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의 1등 기업 CEO를 만나다① -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

한경비즈니스는 지면 혁신호(770호)에서 경제 전문가 225명의 설문 조사를 토대로 ‘10년 후 한국의 1등 기업’ 15곳을 선정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각 업종을 대표하는 선두 주자이자 한국 경제의 힘찬 미래를 개척해 나갈 주역입니다. 뉴밀레니엄 첫 10년을 마무리하고 다음 10년을 준비하며 이들 핵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터뷰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요즘 증권업계에서는 ‘대우증권의 전성시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동안 삼성증권에 내주었던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올 들어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주요 실적 지표에서도 2위와의 격차를 계속 벌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최강으로 꼽히는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영업력을 기반으로 자산관리와 기업금융, 유가증권 운용(Sales&Trading)까지 국내 증권사로서는 드물게 균형 잡힌 수익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작년 6월 취임 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임기영(57) 대우증권 사장은 “국내시장에서 영업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며 “인재 육성을 위해 내년부터 완전히 달라진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15일 마침 창립 40주년 준비로 분주한 여의도 본사에서 임 사장을 만났다.
[Special Interview] "아시아 시장서 위상 강화하는데 힘 쏟을 터"
주가지수가 1800을 돌파했습니다.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까요.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더 상승할 여지가 많아요. 대우증권은 연내 코스피가 1950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는 공식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가지수가 2000은 넘어가야 한다고 봐요.

상승 요인은 무엇입니까.

요즘 중국 자금이 채권 쪽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게 주식시장으로도 유입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중앙은행도 국내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요. 금융 위기 후에 한국처럼 매력적인 투자 대상국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최근 주가가 오르고 해외 자금이 몰리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도 뛰어나지요. 문제는 외국인은 관심을 갖고 우리 금융상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이를 도외시한다는 겁니다. 국내 가계 자산 60~70%를 여전히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죠.

작년 취임 후 대우증권이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대우증권은 과거에도 오랫동안 업계 1위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걸 한때 3년 정도 놓쳤던 거죠. 1등을 해본 DNA라고 할까, 문화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잠재력이 모멘텀이 주어지니까 다시 힘을 발휘한 거예요.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다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브로커리지 중심에서 벗어나 자산관리나 투자은행(IB), 유가증권 운용 분야를 강화했어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죠.

주가지수가 1800대로 올라도 증권사가 챙길 수 있는 주식 매매 수수료는 거래량이 줄기 때문에 실제로 크게 늘지 않아요. 그러면 증권사는 뭘 먹고 사나요. 우리는 거기에 대한 나름대로 대안을 갖고 있습니다.

대우증권은 이제 주가지수나 거래량의 부침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지요. 재미있는 것은 여전히 대우증권 주가는 주가가 오르거나 거래량이 많이 늘면 상승합니다. 사실 (주가지수·거래량과 대우증권 수익은) 연관 관계가 크게 없는데 아직도 많은 투자자들이 예전 생각을 하는 거죠.

사장님은 ‘국내 IB의 개척자’로 불리는데, 대우증권의 IB 부문 강화를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습니까.

(손을 저으며) 그런 평가는 과찬입니다.(웃음) IB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국내시장에서 영업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해외로 나가야 해요. 취임 후 이를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고 있지요.

그것들이 쌓여서 해외에서 확실하게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 3~5년을 걸릴 것으로 봅니다.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요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완전히 새로 만들고 있어요. 컨설팅 업체 2곳을 선정해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데, 연말쯤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면 내년 초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할 겁니다.

해외 진출을 말씀하셨는데, 대우증권의 해외시장 전략은 무엇입니까.
[Special Interview] "아시아 시장서 위상 강화하는데 힘 쏟을 터"
우선 홍콩 법인을 ‘아시아·태평양 본부’로 강화할 예정입니다. 최근 대규모 증자를 통해 홍콩 법인의 자본금을 1000만 달러에서 4000만 달러로 확충했어요.

현재 20명 정도인 인원도 내년에는 40명까지 늘어납니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죠. 앞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대우증권의 위상을 강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주식에서는 올해 중국 등 외국 기업의 한국 중시 상장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딜’을 찾아내고 만드는데 홍콩 본부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현재 대우증권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미국·영국 등 선진국 기업을 포함해 16개가 넘는 해외 기업의 한국 상장 대표 주관사를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 홍콩 본부가 해외 발행 채권 인수단 기능을 수행하고 자체적으로 인수·합병(M&A) 딜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나갈 거예요.

올해 홍콩 본부에서 세전 수익으로 90억~100억 원 정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2011년에는 200억 원, 2012년에는 400억 원으로 매년 2배씩 늘린다는 목표죠. 대우증권 전체로는 현재 5% 수준인 해외 사업 부문 수익을 5년 이내에 15%까지 끌어올릴 겁니다.

특별히 주목하는 해외시장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아예요. 그중에서도 중국·일본·홍콩·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싱가포르 정도를 봅니다. 인도에도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 정도까지 하기에는 ‘리소스(자원)’가 충분하지 않아요.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에 나가면 주로 유가증권 운용에만 집중해 손실도 많이 봤지요.

대우증권은 신흥시장에 브로커리지를 팔려고 합니다.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브로커리지 영업이 잘되려면 무엇보다 정보기술(IT)이 뒷받침돼야 해요. 그런 쪽에서는 한국이 동남아를 10~15년 앞서 있어요. 현지법인을 통해서든 합병을 통해서든 ‘리테일(소매)’ 쪽에 적극 진출할 겁니다.

다른 신흥시장은 어떻습니까.

브릭스(BRICs) 지역은 모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에 모두 진출할 수는 없어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죠. 우선 아시아에서 5년 정도 해서 수익 모델도 나오고 비즈니스 모델도 완전히 확립되면 그 다음에 진출 지역을 넓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한 번에 욕심내기보다는 한 발 한 발 다지면서 나갈 겁니다.

국내 증권사들이 많이 성장했지만 글로벌 플레이어와는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 금융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초기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차도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재 국내 금융 산업은 많이 낙후돼 있어요. 특히 해외 부문이 심각하죠. 그런 부분에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또 최근의 금융 위기라는 두 번의 충격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이 많이 위축돼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제는 다시 한 번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도전해 볼 때가 됐다고 봐요. 과거처럼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모두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어요.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대형 금융 선단 같은 것을 만들어 우선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해요.

해외 금융회사의 M&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궁극적으로 대형화하려면 M&A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그건 지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지요. 1~2년 전에도 해외 금융회사를 M&A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인수한 다음 그걸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이 준비돼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리먼브러더스 아시아 사업을 인수한) 노무라증권은 이미 10년, 15년 전에 해외 금융회사를 인수해 본 경험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도 그걸 교훈으로 삼아 지금부터라도 인재를 양성하고 준비해야 해요. 해외 금융회사를 M&A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틀림없이 또 올 거예요.

기대를 모았던 자본시장법이 작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미 큰 변화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채권시장만 하더라도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드는 규모예요. 자국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서 몇 개 되지 않아요. 모두 해외에서 달러 채권 발행에 목을 맵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 시장에서 원화 채권을 발행하고 있어요. 기업공개도 올해 상장한 삼성생명이 4조 원 규모였지요.

작년에 기업공개한 대한생명은 1조8000억 원이었고요. 그동안 국내에서 기업공개 물량은 5000억 원이 최대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생명과 대한생명 모두 성공했어요.

그런 걸 보면 한국 자본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거죠. 이번 금융 위기를 생각보다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제조업이 잘한 것도 있지만 이처럼 넓고 깊은 자국 자본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어요.

대우증권의 중·장기 비전은 무엇입니까.

미국 JP모건이나 메릴린치에 필적할만한 인재 풀을 갖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자본금 규모도 일본 노무라증권 수준은 돼야 한다고 봐요. 현재 대우증권 자기자본은 2조8000억 원가량 됩니다. 여기에 ‘0’이 하나 더 붙어야 해요.(웃음) 28조 원 정도는 돼야 국제적으로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어요. 요즘 해외 자원 개발 투자를 위해 대형 금융사들과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국익과도 직결되는 안정적인 자원 개발을 추진하려면 금융의 서포트가 필수예요. 호주 지역의 석탄이나 철광 개발은 프로젝트 하나가 5조 원, 10조 원 규모예요. 거기에 컨소시엄으로 들어가 10% 지분만 참여해도 5000억 원이 필요합니다. 포스코나 한국전력이 혼자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제대로 된 금융 지원이 없으면 한국 경제의 성장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거죠.

성공한 금융계 CEO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좀 해 주시죠.

평소 직원들에게 ‘일하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면 금융에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만큼 일하는 절대 시간이 중요하지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8시간 일하는 사람과 16시간 일하는 사람은 결국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든, 영국이든 해외 금융회사들도 일하는 절대 시간이 굉장히 많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과 재미입니다. 튼튼한 체력은 기본이에요. 또 재미, 즉 ‘펀’이 없으면 오래 하기 어렵죠. 주니어 때는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해요. 저는 1980년대 뱅커스트러스트에서 일하면서 최동훈 대표와 이건삼 대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두 분을 정신적 멘토로 삼고 있어요.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트레이딩 플로어를 설치했는데요.

212명의 트레이더와 지원 인력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외환 등 트레이딩 관련 부서를 한 공간으로 통합하고 시스템도 글로벌 IB 수준으로 갖췄어요.

2007년부터 추진해 온 트레이딩 통합 인프라 구축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더욱이 이번에 트레이딩 플로어를 직접 구축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향후 비즈니스를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이번 통합으로 이종 자산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상품 개발이 늘어나고 운용 효율화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 채권 비중이 계속 커지는 것에 대응해 국내 증권사 최초로 채권 시스템도 개발 중이죠. 앞으로 5년 이내에 유가증권 운용 부문에서 1조 원대의 영업수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약력 : 1953년 인천 출생. 1975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0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1982년 뱅커스트러스트은행 부지점장. 1991년 살로먼브러더스 한국대표. 1997년 한누리살로먼증권 공동대표. 1998년 삼성증권 IB사업부장. 2004년 도이치은행 아시아 글로벌기업금융 부회장 겸 도이치증권 한국 부회장. 2008년 IBK투자증권 사장. 2009년 대우증권 사장(현).

대담=김상헌 편집장
정리=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