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전문가 뺨치는 활약을 펼치는 맹렬 파워 블로거도 탄생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이들 디지털 시니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의 60대 아마추어 과학자 스테판 매킨타이어는 수년 전부터 서구사회에서 주목받는 ‘그레이 파워(Grey Power)’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광물 탐사 업체를 운영하다가 은퇴한 그는 어느날 자신의 풍부한 통계학적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색다른 취미를 갖게 됐다.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온난화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일이다.
저명한 기후학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확보한 기초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허점을 지적한 그의 보고서는 월스트리트저널에도 보도돼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블로그(‘Climate Audit’)는 지구온난화 회의론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비단 매킨타이어뿐만이 아니다. 늘어난 여유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구하려는 열정에 불타는 전문가 못지않은 은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 무대는 바로 인터넷이다.
일본에서는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SNS ‘자신사(自身史, jibunsi.jp)’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공개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블로그로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퇴직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이미 은퇴자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디지털 시니어는 웹과 실버의 합성어인 웹버족·노티즌·실버티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내 1회 이상 인터넷을 사용한 60세 이상 인구(인터넷 이용률)는 146만 명(2009년 기준)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전체 60세 이상 인구 중 20%를 돌파했다. 2005년 73만 명에 불과했던 것이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시니어 네티즌 4년 만에 두 배로 SK커뮤니케이션즈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11월 기준으로 50대 이상 싸이월드 가입자는 93만 명, 접속 횟수와 자료 업데이트 정도도 20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생활을 간섭하는 ‘싸이 시집살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인터넷 이용률은 높지만 인구 비중이 감소하는 젊은 세대에 비해 50대 이상 인터넷 이용자는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시니어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블로그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 메신저는 빠른 속도감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지만 블로그는 오히려 시니어층에 유리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읽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은퇴자들은 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와 방대하고 깊이있는 지식과 경험은 젊은 세대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다. 직장 등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던 세대가 정년에 들어서고 있어 시니어층 블로그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으로 파워 블로거 반열에 올라선 디지털 시니어들이 나오고 있다. 시니어층 블로그만을 모아 놓은 메타블로그 ‘실버클럽(silverclub.kr)’에는 현재 110여 개의 블로그가 등록돼 하루에도 수십여 개의 콘텐츠들이 올라오고 있다.
공직에서 은퇴한 후 여행 블로그(‘펜펜의 나홀로 여행’)를 운영하고 있는 이석암(61) 씨는 ‘국내 100대 블로거’에 선정돼 젊은 네티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인기 가수였던 서수남(66) 씨도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지난 가수 인생부터 지역의 맛집, 사진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풀어 놓으며 온라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물론 블로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방송이나 스마트폰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디지털 시니어들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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