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2.0 시대를 말한다

회사원 유희주(32)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를 휴일에 본다. 얼마 전 설치한 인터넷 TV를 통해 1주일 치를 한꺼번에 모아서 이어 보는 것이다.

유 씨는 “이전에는 원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방영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원할 때 내가 보던 장면부터 다시 볼 수 있어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다.

영화도 극장에서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작품도 3500원을 내면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 대여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김영은(30) 씨는 드라마를 TV가 아닌 PC로 본다. 그의 방에는 TV가 아예 없고 TV 수신 카드가 장착된 PC가 있다. 실시간으로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대부분 애플이 운영하는 온라인 상점 아이튠즈에 올라온 최신 드라마를 카드로 결제해 보거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콘텐츠를 보고 있다.

통신사·케이블·제조사 무한경쟁 돌입
[Info@Biz] ‘리모컨으로 보는 TV’시대의 종말
인터넷 TV가 확산되면서 국내외 TV와 콘텐츠 시장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그동안 TV 시장은 공중파·케이블·위성TV로 구분돼 경쟁을 벌였지만, 최근 인터넷 TV가 등장하면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인터넷 TV의 등장은 과거 PC 통신 환경이 인터넷 환경으로 바뀐 것처럼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전까지 인터넷 TV는 공중파나 케이블에 비해 전송 대역폭 한계로 화질이 한 단계 낮은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환경이 보급되면서 기존 TV 업계를 위협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 또 해외 주요 방송국의 경우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어 인터넷과 공중파 방송이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 TV 시장은 이전과 달리 새로운 경쟁 구도로 움직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정보기술(IT) 기반 업체, TV 제조사와 방송국, 콘텐츠 유통과 제작 업체 간 차기 TV 시장을 잡기 위한 총성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TV 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인터넷이다. 특히 최근 인터넷이 HD 콘텐츠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대역폭이 확대되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TV 시장은 드라마나 영화 등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콘텐츠 업체, 콘텐츠를 전파나 유선으로 송출하는 방송국, TV를 생산하는 TV 업체로 각 영역이 구분됐다. 또 각 나라와 지역별로 방송과 관련된 법규로 콘텐츠 유통을 제한했지만 인터넷 TV 등장으로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그동안 인터넷은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한정돼 있어 TV보다 낮은 화질의 서비스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TV=저화질’이었으며 일정 화질 이상을 원하는 사람은 P2P 등을 통해 콘텐츠를 내려 받은 뒤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인터넷 통신 대역폭은 고화질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확대, 개선됐다.
[Info@Biz] ‘리모컨으로 보는 TV’시대의 종말
국내 인터넷 TV 시장은 SKT·KT·LGU+ 등 통신 사업자와 케이블 TV 업계의 경쟁 구도로 이뤄져 있다. 통신 사업자들은 휴대전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등을 묶어 가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통신 사업자들이 콘텐츠 제공 업체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통신 사업자들은 TV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등을 통해서도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TV·PC·휴대전화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3스크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케이블 TV 업계도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추가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소니 등 TV 업체들은 구글·야후 등 인터넷 업체들과 협력해 TV 제조사뿐만 아니라 TV 사업자로 변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 업체는 TV 판매에 따른 수익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콘텐츠 업체와 수익을 나눠 갖는 사업 방식을 도입하며 새롭게 열리는 TV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 구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기존 경쟁 방식을 무력하게 만드는 서비스들이 등장해 TV 시장을 다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Info@Biz] ‘리모컨으로 보는 TV’시대의 종말
인터넷 TV 시장을 준비해 왔던 TV 업계는 최근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에 당황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3월에 설립된 훌루(www.hulu.com)는 새로운 TV 서비스의 대표 주자다.

미국을 중심으로 무섭게 세를 확장하고 있는 VOD 전문 업체인 훌루는 미국 내 주요 방송국과 계약을 체결해 뉴스·드라마 등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훌루의 지분은 NBC(32%)·폭스(31%)·ABC(27%) 등 미디어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디어 업계의 영향력을 발판으로 독자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다.

인터넷 통해 콘텐츠 무료 서비스

훌루는 적은 용량으로 고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플래시 비디오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 업체는 고객들이 광고를 보는 대신 무료로 인기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를 제공해 사용자를 확보했다.

사용자가 늘어나자 최근에는 한 달에 9.95달러로 예전에 방영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서비스와 고화질 서비스 등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훌루는 보수적이었던 기존 방송국이나 콘텐츠 업체와 달리 콘텐츠 유통 접점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 내 가입자는 채널을 선택하는 대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면 PC와 스마트폰 등에서도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볼 수 있다.

특히 훌루는 TV 업체들이 기존 콘텐츠 유통 방식에서 인터넷을 또 하나의 유통 방식으로 생각하는데 비해 콘텐츠와 지역, 배포 방식의 종속에서 벗어나 인터넷의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DVD를 우편으로 대여해 성공한 넷플릭스도 최근에는 인터넷 판매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IT 업체 애플은 온라인 콘텐츠 상점 아이튠즈를 활용해 콘텐츠 사업자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도 훌루와 같은 방식으로 TV 시장에 접근하는 업체들이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그래텍이다. 이 회사는 PC 멀티미디어 재생 소프트웨어 ‘곰TV’를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으로 장착했다. 곰TV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영화사나 공연 기획사, 인기 가수들까지 곰TV를 통해 데뷔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곰TV는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 소프트웨어보다 편리한 기능을 제공해 소프트웨어 사용자를 확보한 뒤, 이를 자사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 고객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로 잘 알려진 PC 게임 업체 블리자드와 스타크래프트2 관련 국내 e스포츠 및 방송 파트너십 계약을 맺는 등 사세를 확대하고 있다.

CJ헬로비전(대표 이관훈)도 총 53개 실시간 방송 채널과 관련 VOD를 인터넷으로 시청할 수 있는 ‘티빙(Tving)’ 서비스를 지난 6월부터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실시간 TV방송을 PC나 노트북 등을 통해 국내와 해외에서도 볼 수 있다.

티빙은 TV 화면에서처럼 안정적인 방송 품질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시간 채팅’과 ‘관련 프로그램 검색’, ‘실시간 시청률 순위’ 등 양방향 서비스도 제공한다. 특히 기존 TV와 달리 방송 채널 사업자들이 채널에 구애받지 않고 스포츠나 오락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이들 업체는 TV 방송국과 달리 경쟁 업체 간 협력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사업 구조를 확대하고 있어 앞으로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형근 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