주얼디자인을 전공했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를 나온 디자인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살려 시즌별로 로비 데커레이션 콘셉트에 변화를 줘 호텔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텔 업계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둔 것도 정 부사장의 아이디어였다.

정 부사장의 디자인 능력과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서 쌓은 경험은 조선호텔뿐만 아니라 신세계의 명품 사업이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정 부사장은 요즘도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유럽과 미국 명품 시장을 알아보기 위해 수시로 해외 출장을 가는 등 적극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귀띔이다.

명품의 또 다른 유통 경로인 면세점 업계에서는 이부진(40) 신라호텔 전무의 행보가 가장 활발하다. 경쟁 회사인 롯데면세점에서는 신영자(68) 롯데쇼핑 사장이 뛰고 있다.

면세점 시장, 롯데 vs 신라 치열한 격전

이 전무는 신라호텔과 신라면세점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호텔 리뉴얼을 진두지휘하면서 국내에 없는 희귀한 명품 브랜드를 대거 유치하는 등 명품 사업에 힘을 쏟아왔다. 특히 이 전무는 신라호텔 아케이드를 ‘0.1%만을 위한 명품관’으로 꾸미면서 호텔 명품 매장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탈리아 여성 의류 브랜드 ‘피아자 셈피오네’는 신라호텔 매장을 먼저 연 뒤 갤러리아 명품관에 입점했고 이탈리아 최고급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도 ‘10꼬르꼬소모’ 편집 매장에 이어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문을 열었다. 제일모직에서 수입하는 이세이미야케의 최고급 브랜드 ‘하트(HAAT)’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신라호텔 아케이드에서만 구경할 수 있다.
[베일에 싸인 명품 비즈니스 벗기다] 실력과 경험 앞세워 명품 시장 주도
웨딩드레스의 최고봉인 ‘베라왕’도 에비뉴엘 매장을 정리하고 웨딩드레스 판매에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신라 아케이드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 각국 영부인들의 파티용 클러치백으로 유명한 ‘주디스 리버(Judith Leiber)’도 신라아케이드의 명소로 통한다. 이 전무는 매장 배치부터 입점시킬 브랜드까지 꼼꼼히 챙겼다는 후문이다.

이 전무는 면세점 경영에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2008년엔 인천공항면세점에 진출하면서 매출 규모로 세계 7위 면세 사업자로 도약했다. 국내 점유율도 2002년 13.38%에서 2009년 27.8%로 두 배 이상 신장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명품 업체인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직접 만나는 등 인천공항 면세점 내 루이비통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명품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맏딸이다. 1973년 롯데호텔을 통해 입사한 그녀는 1979년 롯데쇼핑의 창립 멤버로 들어와 30여 년간 영업이사, 상품본부장, 총괄부사장을 차례로 역임하며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구매와 영업파트를 모두 진두지휘했다. 최근에는 AK면세점을 인수하고 루이비통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 유치에도 적극 나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명품 사업을 하는 재벌가 딸들 중에서는 김성주(54) 성주그룹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고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자의 7남매 중 막내딸인 김 회장은 미국 애머스트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후 미국 최고의 백화점 블루밍데일즈에서 일하다가 1990년 (주)성주를 설립했다. 2005년 인수한 MCM 글로벌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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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세계 최고의 명품 회사 LVMH의 브랜드 가치

198억 달러…부동의 1위
<YONHAP PHOTO-0630> (FILES): These recent file photos show seven of the world's richest billionaires, according to Forbes magazine, which published its annual rich list on March 10, 2010. From left are: Mexican tycoon Carlos Slim; Microsoft Corporation chairman Bill Gates; Wall Street investor Warren Buffett; Oracle CEO Lawrence J. Ellison; Bernard Arnault, head of French luxury group LVMH; owner of the Zara clothing chain Zara Amancio Ortega; chairman and managing director of Reliance Industries, Mukesh Ambani.     AFP PHOTO / Files

/2010-03-11 09:22:3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FILES): These recent file photos show seven of the world's richest billionaires, according to Forbes magazine, which published its annual rich list on March 10, 2010. From left are: Mexican tycoon Carlos Slim; Microsoft Corporation chairman Bill Gates; Wall Street investor Warren Buffett; Oracle CEO Lawrence J. Ellison; Bernard Arnault, head of French luxury group LVMH; owner of the Zara clothing chain Zara Amancio Ortega; chairman and managing director of Reliance Industries, Mukesh Ambani. AFP PHOTO / Files /2010-03-11 09:22:3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4월 초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한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나기 위해 굴지의 재벌 그룹 오너 2세들이 총출동했다.

재벌 그룹 오너 2세들이 아르노 회장에게 구애 공세를 펴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루이비통 유치전이라는 게 명품 업계의 관측이다.

루이비통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명품 시장에서도 부동의 지배자다. 영국의 브랜드 조사 전문 ‘밀워드 브라운 옵디모(MBO)’의 ‘2010 브랜드 100대 기업’ 조사에 따르면 LVMH의 브랜드 자산 가치는 198억 달러로 나타났다.

LVMH의 브랜드 자산 가치는 명품 브랜드 2위를 차지한 에르메스(84억6000만 달러), 3위인 구찌(75억8000만 달러)의 상표 가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샤넬(4위, 55억5000만 달러), 헤네시(5위, 53억7000만 달러), 롤렉스(6위, 47억4000만 달러), 모엣&샹동(42억8000만 달러), 까르띠에(39억6000만 달러), 펜디(32억 달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루이비통의 모기업인 LVMH는 1987년 코냑으로 유명한 모에 헤네시스와 합병해 탄생했다. 산하에 크리스챤디올·루이비통·모엣&샹동·헤네시코냑·펜디·셀린·지방시 등 60여 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