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전 국민의 희망 '300조 국민연금] “해외 투자 부동산 6% 이상 올랐어요”
지난해 말 전광우(61) 이사장이 국민연금공단을 처음 맡을 때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장관급인 초대 금융위원장 출신으로서 격에 맞지 않는 자리라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전 이사장은 요즘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패러다임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국제금융 전문가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은 지금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며 “공직을 마치고 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귀한 봉사의 기회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개월 동안의 가장 큰 변화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진 점을 꼽았다.

임의 가입자가 작년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가 계속 커지는 ‘젊은 연금’”이라며 ‘규모에 걸맞은 변화’를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지난 9월 10일 종로구 국민연금공단 국제업무센터에서 전 이사장을 만나 ‘자산 300조 원 시대’를 맞은 국민연금의 과제에 대해 들었다.

지난 7월 기금 적립금이 3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앞으로 규모가 계속 커질 텐데요,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자산 300조 원은 당초 예상보다 2~3개월 앞당겨 달성됐습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신뢰가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작년부터 기금 운용 수익률이 높게 나오고, 또 공단 조직 전체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봐요.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규모가 커지는 연금이에요.

5년 후인 2015년에는 500조 원, 2040년에는 24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규모에 걸맞은 운용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요. 과거처럼 국내 채권을 사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운용해서는 곤란합니다. 해외 투자를 포함해 투자를 다변화해야 하고, 그러자면 고도의 전문성을 키워야 해요.

국제적인 큰 플레이어들과 네트워킹도 갖춰야 하죠.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죠. 그게 바로 국민연금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에 맞춰 조만간 대규모 신규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에요. 내년에는 국민연금 역사상 처음으로 뉴욕에 해외 사무소를 엽니다.

지난해 사상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는데요.

작년 10.39%의 수익률을 올렸어요. 국내 주가가 50%가량 오른 게 크게 기여했지요. 아직은 채권 비중이 70%가 넘기 때문에 주식이 웬만큼 올라도 전체 수익률은 크게 상승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수익률을 달성했어요. 작년 벌어들인 운용 수익이 삼성그룹 전체 순이익의 2배쯤 됩니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이 부담이 되기도 해요. 주식시장이 매년 50%씩 오르는 것도 아니고.(웃음)

향후 수익률 전망은 어떻습니까.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4%대인 채권 수익률로는 장기적인 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해외 투자나 자원 개발 투자 등으로 투자를 다변화해 전체 평균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장기적으로는 6%대 수익률을 목표로 하죠. 그러면 계산은 바로 나옵니다. 자산의 4분의 3이 채권인데, 수익률이 4%예요. 세계적인 저금리로 해외 채권은 이보다 밑돌아요. 다른데서 추가 수익을 올려야 6%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죠.

해외 투자 확대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취임하고 나서 해외 투자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은 10% 정도인데,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 공적연금이나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 캐나다 국민연금은 국내와 해외 비중이 거의 반반이에요.

규모가 커지면 국내시장이 협소해져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또 해외 투자 확대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전체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도 냅니다.

[전 국민의 희망 '300조 국민연금] “해외 투자 부동산 6% 이상 올랐어요”
해외 부동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요.


작년 말부터 해외 부동산에 투자를 많이 했지요. 가장 최근에 산 게 프랑스 파리 인근의 쇼핑센터예요. 그전에는 베를린 소니센터와 시드니의 오로라플레이스를 매입했어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데 너무 위험한 투자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지난 수년간의 트렌드로 보면 굉장히 저가에 매수한 케이스들이에요.

자체 통계로는 그동안 사들인 부동산의 가격이 평균 6%가량 올라 있어요. 물론 국민연금의 목적은 단기 시세 차익이 아닙니다. 안정적인 장기 임대수익을 보고 산 것이죠. 투자한 부동산들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공실률이 거의 없고 장기 임대 계약을 확보하고 있어요. 임대 수익만으로도 연 7~8%의 수익이 나옵니다.

환리스크에 대해서는 자체 헤징을 하지만 투자 국가와 산업의 전략적 배분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지요. 이를테면 시드니에 투자한 자산의 환리스크는 런던에 투자한 것으로 상쇄가 됩니다. 강세 통화와 약세 통화가 섞여 있기 때문이지요.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 국민연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올해로 국민연금이 출범한 지 23년째가 됩니다. 아직 청년 단계인 ‘젊은 연금’인 것이죠. 이는 향후 30년 동안 적립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이 기간은 가입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 총액보다 보험료로 거둬들이는 돈이 훨씬 많은 시기죠. 반면 선진국 연·기금은 시작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이미 성숙 단계를 넘어섰어요.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없는 거죠. 국민연금이 국제금융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신규 자금 유입이 적은 선진국의 연·기금은 새로운 투자를 하려면 들고 있던 자산을 내다 팔거나 만기를 기다려야 해요. 하지만 국민연금은 앞으로 20~30년 순유입 자금이 계속 늘어납니다. 이것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에요.

운용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수익률을 높여야 합니다. 지나치게 소극적인 투자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면 국민들의 자산을 위임받은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거죠.

기금 고갈을 불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현재 장기 추계로는 50년 후 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동안 몇 차례 제도 개선으로 고갈 시기가 다소 늦춰졌어요. 물론 30년이든 50년이든 고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주는 것은 당연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금 운용 측면에서는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운용 수익률을 연평균 1%포인트씩 높이면 연금 고갈을 9년 늦출 수 있어요. 만약 이를 2%포인트 높이면 현재 시스템으로도 고갈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쉽지 않은 목표죠.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또 다른 방안은 무엇입니까.

기금 고갈의 근저에는 저출산 문제가 놓여 있지요. 국민연금은 후 세대가 받쳐 주어야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기금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또한 저출산 문제는 기금 안정성을 떠나서도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해요. 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비교 우위를 살리는 겁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뭘까요. 바로 인적 자원 아닙니까. 해외 자원 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진 인적 자원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장 전략이 되어야 해요.

국민연금공단 직원들 중에 다섯 자녀를 둔 경우가 1명, 네 자녀가 16명 있는데, 상도 주고 격려도 해줍니다. 저출산 문제는 지금 노력하면 20~30년 후에 그 결과가 나타나지요. 늦으면 늦을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겁니다.

추가로 현행 연금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은 없습니까.

연금제도를 손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검토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국민과의 약속은 그대로 지킨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지요. 하지만 장기적인 준비를 한다는 차원에서 계속 검토할 필요는 있겠지요.

임의 가입자가 작년보다 2배 이상 많아졌는데요.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 ‘재테크’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재테크라기보다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노후 대책의 일환으로 임의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거죠. 사실 국민연금을 잘 알면 알수록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민간 보험은 보험 회사가 중간에서 이익을 챙겨야 해요.

가입자가 1을 내면 0.8이나 0.9를 돌려받는 구조예요. 반면 국민연금은 내는 것보다 받는 게 훨씬 많아요. 1을 내면 1.2, 또는 저소득층이나 어려운 분들은 1.8을 받는 구조예요.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확산된 결과라고 봐요.

처음에는 여유 있는 분들이 많이 임의 가입했는데, 점차 소득이 낮은 분들도 참여하는 추세죠. 요즘 가장 의미 있는 트렌드는 과거 국민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가입을 기피하던 분들이 다시 국민연금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300조 원을 책임진 수장으로서 책임감이 크실 텐데요.
[전 국민의 희망 '300조 국민연금] “해외 투자 부동산 6% 이상 올랐어요”
국민연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시기입니다. 급속한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조기 은퇴로 연금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국민들이 많아요. 이제는 노후 준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됐지요. 게다가 기금 규모도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커졌어요.

이런 변화에 맞춰 기금 운용의 패러다임을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연금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국민연금을 맡게 돼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대표적인 금융 전문가로서 국내 금융 산업의 발전 방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융위원장을 마치고도 늘 생각하는 고민입니다. 한 나라의 금융 감독을 책임지는 일을 맡았던 이상 살아 있는 동안은 늘 책임을 느끼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개방경제 하에서 발생하는 시스템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 것이냐가 핵심 과제로 떠올라 있습니다. 금융시장은 열려 있는 바다와 같다고 생각해요.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를 생각해 보죠. 사해에서는 사람이 익사하거나 배가 침몰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해에는 활력이 넘치는 생명체가 없지요. 금융 산업을 선진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열려 있는 바다에서 항해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되어야 해요. 문들 닫아 걸고 이리저리 방파제를 쌓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금융 위기를 겪고 나면 규제에 대한 유혹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파생상품 감독 강화 등 꼭 필요한 부분은 규제를 강화해야 하지만, 자칫하면 규제 강화의 덫에 걸릴 수 있습니다. 시장의 자생력, 시장의 역량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해요.

성공한 학자이자 관료, 최고경영자(CEO)로서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비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만 너무 몰입하기 때문이지요. 좀더 여유를 갖고 길게 볼 필요가 있어요. 저는 열정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열정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보고 싶어요.

직원들 중에서도 열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재능은 다 다를 수 있어요.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열정이 있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 일류 조직이지요. 또 하나는 재미보다 의미를 찾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이가 들고 나니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저는 언제나 40대로 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웃음)


약력 : 1949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미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1982년 미 미시간주립대 경영대 교수. 1986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1998년 경제부총리 특보. 2000년 국제금융센터 소장. 2001년 우리금융 총괄부회장. 2004년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2008년 포스코 이사회 의장. 2008년 금융위원회 위원장. 2009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대담=김상헌 편집장
정리=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