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11년 전인 1999년 어느 날, 깔끔한 성격 때문에 늘 팔팔 끓인 물로 욕실과 싱크대를 청소하던 주부 한경희는 “휴…”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끓는 물이 스팀으로 나오는 청소기가 있다면 힘들게 걸레질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게 시작이었다. 스위스(IOC), 미국(MBA 취득)에서 직장 생활과 공부를 하고 행정고시(교육행정 5급)까지 패스한 그가 정작 집안일에서 부딪친 작지만 큰 불편함, 그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다는 ‘국민 청소기’인 스팀청소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Special Interview] “이제는 세계 주부들 마음 사로잡을 차례”
요즘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는 한국·미국·중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 2007년과 2009년에 미국·중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주거지는 아예 베이징으로 옮겼다.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와 애착이 묻어 있는 결단이다.

올해 한경희생활과학은 해외에서만 500억 원을 벌어들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미 미국 홈쇼핑에서는 ‘대박’이 터졌다. 5년 후인 2015년, 7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공언하는 한경희 대표를 만나 주부·스타 최고경영자(CEO)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로필을 보면 ‘도전의 연속’입니다. 안정된 공무원 신분을 버리고 사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뭡니까.

제품에 대한 확신 때문이죠. 스팀청소기는 온돌을 아는 한국 사람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는 믿음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겁니다. 자신이 없었다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지 못했을 거예요.

당시 교육부 일에 한창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일했고,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거든요. 반드시 내가 고안한 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집으로 사표를 던졌어요.

스팀청소기가 처음부터 인기 몰이를 한 건 아니었지요.

1999년 창업해 2001년 스팀청소기 발명 특허 등록을 받고, 2003년 초 디자인과 실용성을 더 높인 ‘한경희스팀청소’를 다시 출시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4년여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직원들의 월급은 고사하고 양가 부모님 집까지 은행에 저당 잡힐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요.

그래도 희망 하나로 버텼는데, 2004년에야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팀청소기로 150억 원을 돌파하고 2005년부터는 매출 1000억 원대에 진입했지요. 주부들에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반전이 된 거죠.

흔히 ‘사업가는 DNA가 다르다’고 합니다. 직접 해보니 어떻습니까.

맞는 말 같아요. 사업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 가치관, 생활 습관 등이 보통 사람과 같아서는 곤란하니까요. 친정·시댁 모두 사업하는 사람이 없으니 타고난 DNA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목표를 세워놓고 전진하면서 사업가 DNA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사업가의 DNA를 키우는 셈이죠.

해외시장 개척에 여념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있나요.

미국·중국·일본 시장에 스팀청소기, 스탠드형 스팀다리미, 클리즈 워터살균기 등을 보급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어요. 반응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20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지사를 설립했는데, 매년 세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거든요.

2008년 100억 원, 2009년 300억 원에 이어 올해는 최소 5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모두 주부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제품력 덕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면서 카펫 문화가 원목 마루 문화로 바뀌고 있어요. 이에 착안해 카펫 청소에 유용한 ‘살균트레이’를 개발했습니다.

홈쇼핑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지요.
[Special Interview] “이제는 세계 주부들 마음 사로잡을 차례”
지난해 글로벌 1위 홈쇼핑 채널인 QVC에서 약 1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어요. QVC에서만 전년 대비 253%의 매출 신장률을 보인 겁니다. 이 기록은 QVC 판매 기업 가운데 최고 매출 신장률이어서 매년 QVC가 수여하는 ‘라이징 스타(Rising Star)’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또 오프라인 채널에도 속속 입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내 800개의 매장을 보유한 백화점 메이시스(Macys)에, 올해는 미국 1위 백화점인 시어스(SEARS)에 입점하기로 했어요. 가을부터는 할인점 타깃(Target)에서도 스팀청소기를 만날 수 있고요.

제3국 바이어들 사이에도 제품 인지도가 높아져 브라질·러시아·호주·프랑스·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도 수출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중국 시장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여름 온 가족이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했어요. 중국 법인에 상주하면서 현지 가전 시장을 파악하고 경영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죠. 중국어 배우기가 너무 어렵지만(직원들은 한 대표가 짧은 시간 동안 놀랄만한 중국어 실력을 길렀다고 말했다)

시장 전망이 밝아서 기쁜 마음으로 도전하고 있어요. 우선 중국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스탠드형 스팀다리미 보급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노동부 청년 고용 홍보대사로 위촉됐습니다. 평소 고용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요.

기업이 가진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는 것 아닐까요. 좋은 인재를 확보해야 회사가 발전합니다. 하지만 최근 채용 시장을 보면 대기업 선호 현상이 너무 강해요. 중소기업 입장에선 좋은 인재를 뽑을 기회가 적은 겁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직자의 인식도 왜곡돼 있어요. 구직자는 많은데 중소기업은 뽑을 사람이 없는, 미스매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어서 노동부 요청을 수락했어요.

한경희생활과학도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습니까.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비교적 잘 알려진 기업이어선지 지원자가 많거든요. 지난해 16명 채용에 1000명이 지원했어요. 올 상반기에는 2명 채용에 600명이 지원했고요.

하지만 지원자들을 만나보면 제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정보기술(IT)·통신 등 소위 잘나가는 분야에 비해 호감도가 낮고 서울 변두리(금천구 가산동)에 사옥이 있다는 것도 꺼리는 요인이더군요.

기업하는 입장에서 고용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구직자의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해 평생 직업을 가진다는 생각이 필요해요. 노동부 등이 지원하는 여러 가지 직업 교육,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점은, 다양한 직업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직업들이 있는데, TV 등을 통해 알려진 소수의 직업만 찾고 있어요. 장래 희망이 연예인이라는 아이들은 동경의 대상이 TV 속 연예인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요. 베이징 초등학교만 보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직업 배우는 날’을 정해 직업 체험의 기회를 주더군요.

꼭 만들어 보고 싶은 제품이 있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고객의 삶의 질을 끝없이 높이는 겁니다. 특히 여성들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지요. 평소 꼭 만들고 싶은 게 ‘예뻐지는 기계’였는데, 그 첫 번째 스텝으로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오앤(O&)’을 론칭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50만 세트가 판매될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 스팀청소기로 여성들에게 시간의 자유를 선물했다면, 이제는 빠르고 편리하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한경희 대표는…

1964년생. 86년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86년 스위스 올림픽위원회(IOC) 입사. 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원 MBA. 98년 교육부 교육행정사무관. 99년 한영전기(한경희생활과학 전신) 설립.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주목해야 하는 여성 기업인 50인’ 선정. 2010년 노동부 청년 고용 홍보대사.

(주)한경희생활과학은…

설립일 : 1999년 9월 2일
자본금 : 3억 원 직원 수: 150여 명
주요 사업 : 스팀청소기·스팀다리미·워터살균기·음식물처리기·진공청소기 제조 및 판매
2009년 매출 실적 : 1300억 원
2010년 매출 목표 : 1600억 원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