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땅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한국 로펌의 지사장 변호사로 3년간 근무하는 동안 프놈펜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가 많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계 건설 회사가 시공한 ‘골드타워 42’와 ‘프놈펜 타워’로 프놈펜 중심가인 모니봉 도로를 따라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인구 1300만 명, 면적 약 18만㎢로 200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715달러 수준의 저개발 국가다. 2∼3년 전 한국계 건설사 및 시행사들이 진출해 부동산 및 건설 붐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캄보디아에서는 한국계 기업들과 한국인들의 영향력이 큰 편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이 현지인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호감을 사는 곳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현재 한국계 기업이 시행 중인 대표적 사업은 월드시티의 캠코시티(Camko City) 프로젝트다. 복잡하게 밀집된 옛 프놈펜 중심가를 벗어난 프놈펜 시청에서 북서쪽 3km 거리에 현대적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3년 전만 해도 과연 캄보디아에 이런 신도시가 들어설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는데, 어느새 신도시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또 대한토지신탁이 주도하는 ‘골드타워 42’와 현대엠코건설이 건설과 시행을 맡은 오피스 건물 ‘프놈펜 타워’ 프로젝트가 있다. 포스코건설도 바삭(Bassac) 강변을 따라 ‘더 샵 스타 리버(the# Star River)’라는 아파트 건설을 준비 중이다.

이 밖에도 프놈펜에는 한국계 기업들이 진행 중인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설 프로젝트들이 많다. 한국 건설사들은 벽돌로 하나씩 쌓아 올리는 재래식 공법으로 시공하는 현지 건설 업체나 중국계 건설 업체와 달리 톱다운(Top-Down) 방식 등 현대적 공법을 도입해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건설사 건설 붐 일으켜
[캄보디아] 한국 투자 ‘주춤’…일본·베트남 ‘적극’
부동산 투자는 부동산 열기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곳곳에서 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던 몇 년 전에 비해 상당히 위축됐다. 하지만 농업 및 제조업 등 기반 투자가 부족한 캄보디아에선 부동산은 관광산업과 함께 여전히 외국인 투자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국이 있다. 한국은 2007년까지 투자 금액 누계 기준으로 전체 투자국 중 말레이시아와 중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부동산 투자 등 투자액이 10억 달러에 달해 캄보디아 최대 투자국에 오른 바 있다.

캄보디아 정부도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 말 집합건물(공동건물)에 한해 한 건물의 70%까지 외국인 혹은 외국 법인의 단독 소유를 인정하는 외국인 집합건물 소유법에 대한 시행령을 공포했다. 원래 캄보디아는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고 외국인이 토지 보유 법인의 지분을 49%까지 취득하는 것만 허용했다.

올해 초 집합건물의 전유부분(Private unit)에 한해 외국인 혹은 외국 법인의 단독 소유를 인정하는 법을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집합건물의 소유권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 끝에 70%까지 외국인 소유를 인정하기로 했다. 외국인의 토지 소유 지분을 최대 49%까지 인정하는 고유의 도그마를 깬 혁신적인 법안이다.

이 법의 시행으로 투자가 제한적이었던 부동산 특히, 집합건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제한적인 개방이지만 합법적으로 부동산을 소유·투자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한국계 기업이 건설한 대규모 고층 건물의 일부를 매입해 임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고 수익률만 좋다면 이런 사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조성될 수 있다. 또 지분 등기 등 제도화된 소유권 이전 방식을 이용하게 돼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 대한 투자 방법 및 가능성이 다양해진 것이다.

한편 캄보디아 정부는 2006년 3월 6일 캄보디아 상사 중재법을 제정했다. 외국인들이 캄보디아 사법제도를 불신하는데다 사법적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2009년 8월에는 상사 중재 업무를 관할할 국가중재원의 설립을 위한 국가중재원의 조직 및 기능에 대한 총리령을 공포했다.

또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상사 분쟁 해결에 대한 국제 표준을 준수하고 상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상사 법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미흡한 점이 많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에 투명하고 공평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캄보디아인은 한국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가 한국과 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수도인 프놈펜을 홍콩·싱가포르와 같은 국제금융도시로 육성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캄보디아는 외국인에게 우호적이고 외국인 투자에 대한 열망이 많은 나라다.

외국인 집합건물 소유 법안은 캄보디아 정부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식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이 법안만으로 당장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법률제도가 있고 그 투자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법제도가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외국인 투자 촉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거래소 내년 7월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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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 개장을 앞둔 캄보디아 증권거래소에서는 달러를 기본 통화로 하거나 달러와 캄보디아 통화인 리엘(Riel)화가 함께 거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엘을 신뢰할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려다.

캄보디아 정부도 증권거래소 개설이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콜롬비아통신(Telecom of Cambodia)과 프롬펜수자원공사(Phnom Penh Water Supply Authority) 등 주요 국영기업의 상장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의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이 국영기업의 상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법무법인 지평지성은 상장 업무의 법률 자문을 할 예정이다. 이처럼 캄보디아는 한국 기업과 한국 로펌이 마이너 플레이어가 아니라 메이저 플레이어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욱이 캄보디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앙코르와트(Angkor Wat)라는 세계적인 관광자원이다. 매년 1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을 만큼 관광자원 개발 가능성이 높다. 남한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비교적 넓은 국토를 비롯해 국토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메콩강과 그 지류 및 톤레사프 호수 등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농업 분야에 대한 성장 잠재력도 상당히 높다.

그런데도 캄보디아를 바라보는 한국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부동산 경기 폭락과 함께 엄청난 손실을 본 한국인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적 안전장치 없는 위험한 거래, 신중하지 못한 투자가 대부분이어서 캄보디아를 탓할 수는 없다.

한편 캄보디아에서 발을 빼려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최근 한국의 KOTRA에 해당하는 JATRO의 프놈펜 사무실을 설립했다. 또 일본 최대 통신 회사인 NTT와 미쓰비시건설이 지사를 설립하는 등 관망하던 자세에서 투자를 실행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점차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는 베트남·말레이시아도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캄보디아의 성장 가능성이 싹트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변화들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투자 보장에 대한 법제도가 전무했던 2∼3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 캄보디아 투자를 더 고민해야 할 때다. 캄보디아에 먼저 들어왔던 한국이 요즘은 오히려 뒤처지고 있는 느낌이다.


유정훈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약력 :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제32기 수료.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캄보디아 사무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