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00대 기업

중국 경제의 고성장은 기업의 약진으로도 나타난다. 중국 500대 기업의 성적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평균 매출, 순익, 자산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중국 경제의 고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출 이익률이 2년 연속 글로벌 500대 기업과 미국 500대 기업을 웃돌 만큼 질적인 측면에서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 중국기업연합회가 발표한 ‘2010년 500대 기업’이라는 거울을 통해 중국 경제를 들여다본다.

중국 500대 기업의 매출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82%를 차지한다. 또 납세액이 중국 전체 세수의 35% 이상에 이르고 일자리는 2700만 명에 달한다. 중국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기업은 중국석화(시노펙)다.

지난해 1조3919억 위안의 매출을 올려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시노펙에 이어 국가전력망과 중국석유(CNPC)가 2, 3위에 올랐다. 순익에서는 공상은행이 1293억 위안으로 1위를 기록했다. 시노펙은 393억 위안으로 7위에 머물렀다.

◇ 상전벽해를 이룬 500대 기업 실적 = 중국기업연합회가 500대 기업 리스트를 작성한 2001년 실적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의 변화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지난해 중국 500대 기업 평균 매출은 552억 위안으로 2001년의 4.5배에 달했다.

연평균 18.3% 증가한 것으로, 같은 기간 글로벌500대 기업과 미국 500대 기업의 매출 연평균 증가율 5.7%와 3.1%를 크게 웃돈다. 금융 위기에서도 중국 500대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중국] GDP 82% 차지…매출 증가 ‘눈에 띄네’
글로벌 500대 기업 매출이 같은 기간 6.6%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과 글로벌 기업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 500대 기업의 매출은 세계 500대 기업의 17%, 미국 500대 기업의 41% 수준이다.

2001년만 해도 5.3%와 10%에 그쳤지만 빠른 속도로 매출이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500대 기업에 43개사가 진입하면서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3번째로 가장 많은 국가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상위 3개사인 시노펙·국가전력망·중국석유천연가스(CNPC)는 글로벌 500대 기업 상위 10위권에 포진해 있다.

1000억 위안 이상의 매출을 올린 기업은 63개로 늘었다. 1000억 클럽에 6개가 추가된 것이다. 2002년만 해도 10개사에 불과했다. 중국 500대 기업 진입 문턱도 높아졌다.

진입 기준은 지난해 매출 110억8000만 위안으로 전년(105억4000만 위안)보다 올랐다. 2002년만 해도 매출이 20억 위안만 넘으면 중국 500대 기업의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중국 대기업의 실적 호조는 경제 고성장을 반영한다. 2001년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됐던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지난해엔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달했다.

◇ 큰 기업에서 강한 기업으로 변신 중 =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수익성이 글로벌 500대 기업과 미국 500대 기업을 2년 연속 웃돌았다. 매출 이익률이 5.4%, 순자산 이익률이 9.4%로 글로벌 500대 기업의 4.6%와 8.2%를 웃돌았다.

미국 500대 기업의 4.0%와 7.8%도 상회한다. 중국 500대 기업 자산이익률도 1.65%로 글로벌 500대 기업과 미국 500대 기업보다 높다. 중국 500대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3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2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500대 기업의 17%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이다.
[중국] GDP 82% 차지…매출 증가 ‘눈에 띄네’
중국 500대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9년 전의 4.9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왕종위 중국기업연합회 회장은 “중국 기업이 혁신을 통해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며 “크기만 하고 강하지 않은 국면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500대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14.5% 증가하고 이들이 지난해 획득한 특허도 16만9000건으로 전년 대비 13.3% 늘었다. 10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기업도 41개사를 기록했다.

더욱이 17개 기업은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쏟아 붓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술이 세계 표준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도 강한 기업의 면모를 보여준다. 국가전력망의 초고압 전력 기술이 국제전기위원회(IEC)의 국제 표준이 된 게 대표적이다.

기술 혁신과 함께 서비스산업과 신에너지 등 신흥 산업 육성에 힘을 쏟으면서 대기업 판도에서 경제성장 방식 전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신화통신)도 있다. 철강과 비철금속 등 자원형 기업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철강 업체가 몰린 허베이성과 석탄 업체가 밀집한 산시성에서 중국 500대 기업에 진입시킨 기업이 1∼2개사에 그쳤다. 가격보다 품질로 승부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중량그룹의 닝가오닝 회장은 “과거엔 미국에 수출한 케첩 가격이 500달러로 미국산(900달러)보다 크게 낮았지만 지금은 같은 가격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루이와 BYD 등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들은 생산 설비를 직접 제작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

먀오룽 중국기업연합회 연구원은 중국 기업이 다국적기업 추격자에서 도전자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지리자동차가 포드자동차의 스웨덴 계열사인 볼보를 인수하는 등 중국 기업이 유명한 다국적기업을 인수한 것도 이 같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 국진민퇴의 그림자 = 중국 기업의 약진 속에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1인당 매출과 순이익은 글로벌 500대 기업의 36.8%와 47.1% 수준으로 노동생산성이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다.

국유 기업이 약진하고 민영 기업이 후퇴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도 중국 경제의 취약점을 보여준다. 중국 500대 기업 가운데 국유 기업은 3분의 2를 차지한다. 상위 10위권에는 모두 국유 기업만 올라 있다.

중국 정부가 미국발 금융 위기 직후 내놓은 4조 위안의 경기 부양책 수혜 기업도 대부분 국유 기업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가장 많이 인수·합병(M&A)한 상위 10대 기업도 모두 국유 기업이다. 산시성에 있는 석탄 업계의 경우 지난해 6개 국유 기업이 362개 기업을 인수했다. 지난해 중국 500대 기업의 M&A 건수의 40%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익성은 민영 기업이 국유 기업을 앞서고 있다. 국유 기업의 매출 이익률은 5.38%로 민영 기업의 5.79%를 밑돈다. 자산 이익률도 1.5%로 민영 기업의 3.14%보다 낮다. 1인당 순이익도 5만2700위안으로 민영 기업의 7만8600위안에 크게 못 미친다. 1인당 매출도 97만8800위안으로 민영 기업의 135만9000위안에 크게 뒤진다. 노동생산성에서도 민영 기업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중국] GDP 82% 차지…매출 증가 ‘눈에 띄네’
중국 정부는 겉으론 국유 기업이 독점해 온 업종을 민간 자본에 적극 개방하기로 하는 등 민간 자본을 통한 경제의 효율성 제고에 힘쓰고 있다. 산시성 정부가 6500억 위안의 투자 프로젝트에 민영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산둥성 정부도 국가 법률에서 금지하는 업종을 제외하곤 모두 민영 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안후이성 정부 역시 최근 민간 자본이 중점 육성 산업에 진입하거나 국유 기업 개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방정부와 관료의 돈줄 역할을 해 온 국유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쉽게 내놓지 않으면서 민영 경제의 발전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중국 대기업 간 실적 격차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500대 기업 중 순이익 100억 위안이 넘는 22개 기업이 전체 순익의 58.2%를 차지했다. 500대 기업 모두가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또 “중국의 500대 기업은 대부분 내수형 업종으로 진정한 다국적기업이 드물다(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는 지적이다. 업종도 부동산·에너지·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 의존도가 크고 서비스 기업 수도 500대 기업의 30%가 안 된다.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는 서비스 기업이 절반을 넘는 것과 대조된다.

지역 불균형도 500대 기업의 판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500대 기업 가운데 베이징에 헤드쿼터를 둔 회사만 98개사나 된다. 경제가 가장 발전한 동부 9개 성과 시에는 354개사의 본부가 있어 전체의 70.8%에 달한다.

중부 6개 성은 59개사에 불과하고 낙후 지역인 서부 11개 성과 시엔 58개 기업에 그치고 있다. 동북3성은 고작 29개사만이 중국 500대 기업에 올랐다. 티베트자치구와 닝샤후이족자치구는 한 개의 기업도 올리지 못했다.

왕종위 회장은 “기업 경쟁력은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고 국가 경쟁력으로 나타난다”며 “금융 위기는 중국 경제에도 큰 충격을 줬지만 중국 경제에 세계를 추월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