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문사를 움직이는 사람들

업계에서 투자자문사는 ‘사람이 전부’라고 입을 모은다. 누가 어떻게 자금을 운용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명확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을 세우고 때때로 직접 운용하기도 하는 대표이사의 역량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투자자문 업계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와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 대표일 것이다.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은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랩어카운트 상품을 통해 불과 1~2년 새 운용액 1조 원을 돌파한 기업이다.

박건영 대표는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그가 산은캐피탈 팀장을 거쳐 2002년 늦깎이 펀드매니저가 됐을 때만 해도 증권가에서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첫발을 내디딘 곳이 유리스투자자문이었다.

여기서 현대미포조선 투자로 대박을 낸 그는 불과 2년 만에 국내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 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미래에셋에서는 인디펜던스와 디스커버리 등 회사 대표 펀드를 운용하며 꾸준한 수익을 냈다. 이후 트러스톤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겨 ‘칭기스칸펀드’로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이후 2009년 봄 브레인투자자문으로 ‘독립 선언’했다. 설립 1년이 갓 지난 브레인투자자문의 운용 규모는 현재 1조7000억 원 수준에 달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9000억 원이 랩어카운트, 8000억 원이 기관투자가 및 고액 자산가의 자금이다.

앞으로는 설립 후 1년 이상이 지나야 운용할 수 있는 국민연금 운용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기업’을 특히나 사랑하는 박 대표의 투자 철학처럼 브레인투자자문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투자자문사 '빅뱅'] ‘사람이 전부’…펀드매니저 출신 ‘주류’
박건영·권남학 대표 ‘주목’

권남학 대표는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종가 중 하나인 한국투신운용의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케이원투자자문은 1년 전 1000억 원의 교원공제회 자금을 맡으면서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증권과 단독으로 랩 계약을 성사시킨 후 운용 규모가 급속도로 불었다.

현재 수탁액은 1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앞으로 1~2년 후 기업 실적이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치주를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이 최근 가장 뜨고 있는 투자자문사라면 코스모투자자문·한가람투자자문·피데스투자자문 등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투자자문사다.

운용 규모가 3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투자자문사인 코스모투자자문은 지난 7월 설한 대표를 전격 영입했다. 코스모투자자문은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으로부터 2001년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하다보니 보다 정통적인 운용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설 대표는 미 컬럼비아대(경제학)를 졸업한 뒤 1988년부터 뱅커스트러스트·모건스탠리 등에서 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투자 업무를 맡았고 2005년 싱가포르에서 헤지 펀드 운용사 우주캐피털파트너스를 설립해 최고투자책임자(CIO) 및 대표를 지냈다.

한가람투자자문 역시 투자자문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업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유일한 코스닥 펀드 위탁 운용사로 중·소형주 투자에 강하다고 평가받는다. 한가람투자자문을 이끌고 있는 박경민 대표는 가치 투자의 전도사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1985년 노무라증권에서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99년 SEI에셋코리아자산운용 펀드매니저를 마지막으로 회사 생활을 마쳤다. 그 후 2000년 한가람투자자문을 세워 이를 현재 투자자문사 랭킹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피데스투자자문을 이끌고 있는 송상종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건 지난 1998년의 일이다. 송 대표는 피데스투자자문 설립 전까지 동원증권과 교보생명에서 주식과 채권을 운용한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특히 송 대표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과 함께 광주일고 52회 동창생으로 시장에서는 한때 이들을 ‘광주일고 3인방’으로 부르기도 했다.

대학 동기끼리 문 연 자문사도

VIP투자자문을 이끌고 있는 최준철·김민국 대표 역시 투자자문 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다. 둘은 서울대 경영학과 동기생이며 대학 증권 동아리 출신이다. 지난 2003년 뜻을 모아 VIP투자자문을 설립했으며 업계에서도 특히 개인 고액 자산가들이 즐겨 찾는 투자자문사로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인피니티투자자문 대표를 맡고 있는 박관종 대표는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다. 박 대표는 인피니티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우리CS자산운용에서 수익률 하위권의 블루오션펀드를 수익률 1위로 끌어올려 시장의 인정을 받은 인물이다.

AK투자자문은 독특한 스타일의 운용으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자문사다. 지난 1999년 설립된 이 회사는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외국 자금을 국내시장으로 끌어오는 한국 투자 전용 헤지 펀드로 출발했다.

이 때문에 해외 정보에 빠르고 위험 방어 전략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효문 AK투자자문 대표는 한국투자신탁 주식운용본부장 등을 맡으며 약 1조7000억 원의 고유 자산을 운용했고 500여 개 상품을 개발한 베테랑 펀드매니저다.

이철영 아크투자자문 회장은 업계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크투자자문은 연금 기관이나 개인 고객의 자금 운용보다 자체적으로 조성한 사모 펀드의 운용에 치중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한투신 주식운용팀장, 피데스투자자문 주식운용 이사를 지낸 강인호 최고투자책임자(CIO)를 4년 전 영입해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올려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유리스투자자문 대표이사를 거친 김일훈 스카이투자자문 대표, 마이에셋자산운용 이사 및 금융공학본부장을 지낸 황영원 에이스투자자문 대표, 대우증권 애널리스트와 미래에셋 펀드매니저 등을 거친 이병익 오크우드투자자문 대표 등도 시장에서 각자의 영역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돋보기주식시장의 새 변수 ‘자문사 선호 종목’

‘니프티 피프티’(멋진 50종목) 장세, 국내서도 시작되나

증시에 관심이 있다면 ‘7공주’니 ‘4대천왕’이니 하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투자자문사가 선호하는 소수 종목을 뜻하는 말들이다. 투자자문사는 펀드와 달리 많아야 10개 종목을 들고 간다. 자금과 커버리지의 한계라는 현실적인 선택도 있지만 소수의 ‘똘똘한 종목’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문사의 마인드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유동성 때문이다. 일례로 자문사 7공주는 하이닉스·LG화학·기아자동차·제일모직·삼성SDS·삼성테크윈·삼성전기를 뜻한다. 4대천왕은 OCI·고려아연·현대제철·한진해운 등이다.

투자 기간이 정해져 있는 일반 펀드와 달리 투자자문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고객이 맡긴 돈을 찾기 원한다면 언제라도 내줘야 한다. 대부분의 자문사는 거래량이 적은 중소형주보다 거래량이 많은 대형주를 선호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문사가 선호한다고 해서 주가가 오르는 일은 없었다. 운용 금액이 크지 않아 시장의 영향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문사가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돈이 앞서 언급한 소수의 종목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투자자문사들의 수익률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7공주와 4대천왕의 주가 상승 비결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선진시장인 미국 시장의 예를 보면 이는 산업의 발전 단계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일 수도 있다.

바로 1960년대 말 미국 증시를 이끈 ‘니프티 피프티(멋진 50 종목)’ 현상이다. 당시 뮤추얼 펀드 바람이 불면서 IBM·필립모리스·코카콜라 등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했던 50개 대형 종목만이 시장 대비 엄청난 고수익을 냈다. 이런 현상이 국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