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 펀드의 발 빠른 행보

중국의 국부 펀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화(2조4500억 달러)를 보유한 중국이 외화 운용의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세운 중국투자공사(CIC)는 설립 3년여 만에 전 세계 자원 인프라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최근 헤지 펀드와 사모 펀드, 그리고 기업공개(IPO) 시장에 이어 명문 축구단에까지 손을 뻗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0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출범한 CIC는 지난해 말 현재 3324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CIC는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보유 비중이 5% 수준으로 1년 전 70%에서 크게 줄어든 게 이를 보여준다. 특히 해외에 투자한 자산만 811억 달러에 이른다.

◇ 해외 자원과 인프라 시장 눈독 = 러우지웨이(樓繼偉) CIC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에 100억 달러 정도를 해외 자원 기업 지분 인수 등에 썼고, 성과가 괜찮았다고 본다”며 “직접투자에 주력해 왔지만 자원 관련 금융 상품을 통한 간접투자도 좋은 투자 방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China] 자원·인프라·부동산 시장 ‘큰손’
CIC는 작년 9월 홍콩의 농산물 공급 업체인 노블그룹에 8억5000만 달러, 러시아의 원유 생산 기업인 노벨오일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며 자원 관련 투자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캐나다에도 광산 업체 테크리소스와 사우스고비에너지리소스에 각각 15억 달러와 5억 달러를 투자했다.

와이호룽 바클레이즈캐피털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개발은행이 CIC가 운용을 맡긴 자금의 50% 이상을 해외 자원 확보에 투자했다”고 전했다.

해외 인프라도 CIC의 주요 타깃이다. 신에너지와 전력망 투자가 대표적이다. CIC가 7억1000만 달러를 투자한 홍콩의 GCL-폴리에너지홀딩스는 태양발전 설비 업체다. CIC는 GCL-폴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태양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도 합의했다.

CIC는 특히 미국의 전력 생산 업체인 AES에 15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15%의 지분을 인수했다. 미 버지니아 주에 있는 AES는 전력을 생산하고 전송하는 사업을 미국 등 29개국에서 펼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시가총액만 83억 달러에 달한다. CIC가 투자를 위해 AES와 접촉한 건 작년 5월이고 그해 11월 합의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난관도 적지 않았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국 자본이 미국 내 인프라 시설 관련 회사에 투자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2005년 중국해양석유(CNOOC)가 미국 7위 석유 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고 했을 때도 미 의회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내세우며 거래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를 좌절시켰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으로선 안보에 앞서 자본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결국 지난 3월 CIC의 AES 투자는 양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CIC는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도 자원과 인프라 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준비 중이다. 무스타파 아부바카르 인도네시아 국영기업부 장관은 CIC가 200억 달러를 인도네시아 3개 국영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력 회사, 항만 운영사, 석탄 생산 기업이 투자 대상이다.

◇ 해외 부동산 큰손 = CIC는 미국의 부동산 펀드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CIC는 하버드대 기금의 5∼6개 부동산 펀드들을 5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접촉 중이다. CIC는 앞서 미국의 코너스톤부동산자문의 펀드에도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를 두고 “CIC가 과거 일본이 미 부동산을 직접 매입했다가 현지에서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감안해 부동산 펀드를 택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China] 자원·인프라·부동산 시장 ‘큰손’
하버드대 기금 등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부동산 보유를 줄이려는 처지인 데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20년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CIC와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더욱이 미국 부동산 업계는 CIC 등 해외 자본의 투자 유치 차원에서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회에 로비까지 하고 있다.

미 의회는 1980년대 초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외국인의 부동산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를 승인했다. CIC는 미국의 부동산에 투자한 규모는 분명하지 않지만 해외 부동산에 5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월스트리트저널).

CIC는 앞서 영국 부동산 시장에도 진출했다. CIC는 카타르홀딩스 및 모건스탠리 부동산 펀드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영국 부동산 개발사인 카나리워프그룹의 지분 61%를 가진 송버드에스테이츠의 우선주와 보통주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호주 최대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개발 회사인 굿맨에 1억5900만 달러를 투자,지분 8%를 사들였다. 가오시칭(高西慶) CIC 사장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유명 기업에서부터 명문 축구 클럽까지 = 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AIG·코카콜라·애플…. 세계적인 미국의 상장기업이다. CIC에 투자한 기업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CIC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발행사인 뉴스코프를 비롯해 60개 이상 미 상장기업에 96억3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미 증권거래위원회).
[China] 자원·인프라·부동산 시장 ‘큰손’
CIC 해외투자 가운데 36%가 주식 투자로 가장 많다. 해외 주식 투자 가운데 북미 지역이 43.9%로 가장 많고, 아시아·태평양(28.4%), 유럽(20.5%), 중남미(6.3%), 아프리카(0.9%) 등의 순으로 비중을 차지했다. 2007년 설립 초기 블랙스톤 등에 투자했다가 미국발 금융 위기로 큰 평가손을 입긴 했지만 투자 의욕을 꺾지는 못했다.

최근엔 영국 축구 명가 리버풀 인수까지 시도할 만큼 다양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최근 리버풀 매각 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유력한 인수 희망자 가운데 하나인 중국인 기업가 케니 황 뒤에 CIC가 있다고 전했다.

케니 황이 리버풀을 인수하게 된다면 CIC가 컨소시엄에 참여해 상당 부분의 지분을 갖는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리버풀의 소유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CIC가 리버풀 운영에까지 직접 나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CIC가 공언하고 있는 투자 원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CIC는 그 어느 기업에 대해서도 경영권 확보를 추구하지 않는 재무적 투자 원칙을 강조한다. 또 투자할 기업의 현지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는 책임 있는 투자의 원칙도 내세운다. 고수익을 노리는 단기 투자보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투자도 CIC가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원칙 중 하나다.

이 같은 원칙을 통해 CIC가 지난해 해외투자에서 거둔 수익률은 11.7%에 달했다. 2008년 2.1% 손실을 낸 것에 비하면 실적이 크게 좋아진 것이다. CIC의 전체 자본 수익률도 2008년 6.8%에서 지난해 12.9%로 크게 개선됐다.

◇ 다국적 인력풀 구성 = CIC는 공격적 행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력 확충에도 적극 나섰다. 전체 임직원 수가 246명인 CIC는 지난해에만 100여 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어 8월 9일까지 전 세계 금융 인재를 대상으로 신청 접수를 받았다.

전체 직원 가운데 46%가 골드만삭스·UBS 등 해외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외국인만 해도 30명에 이를 만큼 다국적 인재로 인력풀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14명의 국내외 전문가로 이뤄진 국제자문위원회를 통해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금융관리국 총재를 16년간 재임했던 조지프 얌(런즈강)을 최근 영입한 것을 비롯해 일본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금융 거물은 물론 미국·캐나다·브라질·노르웨이·프랑스·영국 등이 자문하고 있다.

CIC는 또 세계적인 금융인들과의 연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러우지웨이 CIC 회장이 최근 하이난 섬에 세계 유력 금융 업계 관계자들을 초대한 콘퍼런스를 연 게 대표적이다. CIC 콘퍼런스에 참석한 한 미국 금융인은 “CIC가 실적을 과시하는 커밍아웃 파티였다”며 “실제로 CIC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미국 부동산 업계 거물인 샘 젤 에쿼티그룹인베스트먼트 회장과 블랙스톤그룹의 토니 제임스 회장, KKR의 데릭 모한, 억만장자 투자가 월버 로스 등이 패널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CIC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모건스탠리의 존 맥 회장도 얼굴을 비췄다.

금융 업계 거물급 인사들의 총출동은 CIC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CIC는 또 내년 4월 베이징에서 국제 국부 펀드 포럼을 개최한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