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 영화 배급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영화는 모름지기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니 시간이 좀 흐른 뒤 돈을 내고 DVD를 빌려 보거나 디지털 방송 ‘다시보기’ 코너를 자연스레 이용하게 마련이다.

요즘은 영화를 돈 내고 합법적으로 내려 받아 볼 수 있는 서비스들이 많아졌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어디서든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음지도 존재하는 법. 이른바 웹 창고 서비스나 개인간(P2P) 파일 공유 서비스를 이용해 불법 복제 영화를 돌려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Info@Biz] 독립영화, 인터넷 배급으로 날개 달다
실제로 많은 웹 창고 서비스들이 저작물 보호 장치를 도입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날로 발전하는 기술과 교묘한 파일 공유 기법을 온전히 걸러내기는 힘겨운 모양새다.

특히 P2P 방식으로 영화를 불법 공유하는 데는 사실상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같은 이유로, ‘비트토런트’ 같은 P2P 파일 공유 서비스는 불법이 난무하는 온상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같은 인터넷 네트워크로 영화를 떳떳이 배급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했다. 그동안 음지로 취급받던 인터넷 파일 공유 서비스를 제도권 영화들의 배급망으로 활용해 보려는 실험들이다.

영화를 떳떳이 배급하려는 새로운 시도들
[Info@Biz] 독립영화, 인터넷 배급으로 날개 달다
예컨대 VODO(http://vodo.net)가 그런 곳이다. VODO는 P2P 영화 공유 서비스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배급망이나 합법 다운로드 서비스가 아니라 P2P로 개인끼리 합법적으로 영화를 돌려보게 해주는 서비스란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국 독립영화 제작자 제이미 킹(Jamie King)이 이 같은 실험을 시도했다. 제이미 킹은 기존의 제작사와 배급사 중심의 제도권 영화 배급망의 한계에 주목했다.

“지금까지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가 독점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다른 곳에 배포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급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인들에게 일부 상업적 권리를 받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한 데는 제이미 킹 자신의 경험도 한몫했다. 그는 2006년 ‘이 영화를 훔쳐라(Steal This Film)’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지만 기존 배급사의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완고한 제도권 배급망을 뚫기도 어려웠거니와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보급하는데 대해서도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비트토런트’에 눈을 돌렸다. ‘P2P 방식으로 영화를 배급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건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비트토런트에 영화를 올리겠다고 하자 대형 해적 사이트 파이어릿베이(www.thepiratebay. org)가 ‘이 영화를 훔쳐라’를 배급하는 데 힘을 보태고 나섰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영화를 내려 받게 해주겠다고 하자 누리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 영화를 훔쳐라’를 내려 받은 사람은 7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고 이렇게 모인 돈은 3만 달러에 이르렀다.

인터넷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제이미 킹은 2009년 10월 VODO를 정식 선보이고 본격적인 온라인 영화 배급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아무 영화나 막 뿌리지는 않는다.

VODO는 한 달에 영화 딱 한 편만 골라 배급한다. 작품성 있는 영화를 골라 최대한 마케팅에 집중한다는 뜻에서였다. 극장으로 치면 월 1회 영화를 상영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돈을 내지 않고 누구나 공짜로 내려 받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VODO는 다운로드 비용을 받는 대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저작권자에게 기부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모은 기부금은 오롯이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VODO는 그 대신 외부 투자자를 모으고 광고를 유치해 운영비를 충당한다.

VODO에선 누구나, 공짜로, 합법적으로 영화를 내려 받지만 그렇다고 저작권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VODO가 제공하는 모든 영화는 ‘크레이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적용했다. CCL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http://creativecommons.org)가 보급하는 저작권 이용 허락 표시에 관한 국제 규약이다.

저작권자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동일 조건 변경 허용 등 4가지 조건을 자유롭게 조합해 자기 저작물 이용 조건을 달면 된다. 이렇게 CCL을 단 저작물은 일일이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해당 조건만 지키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다 쓸 수 있다.

VODO도 저작권자가 이런 식으로 자기 영화의 이용 조건을 미리 표시하는 대신 누구나 합법적으로 영화를 내려 받아 보거나 돌려보게 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영화에 합법 다운로드와 공유의 날개를 달아주려는 시도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2007년 ‘은하해방전선’을 만들었던 윤성호 영화감독은 요즘 ‘영화 불펌 실험’에 한창 빠져 있다. ‘인디시트콤’으로 이름 붙인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가 실험의 주인공이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회당 5~7분 분량으로 구성된 시트콤이다. 모두 12편으로 짜여 있으며 매주 월요일마다 한 편씩 인디시트콤 홈페이지(www.indiesitcom.com)에 공개된다. 웹사이트에 영화를 올리면 불온한 의도를 품은 누리꾼(네티즌)이 슬쩍 퍼가지는 않을까. 걱정할 것 없다. 마음껏 퍼가라고 올린 시트콤이니까.

윤 감독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구상하면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짧은 에피소드들을 영화로 찍자니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기존 시트콤처럼 내보내자니 마땅한 채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눈을 돌린 곳이 인터넷이었다. 웹 특성에 맞게 편당 상영 시간을 5분 안팎으로 잡고 매주 한 편씩 온라인 개봉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합법적 ‘펌질’ 장려하는 ‘인디시트콤’
[Info@Biz] 독립영화, 인터넷 배급으로 날개 달다
시트콤은 유튜브(www.youtube.com)와 비메오(http://vimeo.com)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일단 올린 다음 이를 인디시트콤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식으로 상영된다.

각 에피소드별 소스코드만 복사해 원하는 곳에 붙이면 누구나 시트콤을 자유롭게 퍼갈 수 있다. 시트콤이 상영되는 극장은 홈페이지지만 ‘펌질’과 공유를 거치면 사실상 인터넷 곳곳으로 상영관이 무한 확장되는 셈이다.

새 에피소드가 올라올 때마다 트위터(@indiekoohara)와 미투데이로 소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이 진정 인터넷 시대에 맞는 상영 방식이 아닐까.

또 있다. 진보네트워크는 지난해 9월 ‘다운로드 해적들(The Pirates of Download)’이란 이름으로 정기 상영회를 가졌다. 상영 영화는 ‘거대한 수컷 토끼(Big Bug Bunny)’와 ‘코끼리의 꿈(Elephant Dream)’, 그리고 ‘이 영화를 훔쳐라2(Steal This Film Ⅱ)’ 등 3편. 이 가운데 ‘거대한 수컷 토끼’와 ‘코끼리의 꿈’은 네덜란드 블렌더 재단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블렌더 재단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블렌더’로 영화를 만들어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 받도록 공개했다. 저작자를 표시하는 CCL 조건만 지키면 누구나 이 영화를 가져다 돌려보거나 일부를 잘라 변형하거나, 심지어 상업 용도로 다시 써도 된다. 지나치게 엄격한 저작권 보호 제도를 비판하는 일종의 문화적 저항운동인 셈이다.

이들 실험들이 저작권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봤다면 오해다.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고 폐쇄적인 저작권 제도 때문에 창작물이 제몫을 하지 못하고 먼지 더미에 묻히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영화 배급 실험들은 이런 저작물들에 창작과 공유의 날개를 합법적으로 달아주려는 노력으로 봐야 옳다.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asadal@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